야당이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 과정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압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재차 주장했다. 조선업 구조조정방안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정부를 강하게 질책했다.
정부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따라 최순실의 입김으로 편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최순실 예산' 리스트를 내기로 해 여당 의원들로부터 "도대체 뭘 만들겠다고 약속하는건지 아느냐"는 빈축을 샀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7일 오후 국회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위 말하는 최순실 예산이 각 부처에 숨어있는데 오늘 안에 리스트를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최순실 예산은 비리의 핵심 고리로 추정되는 문화체육관광부만 리스트를 뽑아 공개한 바 있다. 전체 부처의 최순실 관련 예산을 공개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승민 "정부가 짠 예산에 스스로 최순실 꼬리표 달아"=유 부총리는 "내년 예산에 최순실 예산이 1796억원 숨어있다"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그러면서 "규제프리존 등 최순실과 관련됐다는 의혹이 있는 예산은 특혜 의도는 없지만 국회에서 다시 검증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의 발언을 들은 새누리당 의원들은 일제히 유 부총리를 성토했다. 유승민 의원은 "지금 최순실 예산을 리스트로 만들어서 준다고 말한 것 맞느냐"고 물었다. 유 의원은 이어 "우리 정부가 스스로 편성한 예산일텐데, 정부가 스스로 최순실 예산이라는 이름을 붙이겠다는거냐"고 거듭 되물었다.
유 부총리는 이에 대해 "최순실 예산이 아니라 이른바 최순실 예산, 소위 말해 최순실 예산이라는 것"이라며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 대해 의혹이 진짜 제기되는 것인지 따져본건데 부처에서 이미 (의혹이 있다고) 정한것도 있고 '이런 사업은 좀 뭣하다' 이런 예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유 의원은 "언론이나 야당에서 의혹을 제기하면서 몇십억이다, 몇백억이다 하는 것과 기재부에서 "문체부의 최순실 예산이 얼마다"라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예산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앞으로 그 예산을 어떻게 처리할지까지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만약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나온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 이종구 의원은 "8월에 문체부에서 예산을 올렸을 때 기재부 국과장들이 충분히 설명을 들었을 것 아니냐"며 "그때는 같이 좋다고 해놓고 이제와서 최순실 예산이라는걸 알았고, 그쪽에서 압력을 행사한걸 알았다고 하는건 말이 안 된다. 다 공모해서 같이 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유 부총리는 "이미 알아볼 것들 다 알아봤고 예산실에서도 다 파악을 해 봤다"며 "부처가 스스로 평가해서 문제가 있다고 한 것들이 있다는 의미이며 이를 다 포함한 자료를 드리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른바 최순실 예산에 대한 삭감 작업에도 이미 착수했다고 밝혔다. 안일환 기재부 사회예산심의관은 "문체부 TF(태스크포스) 조사 결과를 보면 사전 편성단계서 최순실과 연관된 예산은 없다"며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뒤로 미뤄도 문제가 없는 예산을 골라내 그 부분을 삭감하는 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최순실 예산은 예산국회의 새로운 뇌관이 될 전망이다. 예산결산특위에서도 이미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최순실 예산을 찾아내 먼저 삭감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만 최순실 예산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를 놓고는 여야 간 이견이 있을 전망이다.
◇野"한진해운 포기, 최순실 작품"=이날 기재위 회의에서 야당은 정부의 해운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상선을 살리고 한진해운을 포기한 것에 대해 비선실세의 압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강도 높게 추궁했다.
박영선 의원은 "해운산업 구조조정은 최순실과 밀접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상선은 세계 17위이고 한진은 7위인데 한국해양수산개발원도 둘 중 하나 살린다면 한진을 살려야 한다고 발표했었다"며 "정부도 지난 5월까지 한진의 회생가능성을 제일 크게 봤는데 어느날 갑자기 뒤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한진해운 문제는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그리고 조양호 회장의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사퇴압력과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며 "(구조조정 방안을) 몇 번 미루고 이제 발표하는 것 역시 최순실에게 허락을 받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닌가. 이제 감옥에 들어갔으니 발표한 것이 아니냐"고 강도 높게 질책했다.
같은 당 송영길 의원은 "한진해운의 자구노력이 지지부진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면 에쓰오일 지분을 매각하는 등 현대상선이나 비슷한 수준"이라며 "조선업은 빅3, 내지는 빅5로 구성되는 만큼 일부가 줄어도 버틸 수 있지만 해운은 딱 두개인데 너무 쉽게 한진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은 "인천시장 시절 본 조양호 회장은 평창에 대단한 애정을 갖고 유치한 것"이라며 "최순실로 예상되는 외부세력의 농단에 의해 본의와 다르게 그만뒀고, 이번엔 1000%의 부채가 있는 대한항공이 10억원이라는 큰 돈을 '억지춘향'식으로 미르에 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부총리는 "정부도 한진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한 시점이 있지만 원칙에 의해 구조조정을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며 "한진을 나쁘게 하려고 했다거나 이런건 결코 아니며 최순실이나 특정인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조선업 구조조정 대책에 대해서는 여당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유승민 의원은 "대우조선을 살리기로 했지만 추가로 유동성 공급을 하지 않는다면 투입 예정된 4조2000억원이 떨어지면 죽는것 아니냐"며 "구조조정을 해도 시장 수요가 없으면 회생이 안 된다.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같은 당 이현재 의원은 "대형 플로팅도크 두 기를 매각한다는 계획이 있는데 조선업 불황 속에 이걸 누가 사겠느냐"며 "수리조선소 설립 계획도 탁상 계획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