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로 기억될 2016년이 지나고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정치부에서 보낸 6년 중 지난 1년은 잊지 못할 한해다. 국가를 뒤흔든 ‘최순실 스캔들’, 그리고 그 혼란을 정리해낸 민심의 힘을 보면서 분노와 감동, 절망과 희망을 넘나들었다.
민심은 이미 지난해 4월 존재를 드러냈다. ‘1여다야’로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예상을 깨고 참패했다. 공천 과정에서 친박(친 박근혜)계가 무리하게 ‘물갈이’에 나섰던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 제대로 된 물갈이야 필요한 것이지만 기준이 문제였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당시 공천기준이었다. ‘진박(진실한 친박) 마케팅’ ‘진박 감별사’ 등 우스꽝스러운 단어까지 등장했다. 비박(비 박근혜)계인 김무성 전 대표가 직인을 찍지 않고 버텼지만 당 내부 갈등과 비박의 무능함만을 부각시킬 뿐이었다. 민심을 이반한 폭주는 16년만의 ‘여소야대 국회’를 낳았다. 새누리당은 과반수 의석은 커녕 더불어민주당에 1당 자리까지 내줬다.
여당은 그래도 민심을 읽지 못했다. 친박 중심의 공천은 민심과 당심을 더욱 떨어뜨려놨다. 비박계가 친박 책임론을 제기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친박들은 공동 책임론으로 맞섰다. 물론 따지고 보면 완전히 틀린 얘기도 아니었다. 결국 전당 대회에서 친박계가 다시 당권을 쥐면서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그리고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정치권은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했다. ‘질서있는 퇴진’ ‘거국 내각 구성’ ‘탄핵’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자기 손익계산까지 하다보니 복잡했다. 촛불의 주장은 분명했다. 자진하야, 그게 안 된다고 확인된 이상 탄핵을 요구했다. 정치권은 결국 촛불의 뜻을 따르며 ‘탄핵’으로 의견을 정리했다.
다시 변수가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의견을 모으면 그에 따라 퇴진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물러난다는데 탄핵까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나왔다. ‘탄핵 대오’에 균열조짐이 보이는 순간 촛불은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로 답했다. 12월3일 6차 촛불집회에 대한민국 집회 역사상 최대 인원인 232만명이 운집했다. 12월9일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299명 투표에 234명 찬성으로 가결됐다.
촛불 민심이 없었다면 정치권은 아직도 우왕좌왕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에 앞서 총선 민심이 정치 지형을 바꿔 놓지 않았더라면 정국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새해 벽두에 묵은 해 얘기를 다시 꺼낸 것은 아직도 풀어야할 숙제가 많아서다. 좋은 대통령을 뽑아야 하고, 무너진 헌정질서도 다시 세워야 한다. 꺼져가는 경제의 동력도 회복해야 한다. 격변이 예상되는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전에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수많은 난제들이 놓여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은 대한민국의 저력, 국민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정유년 새해가 대한민국이 다시 뛸 수 있는 초석을 다지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