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428년 세종 10년, 진주에서 부친 살해 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반인륜적 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생각은 달랐다.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봤다.
세종은 '삼강행실도'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효자, 충신 등의 모범 사례를 정리한 책이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그림을 적극 활용한 게 특징이다. 이 책은 1434년 전국에 배포됐다.
그러나 그림만으로 유교 이념과 생활 도덕을 완벽하게 설명할 순 없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기로 마음 먹은 계기 중 하나다. 실제로 훗날 성종 땐 한글로 쓰인 삼강행실도 언해본이 발간된다.
백성들의 덕성을 지키기 위해 교화에 힘쓴 건 비단 조선만은 아니다. 고려는 불교의 금강경을 대량으로 찍어 전국에 배포했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승려나 식자층이 대신 읽고 설명해줬을 터다.
고려나 조선은 주권이 임금에게 있는 군주제였다. 그런데도 백성들의 덕성을 지키는 데 이토록 힘썼다. 그럼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어떤가. 주권자인 국민이 가짜뉴스나 극단적 선전·선동에 휘둘려도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방치하는 게 옳을까.
#2. 세상은 침묵하는 다수가 지배한다.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선 그렇다. 그러나 다수는 때로 극단적 소수에 지배당한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 존재라는 계몽주의적 가설은 이미 100년 전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며 의심받기 시작한 '합리적 인간 가설'은 케인스에 의해 경제학에서도 기각당했다.
인간이 비이성적이라면 비합리적인 대중이 지배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비합리적인 다수의 선택이 비합리적인 소수의 판단보단 그나마 나을 것이란 믿음 때문 아닐까.
그러나 히틀러를 독재자로 만들어준 건 절대 다수 유권자의 선택이었다. 1934년 힌덴부르크 대통령 사망 후 히틀러는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해 스스로 총통이 되는 안건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이 투표에서 히틀러는 88%가 넘는 찬성표를 얻어 절대 권력을 틀어쥐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로 가는 길을 독일 국민들 스스로 선택한 셈이다.
브렉시트라는 자멸의 길을 선택한 영국인들은 어떨까.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한 대표 선진국의 시민들이 이렇다면 다른 나라는 오죽할까.
이 과정에서 가짜뉴스 등 온갖 선전·선동이 동원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위한 최고의 가치임을 인정하더라도 유권자가 거짓 선전 또는 반헌법적 선동에 휘둘리는 것까지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을까.
#3. 유튜브에서 특정 진영의 정치 콘텐츠를 몇 번 시청하면 알고리즘에 따라 비슷한 영상이 끝없이 추천되는 '무한루프' 현상이 시작된다. 이른바 '토끼굴' 현상은 몰입을 강화해 이용자들이 특정 알고리즘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들은 '확증편향'에 빠져든다. 반대편의 주장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유튜브가 정치를 양극화시키는 메커니즘이다.
비록 극소수이긴 하나 일부 유튜브 콘텐츠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위협한다. 법원 습격을 감싸거나 헌법재판소에 대한 테러를 부추기는 목소리가 여과없이 시청자의 눈과 귀에 꽂힌다. 반대편에선 대통령 부부 등 집권세력에 대한 가짜뉴스가 버젓이 유통된다.
검증되지 않은 흑색선전, 불법적 충동질은 헌법과 법률, 국가와 공동체를 파괴한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으로 인류가 합의한 게 법치주의다. 법치를 위협하는 극단적 선전·선동을 막는 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우리나라에선 유튜브 규제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와 유튜브 자율 조치에 의존하고 있다. 과연 이걸로 충분할까. 이용자가 신고하면 24시간 내 차단 등의 조치를 의무화한 독일을 참고해 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