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HMM 나무호 피격 사태에 대해 "공식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주한이란대사관은 이란군의 개입을 공식 부인해 왔지만 나무호의 폭발과 화재 원인이 외부 공격으로 드러나자 침묵으로 선회했다.
주한이란대사관은 11일 머니투데이에 "(나무호 피격 관련) 별다른 입장이 없다"며 "추후 입장이 변화하거나 공식 입장이 정해질 경우 알리겠다"고 밝혔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는 전날 외교부 방문 후 '이란군의 개입이 없다는 입장이냐'는 질문에 "(이란) 외교부에 물어보라"며 "(한국 외교부와) 단지 이 사고에 관한 일반적인 이슈 일부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란은 튀르키예가 자국 영토에서 이란 미사일을 격추했다고 발표했을 때도 공격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나무호 피격 사건에 대해선 상반되거나 모호한 메시지를 발표해 혼선을 키웠다.
주한이란대사관은 지난 6일 이란군의 개입을 공식 부인하면서도 '의도하지 않은 사고'일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았다. 대사관은 "(이란 군의) 요구 사항과 작전상의 현실을 무시할 경우 의도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란군의 작전 구역 내에선 선박이 피격되더라도 통제에 따르지 않은 해당 선박의 책임이자 '의도치 않은 사고'라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여러 국적의 상선을 공격해왔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해협 내 약 30척의 민간 선박이 공격을 받아 10명이 숨졌다.
이란 대사관이 공식적으로는 이란군의 개입설을 부인한 당일 이란 국영매체 프레스TV는 이란이 규정을 위반한 한국 선박을 표적으로 무력을 행사했다고 보도했다. 에브라힘 아지지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은 이튿날인 7일 "이란군이 공격하지 않았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는 "언론사의 보도는 이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공격한 것이 사실이라면 정부나 군이 당당히 밝혔을 것"이라고 했다.
전날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4일 발생한 나무호 폭발 및 화재는 미상의 비행체가 선미를 1분 간격으로 두 차례 타격하는 피격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부위를 겨냥한 정교한 정밀 타격이었다는 점에서 의도적인 공격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란의 대표적 공격수단인 중소형 드론이 동원됐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란의 공격으로 사실관계가 최종 확인될 경우 외교적 파장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정부의 대이란 외교정책도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 이후에도 이란과의 관계를 이어왔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교장관 특사를 파견했으며, 50만달러(약 7억4000만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도 제공하기로 했다. 테헤란에도 대사관을 남겨두는 등 전후 대이란 외교관계를 고려한 행보를 보였다.
미국 측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더욱 거세게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국이 피해 당사자로서 파병에 대한 명분을 갖게 됐다는 점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한국 선박 26척이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여 있는 데다가 종전 후 한국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 문제를 포함해 에너지 안보 이슈가 다각도로 걸려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란이 26척의 한국 선박을 인질로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란을 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며 "파병도 국회를 거쳐야 하기에 우리가 피해를 봤다고 급하게 결정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도 "(공격 주체가)충분히 판명되면 이란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재발방지책과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영국·프랑스·미국 등과의 협의체에서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