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 변함없이 신뢰를 주고 있다. 24일 청와대와 여권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를 정부부처의 '경제사령탑'으로 여전히 '존중'하고 있다.
그런데 홍 부총리가 문 대통령의 메시지 일부만 받아들이는, 일종의 오독(misreading)이 우려된다. '재신임'에는 신뢰와 함께 숙제도 담겼다. "믿고 맡긴다"(신뢰) 못지않게 "소임을 다해달라"(숙제)는 의미도 크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와 기재부를 에둘러 질책한 장면이 있기는 했다. 마스크 수급 대책은 난제였다. 홍 부총리는 3월2일, 추가경정예산안(1차)을 논의할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 눈물을 삼켰다. 주변에선 "마음고생"을 말했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의 '거취'까지 간 적은 없다. '전쟁' 와중에 '장수'를 바꾸는 건 문 대통령 인사 스타일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긴급재난지원금 등 재정을 둘러싼 사안에선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에게 힘을 실었다. 공개적인 것만 두 차례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경제·금융상황 특별점검회의를 소집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글로벌·국내 증시가 패닉상태에 빠졌다.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를 잠시 따로 불렀다. 여기서 "지금까지도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잘해 달라"고 당부했다. '홍남기 해임건의' 해프닝을 정리하기 위한 발언이다.
앞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홍 부총리에 대해 "해임 건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됐다. 1차 추경의 대폭증액을 원하는 여당과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정부가 갈등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해당 발언을 인정했다가 이내 부인했다. 당 핵심관계자는 "직접적인 (해임) 언급은 없었지만 톤이 강하긴 했다"며 "약간의 질책 같은 게 있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믿고 맡긴다'는 의사를 보이면서 이 같은 잡음을 정리했다. 홍 부총리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문 대통령에게 말했다.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 여부를 두고 다시 엇박자가 났다. 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부의 비상경제대응 체계를 강화해 경제부총리가 중심이 되고, 범 경제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경제 중대본 체제의 본격 가동을 준비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회의는 5차 회의(22일) 이후 필요한 때 열고 홍남기표 '비상경제 중대본(중앙대책본부)'이 실무를 챙겨 달라는 지시다. 긴급상황에 문 대통령이 틀어쥐었던 경제 지휘봉을 홍 부총리와 나눠 쥐었다.
이는 '원톱(홍남기)의 귀환'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숨은 의미가 더 있었다. 앞서 19일 삼청동 총리공관서 긴급재난지원금 고위 당정청 협의가 열렸지만 결론을 못 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경제 사령탑으로 홍 부총리를 자리매김하면서 시급한 집행의 책임을 맡긴 것이다.
22일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이 뜻이 더 명확해졌다. 문 대통령은 "거듭 거듭 강조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라며 "지금까지 발표한 비상경제 대책들을 신속하게 실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여당은 전국민(100%)에게 지급하되 기부를 유도, 재원을 아낄 수 있다는 절충안에 도달했다. 청와대도 화답했다.
그런데 23일까지도 기재부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홍 부총리에게 지휘봉과 함께 과제를 맡긴 뜻과는 한참 멀다는 지적이 여권에서 터져나왔다.
특히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말을 아꼈지만 기재부에 대한 강한 성토 기류가 있다. 긴급재난지원금 논란은 이미 내각을 관할하는 정 총리가 일단락했고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를 신임한다. 그런데도 기재부가 이에 '항의'하는 모양새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여권에선 홍 부총리가 정 총리의 입장을 주의깊게 봐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총리는 특정한 긴급재난금 지원 범위나 재원조달 방식에 대해 '개인의견'이나 '소신'을 앞세우지 않았다.
국무조정실 관계자에 따르면 정 총리는 결론이 무엇이든, 국민을 대표하는 여야가 합의했다면 정부가 수용해야 맞다고 본다. 그런데 정부, 그것도 재정의 열쇠를 쥔 기재부에서 유독 혼선이 나왔다. 정 총리가 23일 '주의'를 준 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
청와대는 홍 부총리가 사의를 밝혔고 정 총리 등이 반려했다는 관측에 "사실이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전날(23일) 경남거제에서 컨테이너선 명명식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홍 부총리가 평소와 다름없었다고 했다. 사의를 밝힌 인물로 보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홍 부총리는 "2년 전 산경장(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이라는 경제장관회의를 수립하면서 (컨테이너선) 20척 정도를 발주하는 계획의 시발점이 됐다"며 "그 선박의 1호가 오늘 명명식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해운산업, 조선산업이 세계에서 우뚝 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부총리 거취가 계속 논란이 될 가능성은 있다. 코로나19 긴급대응 국면이 '일단락'되면 내각 개편(개각)이 자연히 수면위로 오를 수 있다. 3차 추경이라는 새로운 화두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