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슬로건은 '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 대통령'이었다. 윤석열은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을 구호로 내세웠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친 두 대선후보의 '셀링 포인트'를 한눈에 보여줬다. 그리고 대선 승부를 가르는 '매치 포인트'가 됐다.
윤석열의 슬로건은 '국민'과 '바꾼다'로 압축된다. 정치권 밖에서 공정과 상식, 정의를 위해 싸운 정치 신인이 국민의 부름에 따라 대선에 나서게 된 소명을 '국민'에 담았다. '바꾼다'는 비(非)정치인인 윤석열이 해야 할 일이다. 기득권 낡은 정치를 혁파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 좋은 내일로 앞당기는 일이다. 즉 '개혁'이다.
이재명의 슬로건이 윤석열과 다른 점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이재명'이 없다. '유능함'의 주체가 이재명이 아닌 민주당이라는 세계관이 반영된 구호다. 선거 직전 코로나19(COVID-19) 극복을 위한 방역 지원금을 소상공인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은 일종의 '여당 프리미엄'이다. 이재명을 여당 후보로 가둬버리는 프리미엄이다. 변화 대신 '제2의 문재인정부'로 안주를 선택한 구호다.
이재명의 '유능함'이 저지른 결정적 실수는 '공정과 '정의'로부터 도망친 '비겁한 유능함', '허울 뿐인 유능함'이란 점이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이재명을 지지하는 이유에 잘 드러난다. 유 전 이사장은 "사위나 남편 고르는 것 아니지 않나. 일 잘하는 사람이 최고"라고 이재명의 미덕을 설명했다.도덕성은 부족해도 대신 일 잘하는 대통령이 낫다는 의미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그와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토록 증오하던 이명박에게 들이대던 기준과 다른 점이 없다. 심상정이 이재명을 향해 "이명박 아바타같다"고 조롱해도 반박을 하지 못한다. '우리편'이니 이명박이라도 봐주자는 '내로남불'일 뿐이다.
국가 지도자와 정부의 유능함은 '공정'에서 출발한다. 국가의 기능은 국민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결과물이 정당한 기준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다. '공정'이 기초되지 않는 국가의 유능함은 유능함이 아니라 부정부패가 되고 만다.
국가 지도자와 공직자에게 엄격한 기준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공정이 곧 유능함이다. 문재인정부의 '내로남불'은 이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충족하는 데 실패했다.
친문(친문재인) 후계자를 자처하는 이들 대신 이재명이 국민의 부름을 받은 것도 '공정'과 '정의'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2016년 탄핵 집회 당시 무명의 그가 일약 대선주자로 도약할 수 있었던 건 기득권을 혁파할 '구시대의 종결자'를 자처하면서다. 정치권과 국가를 혁명적으로 바꿔달라는 국민들의 요구였다.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나아가게 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재명을 대선후보로 내세우고도 이재명에게 투영된 시대정신 대신 민주당 정권의 실정과 무능을 덮는 데 급급해 '유능한 경제대통령'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윤석열의 무능함을 부각시키고 그의 공정과 정의를 훼손시킬 수 있는 '안티테제'로서다.
윤석열을 문재인정권의 반사체로 얕보다가 어느새 윤석열의 반사체로 전락한 게 오늘날 대선 패배를 눈앞에 둔 이재명과 민주당이 처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