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윤석열이 있어야 할 곳[우보세]

김태은 기자
2021.03.10 08:12
(서울=뉴스1) 이성철 기자 = 사퇴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2021.3.4/뉴스1

윤석열이 안철수나 반기문과 다른 점은 '새정치'를 굳이 꺼내 보일 필요가 없다는 점일 거다. 그가 임기 4개월을 남겨놓고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것은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지금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정치에 뛰어들어 차기 대선에 도전장을 낸다면 문재인정부가 무너트린 법치주의를 회복하고 법의 지배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내세우게 될 것이다.

'구태정치 청산'과 정치개혁을 숙명처럼 짊어지게 되는 '새정치'는 현실 정치와 맞닿는 순간 더이상 새롭지 않는 형용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반(反)정치' 정서에 기반해 정치와 동떨어진 곳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한 안철수·반기문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다.

실체가 모호한, 구태정치와 차별화도 어려운 '새정치'에 비해 윤석열이 보여줄 정치는 상대적으로 예측가능하다. 윤석열은 이를 '부패완판(부패가 완전 판친다)'이란 구호로 운을 띄웠는데 여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각을 세우는 한편 '부패완판' 정권 심판으로 정치 명분을 삼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검수완박이 윤석열의 사퇴 명분이 됐듯 때마침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은 ‘반부패대응역량’과 검경수사권 조정, ‘검찰개혁’ 이슈와 연결되면서 '정치인' 윤석열의 공간을 열어주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윤태곤 더모아 의제와전략그룹 정치분석실장은 "LH 투기 의혹만이 아니다. 대형 비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검찰이 수사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윤석열의 공간이 저절로 생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새정치'가 맞닥뜨렸던 실패를 윤석열 역시 반복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부패완판' 정권 심판이 단지 '반문(반문재인)연대' 정치세력화를 위한 헤쳐모여에 그치게 될 경우다.

검찰총장 사퇴 전후 그가 접촉했던 정치권 인사들의 면면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윤석열의 정치행보에 매서우리만큼 비판적인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마저 "정치인 윤석열은 검찰 부하들, 새로운 친구들(진중권·금태섭·박준영 등)과 손잡고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는데 막상 드러난 인물은 김한길·정대철·정동영이었기 때문이다. '제3지대'를 도모하기 위해 만나는 인물이 '구시대 퇴물'이냐는 비아냥도 서슴없이 나온다.

야당의 한 의원은 "윤석열이 국민들에게 지지받는 이유는 부패한 문재인정부를 심판하고 칼을 휘둘러줄 수 있을 것 같은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라며 "검찰 안에서 비리를 수사하는 이슈 대신 정치권 인사들과 만나고 정계개편 이슈만 쏟아지게 되면 정치인으로서 가장 큰 강점과 이미지가 점점 희석된다는 딜레마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권력이 '정치권 거물'들로부터 나오는 시대가 아니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윤석열이 정치 세력화를 위해 정치인 거물들을 만나는 모습들이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그의 지지율은 거품으로 꺼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국민들은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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