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수처의 거짓말, 민주당의 침묵

서진욱 기자
2021.12.30 04:30

[the300]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야당 국회의원, 언론인과 가족의 통신자료를 무차별적으로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민의힘 의원 105명 중 78명이 공수처로부터 통신자료를 조회당했다. 야당·법조 출입기자 130여명과 기자 가족까지 공수처의 조회 대상에 포함됐다. 이동통신사로 통신자료 제공내역 신청이 이어지고 있어 공수처의 조회 인원은 계속 불어나고 있다. 야당을 취재하는 필자 역시 공수처의 조회 대상이 됐다. '수사3부-383'으로 표기된 공문서를 사유로 이름,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가입일, 해지일 등 개인정보를 공수처가 들여다봤다.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들에 연루되지 않았고, 그런 사실을 통보받은 적도 없다. 공수처와 유일한 접점은 공수처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재해 보도한 것 뿐이다. 공수처는 기자들의 통신자료 조회 이유에 "주요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라고 해명했다. 기자들이 누구와 언제 통화했는지 파악했다는 뜻이다. 언론 윤리의 핵심인 취재원 보호 원칙이 공수처의 수사권 남용에 무너져버렸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는 기자의 가족까지 조회 대상에 포함된 사실은 민간인 사찰 의구심을 짙게 한다.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는 김진욱 공수처장의 '절제된 수사' 원칙에도 위배되는 행태다. 김 처장은 올해 초 취임사에서 "권한을 맡겨주신 국민 앞에서 항상 겸손하게 자신의 권한을 절제하며 행사할 것"이라며 "주권자인 국민 앞에서 결코 오만한 권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번 사태로 김 처장의 약속은 공수표가 됐다. 과거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반복하면서 공수처 무용론뿐 아니라 폐지 주장마저 확산되고 있다.

공수처 출범을 밀어붙인 여권은 침묵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국가정보원의 통신자료 조회 논란이 불거지자 '불법 대국민 사찰'이라며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같은 해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 민간인 사찰 악용을 이유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192시간에 걸쳐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기도 했다. 작년 말에는 야당 비토권을 없애는 공수처법 개정을 단행했다. 공수처 예찬론을 펼친 민주당의 침묵은 정치적 책임 회피다.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의 무차별적 통신 조회를 규탄해온 참여연대는 "위헌적 관행과 결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주장을 펼쳤던 민주당의 지금 입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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