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명령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통령이 명령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배 정치부장
2025.01.16 05:20

[the300]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이 대푱의 발언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4.04.29. photo1006@newsis.com /사진=전신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이 대푱의 발언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4.04.29. [email protected] /사진=전신

#1.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찰스 디킨스가 남긴 역작 '두 도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런던과 파리 두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대문호는 프랑스 대혁명의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단두대로 대표되는 무자비한 학살극에 그는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디킨스가 대혁명의 당위를 부정한 건 아니다. 혁명 전 '앙시엥 레짐'(구체제) 당시 프랑스 민중들의 비참한 삶에도 그는 연민의 시선을 던진다.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의 사료를 토대로 쓴 이 소설에서 디킨스가 개탄한 건 혁명 자체가 아닌 혁명 과정의 야만성이었다. 아무리 혁명의 명분이 순수해도 피에 굶주린 이들이 혁명의 깃발 아래 자행하는 야만적 보복까지 정당화할 순 없다.

#2.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일련의 각주다."

영국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말이다. 서양 철학의 어떤 줄기든 플라톤이란 뿌리에 빚지고 있음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현대 정치학에서 플라톤은 외로운 신세다. 그는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정확하겐 민주주의를 혐오했다.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무관치 않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에 넘겨질 때 혐의는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것 등이었다. 3명의 고발자 중 한 명이 '민중파' 정치인 아니토스였다. 법정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도 시민 배심원단이었다.

보편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스승을 보며 민주정에 대한 플라톤의 환멸은 확신이 됐다. 그 결과로 나온 책이 '국가론'이다. 민주정이 아니라 지혜로운 지도자가 이끄는 '철인정치'가 최고의 통치체제란 내용이다.

플라톤이 말한 지도자의 지혜는 철학적 지식과 통찰력 뿐 아니라 학습에 대한 열정까지 포함한다. 이밖에도 도덕성,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세 등을 플라톤은 강조했다.

동시에 플라톤이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한 것이 자신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자제력'이다. 플라톤이 말한 '자제력'은 오늘날 정치학에서 '제도적 절제'(institutional forbearance)란 개념으로 승화했다. 지도자 입장에서 제도적으로 주어진 권한이라도 관용의 자세로 인내하면서 사용을 자제하는 것을 말한다.

법적으로 가진 권한이라도 무절제하게 휘두르지 않는 지도자가 국가엔 이상적이라는 게 위대한 고대 철학자의 통찰이다.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2025.01.10. kmn@newsis.com /사진=김명년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2025.01.10. [email protected] /사진=김명년

#3. "리더십의 정수는 분별력(Prudence)이다."

미국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생전에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분별력'을 꼽았다. 주어진 정치적 상황에서 다양한 대안들을 검토한 뒤 국가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하는 판단력을 말한다.

법적으로 주어진 권한이라고 해서 지도자가 멋대로 사용해도 되는 건 아니다. 비상계엄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에게 부여된 비상대권은 아무 때나 쓰라고 준 게 아니다. 국가가 중대한 위기에 처해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에 대비해 맡겨둔 것이다.

국무총리 탄핵소추는 어떨까.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 중인데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무를 정지시키는 건 분별력 있는 태도일까.

비상계엄이든, 총리 탄핵소추든 그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정말 없었을까. 그 대안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주가 폭락, 환율 급등, 국가신용등급 강등 위기 등으로 우리 국민들이 받을 피해보다 클까. 그런 분별력이 있었다면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라는 비극은 없지 않았을까.

미국 대통령학의 대가 리차드 뉴스타트에 따르면 대통령의 권력은 '법적 권한'이 아닌 '설득'에서 나온다. 미국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후임 아이젠하워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명령하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가엾게도 말이야. 대통령 자리는 군 사령관과는 전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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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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