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전 오늘…재일교포 문제 부각시킨 88시간의 인질극

박성대 기자
2016.02.20 05:45

[역사 속 오늘]'김의 전쟁' 일본 최장기수 '김희로' 사건

재일교포 김희로가 1968년 2월 20일 일본 시즈오카현에 위치한 온천여관에서 엽총을 들고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출처=일본 야후

48년 전인 1968년 오늘(2월20일) 전 일본 열도를 충격에 몰아넣는 사건이 발생했다. 발단은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에 위치한 클럽 밍크스. 야쿠자가 한 재일교포에게 빌려쓴 돈을 갚으라며 협박한 뒤 “조센징, 더러운 돼지XX”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서 온갖 차별과 모멸을 받아온 그는 이 한 마디에 분노를 참지 못했다. 곧바로 소지했던 엽총으로 야쿠자 두목과 그 부하를 겨누어 사살했다. 당시 41세의 이 재일교포 남성은 ‘김희로’다.

2명을 사살한 그는 현장에서 45㎞ 떨어진 시즈오카현 스마타쿄 후지노미 온천여관으로 달아나 여관주인과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장장 88시간의 인질극을 벌였다.

인질극과 그가 주장한 재일교포 차별문제는 TV와 신문을 통해 일본 전역에 생생하게 전달됐다. 그동안 일본에서 쉬쉬하던 재일교포의 인권과 차별문제가 수면 위로 본격 부각되는 계기가 된 것.

인질극을 지켜보던 그의 어머니는 김 씨에게 한복 한 벌을 건네준 뒤 “일본인에게 붙잡혀 더럽게 죽지 말고 깨끗하게 자결하라”며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그는 사건 나흘째 기자로 위장한 수사관에 의해 전격 체포됐다. 체포된 뒤 여관주인에게 손목시계를 풀어주며 여관비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김의 전쟁’으로 불리는 그의 기나긴 수감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약 8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1975년 11월 무기징역이 확정된 그는 1999년 9월7일 가석방되기까지 31년의 세월을 일본 최장기수로 살아야 했다. 일본법상 무기수로 10년이 넘은 모범수는 가석방 대상이 되는 게 상례였다.

김 씨는 교도소 표창도 8차례나 받았지만 면회를 온 어머니에게 “목숨이 붙은 채 교도소 문을 나서면 일본에 남아 재일한국인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공언한 탓에 매번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 씨 사건이 단순 상해사건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석방운동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됐다. 국내에선 종교인 중심으로 석방탄원이 줄기차게 이뤄졌었다.

1992년 1월엔 그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김의 전쟁’이란 제목으로 개봉됐고 지상파 방송에서도 김 씨 사건을 집중조명했다. 결국 1999년 가석방과 함께 귀국한 뒤 그는 친아버지의 성을 되찾아 권희로로 개명한다. 이후 귀국 11년 만인 2010년 3월26일 지병인 전립선암 투병 중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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