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전 오늘…6월 항쟁 이끌어낸 대학생 고문치사사건

박성대 기자
2016.01.14 15:08

[역사속 오늘]6월 항쟁의 도화선 '박종철'

박종철 열사 영정 든 서울대총학생회/사진=뉴스1

서울대 언어학과 과대표였던 박종철(1964~1987)은 1987년 1월14일 고문사했다. 그는 사망 전날인 13일 자정쯤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로 불법 연행돼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했다.

그가 끌려갔던 이유는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받고 있었던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유없이 끌려가 고문을 당했어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전두환 정권 말년의 모습이었다.

박종철은 이어지는 고문에도 대답을 거부했고 결국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숨을 거뒀다. 박종철은 11시45분쯤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졌고 의사가 검진했을 당시 이미 숨져 있었다.

당시 중앙일보 검찰 출입기자 신성호는 한 검찰 간부가 "경찰, 큰일 났어"라고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서 단서를 잡고 14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단독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자 다음날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단군 이래 가장 유명한 궤변으로 꼽히는 "책상을 '탁'치니 갑자기 '억'하며…"를 공식 발표했다.

쇼크사로 덮힐 수 있었던 이 사건이 고문사로 진실이 드러난 건 당시 부검의 의사 오연상의 진술 때문이었다. 14일 경찰 요청으로 대공분실 509호를 가장 먼저 확인했던 중앙대병원 내과전문의 오연상은 사건현장에 물이 흥건한 것을 목격했고 고문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언론에 알렸다.

결국 17일 정부는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전기고문과 물고문에 의한 살인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된 경찰은 서둘러 "2명의 수사관이 박종철군을 물고문하여 살해했다"고 모든 책임을 수사관들에게 떠넘겼다.

당시 전민련 상임의장이였던 이부영과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노력으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조작됐다는 게 밝혀졌고 이를 계기로 6월 항쟁이 시작됐다.

6월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했고 같은 달 29일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直選制)로의 개헌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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