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치학자이자 남북관계가 가장 역동적이던 2004~2006년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현장을 직접 경험한 김연철 통일연구원장. 학계와 관계의 경험을 고루 녹인 '70년의 대화', '협상의 전략' 등 그의 저서는 남북관계사와 북핵 협상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꼽힌다.
북미 '핵담판' 성사에 초미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16일 서울 서초구 통일연구원에서 그를 만나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을 들었다.
이번주 북미 고위급회담 후 다음달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유력하다는 전망 속에 김연철 원장은 무엇보다 "우리와 북한 모두에게 한반도 '비핵지대화'가 아닌 '비핵화'가 목표라는 점이 논란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며 협상의 전제를 강조했다.
또 "북미간 불신을 낮추기 위해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2000년대 중반 북핵 협상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역사를 거울 삼아 "비핵화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계적이면서도 속도감 있는' 비핵화를 위해 현재 거론되는 '빅딜'과 '스몰딜' 사이 중간 단계의 딜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영변 핵시설 폐기로 첫발을 내딛여 북한 내 무기를 국외로 반출하는 '비가역적' 단계까지를 가급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2021년 1월 임기 만료·2020년 11월 미 대선)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미가 '현실적' 비핵화 딜을 타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북미간 신뢰가 부족하고 시간이 제한적인 상황이라 '빅딜' 대신 이른바 ‘스몰딜’이 거론된다. 단 오해가 있다.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 장관의 발언(궁극적으로 미국인의 안전이 목표) 후 일각에선 미국이 미 본토에 위협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감축을 대가로 상응 조치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딜이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스몰딜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전체 단계 중 일단 가능한 부분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여러번 하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자국의 안보에 위협적인 부분부터 해소 하고 싶을 것이다. 반면 북한의 스몰딜은 또 다르다. 이것도 시작일 뿐 연쇄적 딜이 예고될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 개념이 한미와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연쇄적 딜은 목적지까지 이어져야 한다. 목적지는 '완전한 비핵화'다. 최종적으론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를 모두 없애야 한다. 이 최종 목적지로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남북미의 생각은 같다.
북한도 핵과 경제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 북한은 경제발전을 위해 개혁·개방을 이뤄야 한다. 대외환경이 개선돼야 자본을 유치하고 경제협력이 가능해진다. 어중간한 상태로 핵문제가 동결되진 않을 것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가 한반도 내 전략자산 제거 등 비핵지대화라는 주장도 있다.
▶비핵화와 비핵지대화는 다른 개념이다. 우리가 합의한 건 비핵화지 비핵지대화가 아니다. 1991년 남북 한반도 비핵화 선언, 2005년 9.19 6자 공동선언 당시 북한은 ‘비핵화’를 채택했다. 한미 동맹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게 노태우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 후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하기로 한 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 환경을 조성하려는 차원이지 이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렇다면 단계적 비핵화는 어떻게 진행될 수 있을까.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 중 미국은 무기를 제일 먼저 없애고 싶어 할 것이다. 북한은 무기를 가장 나중에 하고 싶어 할 수 있다. 양측이 바라는 순서가 다를 수 있다. 이 순서를 어떻게 타협하느냐가 북미 협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 차원에서 고려할 요소가 신뢰와 시간이다. 신뢰는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만큼 쌓인다. 이 신뢰를 쌓기 위해 가능한 수준의 합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의 합의란.
▶빅딜과 스몰딜 사이의 조금 높은 수준의 접근을 해야 한다. 중간 수준의 딜, 즉 영변 핵시설 폐기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영변 핵심시설 폐쇄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쌓고, 그 후 무기를 미국이나 제3국으로 반출하면 비핵화 과정의 결정적인 진도가 나가는 셈이다.
무기 제거가 이뤄지면 남은 조치들은 위협요소가 아니다. 원자로 해체에 15~20년이 걸리지만 일단 핵심 물질, 무기를 제거하면 비가역적이 된다. 남은 조치를 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큰 문제가 아니다.
-'비가역적' 비핵화 달성까진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트럼프 행정부 1기 내 갈 수 있는 최대치를 가야 한다. 그 이후에는 불투명한 상황이 많다. 비핵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속도감 있게 압축적으로 진행하느냐’다. 기존 북핵 협상이 실패한 것도 초기 이행조치를 너무 낮은 단계부터 출발해 시간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탓이다.
-북미 협상의 결과로 대북 제재가 완화될 지 여부가 관심사다.
▶비핵화의 속도감 있는 이행을 위해 미국도 제재 완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제재는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이다. 아낄 이유가 없을뿐더러 잘 활용해야 한다.
상응조치는 북미 관계정상화·평화체제 구축 두 축으로 이뤄진다. 그 중 관계정상화의 두 측면인 외교·경제관계 정상화는 분리할 수 없다. 예컨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북미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건 법적으로 충돌한다. 제재를 지속하겠다는 건 관계정상화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2차 북미정상회담 후 북미 간 일정 수준 합의가 이뤄진다면 곧바로 제재 완화가 가능할까.
▶제재는 크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와 미국의 독자 제재가 있다. 안보리 제재는 이란 핵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에서 시사점을 찾으면 된다. 안보리 제재는 북한 행동에 따라 새 결의를 통해 지금도 완화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핵 활동을 다시 시작한다면 언제든 제재를 강화하면 된다. 따라서 안보리 제재는 북미정상회담 후 진전된 합의가 이뤄질 때 조건부로 바로 완화할 수 있다. 안보리 제재만 완화해도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상당히 이뤄질 수 있다.
-제재 완화와 맞물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도 실현될까. ▶개성공단의 경우 부분적 제재 면제가 아니라 제재 완화 후 정상적으로 재개하는 게 바람직하다. 제재 완화를 먼저 해결하는 게 순서다. 최소한 안보리 제재가 일부 완화되면 공단 재가동이 부분적으로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북미정상회담에서 타결이 이뤄지면 올해 중에도 공단 가동 시작이 가능할 수 있다.
금강산 관광은 좀 다르다. 이산가족 만남의 장소로 금강산을 활용하는 방법 등 여러 방법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개성공단 재개 보다 더 빨리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게 2019년이 대내적으로도 중요한 시기로 전망된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건 경제다. 신년사에서도 민생이나 기업 역할 제고를 강조하면서 경제 분야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북한식 경제변화를 가속화하겠다는 의지가 많이 담겨 있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취하는 전략적 태도와도 연동 돼 있어 주목해야 하는 대목이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아직 가격, 시장 등이 안정돼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제재로 수출을 못해 외화를 버는 데 제약이 커지고 있고 이는 북한 경제에 타격이 될 수 있다. 그만큼 북한에게 제재 완화가 중요하고 시급한 요구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남 등 올해도 남북관계에 있어 바쁜 한해가 될 걸로 보인다.
▶남북관계에 있어 2018년은 전환기, 2019년은 실천의 시기다. 본격적인 실천을 하는 데 있어 해결해야 할 현안들을 남북이 조정해 나가는 게 올해의 과제다. 전망대로 2월 북미정상회담을 한다면 그 이후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북미정상회담 후 남북 정상이 만나면 합의의 수준이나 합의 영역을 풍부하게 할 수 있어 남북 모두 이를 필요로 할 것이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 약력
△강원도 동해 △북평고 △성균관대 정치외교학 학사 △성균관대 정치외교학 석사△성균관대 정치외교학 박사△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통일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