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9월23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2가 83-7번지에 위치한 당시 중화민국(대만) 대사관이 열쇠를 한국 외무부에 넘겼다. 중화민국 대사관의 새 주인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됐다. 같은 시간 주 타이완 섬 타이베이 한국 대사관도 공관을 비웠다.
한 달 전인 8월24일, 한국은 중국과 수교하는 동시에 대만과 단교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국 본토와 타이완, 홍콩, 마카오는 하나고, 전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는 자신뿐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자국과 수교하는 국가들에 이 원칙을 따를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한국도 대만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중국 본토와 대만의 갈등은 1921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중국 공산당이 창당하면서 기존 중국 국민당과 세력을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1949년 두 당간 국공내전이 벌어지고 승리한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했다.
중국 국민당은 난징에 있던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베이로 옮겼다. 이후 중국 본토 통치권은 완전히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갔다.
대만은 1971년 유엔 내 중국 대표의 모든 권리와 지위를 중국에게 넘겨주고 유엔도 탈퇴했다. 공산국가 진영에서 중국의 법통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승계했다고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후 대만과 세계 각국의 단교가 잇따랐다. 일본은 1972년,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1948년 처음 수교를 시작한 한국과 대만의 단교는 쉽지 않았다. 대만 정부는 일제시대 당시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을 지원했고,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엔 중국이 북한을 돕는 사이 심리전 요원을 파견해 한국을 지원했다. 냉전 시기에 같은 반공·분단국가 처지였기에 더욱 친밀하게 느껴졌다.
한국이 대만과 단교를 결정했을때 그들의 배신감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것이었다. 단교가 발표된 날 명동의 대만 대사관 앞에는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다'라는 의미인 '망은부의'(忘恩負義)라고 쓰인 피켓이 등장했다.
반한(反韓) 감정이 격해진 일부 대만인들은 태극기를 불태우고 한국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타이베이 직항 노선이 중단되고 관광객 수도 크게 줄었다.
하지만 단교 1년 후인 1993년 한국과 대만은 각각 대표부를 파견해 비공식 외교루트를 열었다. 대만과 공식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많은 국가들이 쓰는 방법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중국과 대만 사이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11월 대만 출신인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17)가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드는 모습이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된 것이다.
대만은 대외적으로 '중화민국'이라는 이름 대신 '중화(차이니즈) 타이베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 장제스가 창안한 '청천백일만지홍기'도 국기로 사용할 수 없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국에선 쯔위가 대만의 국기를 흔든 행위가 독립을 주장한 것으로 인식돼 비난 여론이 커졌다. 사태가 악화되자 쯔위는 "자신은 독립 관련 발언을 한 적이 없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