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오늘… 장군의 아들, 국회에 인분 던지다

진경진 기자
2016.09.22 06:09

[역사 속 오늘] 김두한, 사카린 밀수 사건 연루된 총리·부총리 등에 투척

국회의원 시절의 김두한. /사진=위키미디아

"나는 배우지 못해서 말은 못하나 행동으로 부정과 불의를 규탄하겠다. 여기 앉은 각료들은 3년 동안이나 부정과 부패를 한 피고들이다."

1966년 9월22일 '한국비료공업의 사카린 밀수 사건'을 추궁하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날 마지막 질의자로 단상에 오른 한 국회의원이 언성을 높였다. 국회의원보다는 장군의 아들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김두한 당시 한국독립당 의원이었다. 그의 발 옆에는 마분지로 포장된 양철통도 놓여있었다. 증거로 가지고 온 사카린이라고 했다.

당시 삼성그룹의 계열사였던 한국비료는 건설 자재를 가장해 수천만원 상당의 사카린(인공 감미료) 원료 60톤을 밀수했고,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이 정치 자금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세청은 해당 사실을 확인하고도 추징금만 걷은 채 봐주기식으로 사건을 끝냈다.

박정희 대통령이 '밀수'를 '5대 사회악' 중 하나로 규정하고 발본색원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때였다. 한 언론이 이 사건을 폭로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었고 결국 '특정재벌 밀수 사건에 관한 질문'이 상정돼 대정부질문까지 열리게 됐다.

김두한은 이 자리에서 "부정과 불의를 합법화하는 이 국회를 용서할 수 없고 관계 장관들은 부정, 부패를 합리화한 피고로서 사카린맛을 봐야한다"고 외쳤다.

그리곤 단상 앞으로 나와 양철통의 포장지를 풀어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 등이 앉아 있는 국무위원석에 내용물을 뿌렸다. 사카린이 아니었다. 전날 밤 그의 집에서 퍼온 인분이었다.

국민들은 환호했지만 국무위원들의 얼굴과 옷은 인분으로 범벅됐다. 본회의장은 악취로 도배됐고 회의는 그대로 끝났다.

여야 의원들은 김두한의 행동을 비난하며 제명 이상의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건 이틀 뒤 김두한은 국회에 출석해 의원사직서를 제출했고, 국회는 즉각 본회의를 열어 사표를 수리했다.

김두한은 "제 자신도 모를 일시의 흥분으로 그러한 사태를 벌이게 돼 대단히 죄송하다"며 "국회의 권위를 위해 이 자리를 내놓는다"고 사과했다. 그는 이후 '국회의장 모욕 및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서대문 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이 사건으로 한국 비료는 국가에 헌납됐고, 총리와 국무위원들도 내각 총사퇴를 결의했다. '국회의사당 내 국정을 논의하는 가운데 이 같은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는 행정부의 권위와 위신을 위해 국정을 보좌할 수 없다'는 게 사퇴 이유였다.

이후에도 국회는 '특정재벌 밀수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 규명에 나섰지만 뚜렷한 결말 없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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