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망명 실패했다"…직장인 A씨의 한숨

윤준호 기자, 김주현 기자
2016.03.11 03:51

텔레그램 깔아봤자, 어차피 "카톡"…'메신저 망명' 딜레마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직장인 A씨는 지난 2일 '테러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을 보고,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을 삭제했다. 테러 의심 인물에 대해선 국가정보원의 감청 권한이 늘었다는 것에 대한 반감에서다. A씨는 카톡을 대신하기 위해 외국계 메신저 '텔레그램'을 깔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A씨에게 말을 거는 친구들이 부쩍 줄어들었다.

테러방지법(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공포 후 외국계 메신저로 갈아타는 '사이버망명'이 유행이다. 하지만 다른 사용자와 함께 망명할 수는 없는 탓에 카카오톡을 되찾거나 삭제하지 못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국내 대기업에 근무 중인 이모씨(33)는 "테러방지법 통과로 인해 카카오톡을 쓰기 꺼림칙했다"면서도 "텔레그램을 깔았는데 거의 쓰진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카카오톡 검열 논란도 있어 이참에 사이버 망명을 시도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이 쓰지 않아 실패했다는 말이다.

이씨는 "여전히 업무 지시나 동기들 단체 대화는 카카오톡에서 한다"며 "사이버 망명을 하려 해도 다른 사람이 같이 오지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물었다. 텔레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확인 여부가 불투명해 단문메시지(SMS)나 카카오톡으로 "텔레그램을 확인해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이가 있는 직장인 이모씨(32·여)도 사정은 비슷하다. "부모님이 있는 단체대화방에 아이 사진을 보내드리곤 했는데 텔레그램으론 할 수가 없다"며 "부모님까지 옮기게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국회의 '필리버스터 정국'을 지켜보며 텔레그램을 깔았다는 진모씨(24·여)도 "카카오톡 친구는 360여명인데 반해 텔레그램은 40명만 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친구 모임, 스터디 그룹 등 단체대화방만 7개가 넘는다"며 "다 함께 망명하지 않는 이상 카카오톡을 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김모씨(30·여)도 "누군가 내 사생활을 들춰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찜찜하다"면서도 "3~4주 텔레그램을 쓰다 돌아왔다"고 했다. "은행에서 일하면서 업무상 연락, 고객관리도 다 카카오톡으로 하고 있어서 별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김씨는 "말이 사이버망명이지 이미 한국은 '카톡공화국'이다"라고 꼬집었다.

반면 꿋꿋이 사이버 망명 생활을 유지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자영업자 엄모씨(39)는 현재 텔레그램과 왓츠앱, 위챗, 페이스북 메신저 등만 사용한다. 지인들 대부분이 사용하지 않는 외국계 메신저만 쓰다 보니 실제 메신저로는 소통이 적다. 대부분의 연락은 문자메시지(SMS)에 의존하는 편이다.

엄씨는 "처음 카카오톡을 탈퇴했을 때 '날 차단한 거 아니냐', '스마트폰에 문제가 있냐'는 등의 지인들의 오해를 많이 받았다"며 "단체대화방에서도 빠지게 돼 다양하게 소통하기 어려운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주요 모바일 게임, 카카오페이 등의 결제 서비스들이 주로 카카오톡과 연동돼 탈퇴시 사용이 어려운 것도 불편한 점이다.

그러나 그는 "하지만 카카오톡이 없는 생활에 익숙해지면 다른 메신저나 SMS만 사용해도 실생활에선 큰 무리가 없다"며 "오히려 나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더 불편해 한다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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