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역차별"vs "생존 위한 균형 발전"…'호남 반도체' 정치 파열음

김도현 기자, 김성은 기자
2026.06.29 06:40

갈등의 늪에 빠진 반도체 (下)

정치적 셈법에 발표 전부터 잡음…'호남 반도체' 논란만 키운 與野

호남 반도체 투자 및 논란 타임라인/그래픽=최헌정

반도체 경쟁력 제고와 지역 균형발전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며 잡음이 커지는 모양새다. 보수진영에서 '왜 호남인지'를 놓고 정부여당 내 권력투쟁과 지역감정을 소환하며 논란을 키웠고, 이재명 대통령과 김용범 정책실장이 직접 여기에 대응하며 경제개발계획이 정치적인 문제로만 비치게 됐다는 지적이다.

28일 정치권 및 재계 등에 따르면 호남 반도체 투자 계획은 이달 초부터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24일 호남을 중심에 둔 제2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논의가 이뤄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현재 조성 중인 경기 용인의 클러스터와 별개로 제2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라고 인정했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19일과 25일 양사 총수와 비공개 회동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5일 "반도체 줄 테니 정청래 떨어뜨려 달라는 것"이라고 더불어민주당 내 권력투쟁과 이 사안을 엮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도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명청(이 대통령과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대전 총알로 쓰기 위함이라는 속셈이 다 드러났다. 국민들 입장에서 밥그릇 싸움일 뿐인 명청대전 이기려고 대한민국 미래인 반도체를 망치면 안 된다"며 정치적으로 해석했다.

차기 당 대표 선거를 앞둔 민주당은 차기 당 대표를 선출하는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2028년 총선 공천권이 걸린 이번 전당대회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의 당선을 바라는 이 대통령이 민주당 권리당원이 집중된 호남 표심을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투자를 유치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같은 날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명백한 역차별"이라며 지역감정을 소환했다. 영남 역차별 주장은 이번 투자 계획의 구상 단계에서 영남권 일부 지역이 포함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번 프로젝트의 첫 단추로 평가되는 정부의 지난해 12월 구상안에는 광주·부산·구미(경북) 등지에 주요 반도체 생산 기능을 분산하는 방안이 담긴 바 있다. 그러다 제조 기반이 탄탄한 영남권에는 피지컬 AI(인공지능)를 집중하고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남권에 반도체를 집중하기로 선회한 것이다.

호남이 부적합하다는 주장은 여당 내부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정부의 반도체 구상이 나온 직후 당시 전북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낸 안호영 민주당 의원은 용인에 지어지고 있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는 민주당 전북도당 중심의 이전을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경기 남부권을 지역구로 둔 여당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호남 반도체 불가론'을 강조했는데 이때 나온 논거들과 현재의 반대 주장이 궤를 같이한다. 결과적으로 여당 내 논쟁이 빌미를 준 셈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용수·송전망·협력사·인력 등이 동시에 맞아 떨어야 한다"고 하는 등 비슷한 주장이 확산했는데 이 역시 여당 내에서 제기됐던 내용들이다. 이정현 전 국민의힘 전남지사 후보와 국민의힘 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전 대구시장 등 보수진영 인사들이 관련 내용을 반박하며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지만 여러 의혹 제기와 반대 주장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정치적 논란이 이어지자 이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반도체 호남 입장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되 합리적 근거가 있다면 협조해주고 정치적 목적으로 지역 갈등을 조장하는 일은 자제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호남 반도체 생태계 조성은 국토 균형 발전, 뿌리 깊은 지방 차별, 영·호남 갈등 등을 완화할 국가적 대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균형 발전은 생존 전략"…靑, 호남 투자 논란 정면돌파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06.25. photocdj@newsis.com /사진=

호남권 제2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내용이 담긴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앞두고 야권이 십자포화를 퍼붓자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 정책 수장인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정면 돌파에 나섰다. 이번 보고회를 통해 제시할 국토대전환 구상에 국가의 명운이 걸렸다는 판단에서다.

◆ "모든 문제 수도권 과밀에서 비롯"…李 대통령, 집권 초부터 국토균형발전 '강조'

5극(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3특(제주·전북·강원) 전략으로 대표되는 국토균형발전은 이재명 정부의 대선 주요 공약이자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였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수도권 과밀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가 비롯된다며 수도권 집중 문제 해결 의지를 수 차례 강조해 왔다.

이 대통령은 28일 자신의 X에 "박정희 정부 시절의 수도권 및 영남 중심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세계가 놀라는 산업화의 성과를 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단적 수도권 집중이라는 거대한 부작용을 낳았다"며 "이로 인한 지방 소멸은 이제 단순한 균형 발전의 문제를 넘어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 당면과제가 됐고 균형발전은 이제 대한민국 핵심 생존 전략이 됐다"고 적었다.

모든 정부 난제였던 집값 문제도 결국 수도권 과밀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경남 창원 타운홀미팅에서 "수도권은 집 값 때문에 시끄럽다. 아파트 한 평에 3억원씩 하는 게 말이 되나"라며 "근본적으로는 수도권 집중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국토균형발전은 이제 생존 전략"이라고 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국토대전환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현 정부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 중 하나"라며 "집권 초이자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이야말로 적기"라고 말했다.

◆ 이재명 대통령·김용범 정책실장, 주말새 '폭풍 SNS'…물 부족론, 직권남용 의혹 조목조목 '반박'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김용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2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6.06.24. mangusta@newsis.com /사진=김선웅

이 대통령은 주말인 지난 27~28일 이틀에 걸쳐 호남권 등 지역 투자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글만 X에 수 차례 올렸다. 김용범 실장도 이례적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같은 기간, 같은 취지로 세 차례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 대통령과 김 실장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야권 비판에 대해 직접 '팩트체커'로 나선 것은 비생산적인 정치 논쟁에 휘말려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때문이다.

야권에서 제기된 '호남 물 부족 주장'에 대해 이 대통령은 지난 27일 "호남에도 영남이나 수도권만큼 물은 충분하다"며 "다만 수십년간 분할지배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호남을 농업도시 수준으로 관리하면서 농업용수 공급필요를 충족시키는 정도로 수자원을 방치해왔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 "첨단도시 발전에 필요한 만큼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수자원을 제대로 배치 관리하면 하루 100만톤의 산업용수 공급도 가능한 것으로 검토됐다"고 했다.

호남권에 제2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게 직권남용이라는 야권 비판에 이 대통령은 지난 27일 "이 일은 정확히 말하면 정부의 용수, 전력, 용지, 인프라, 인력양성, 정주여건 구축 등 기업환경 조성과 공직자들의 설득·요청에 따라 CEO들이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여 결단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건 직권남용이나 강요 지시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지도나 조성행정이라고 한다"고 맞섰다.

무엇보다 AI(인공지능) 대전환이 과거 산업혁명에 비견될 만큼의 주요 변곡점인 만큼 민관이 합심해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실장은 지난 27일 "우리가 짓는 것은 공장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권"이라며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공장 몇 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AI 시대의 핵심 생산 플랫폼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호남에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특혜가 아니다"라며 "정부의 대대적 지원 속에 관련 기업의 결단으로 가장 합리적인 반도체 산업 중심지를 추가 조성하는 것이다. 국토 균형 발전을 이뤄내고 뿌리 깊은 지방 차별과 영호남 갈등을 완화할 국가적 대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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