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16일. 박정희 당시 육군 제2군 부사령관은 쿠테다를 일으켜 실권을 장악했다. 그는 6일만에 지방의회, 국회를 해산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구성해 자신이 의장으로 앉는다. 이때부터 사회단체나 정당의 활동도 제한됐고 기존의 헌법도 '중지'됐다.
1년이 조금 지난 뒤 박 의장은 헌법 개정안을 발표한다. 대통령의 권한이 대폭 강화됐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44년 전 오늘 (1962년 11월5일)은 박 전 대통령의 17년 재임의 초석을 다진 헌법 개정안이 통과된 날이다.
5·16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위원회는 그해 7월 헌법개정특별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 박 위원장이 당시 헌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내건 조건은 '민정 이양'이었다. 9인으로 구성된 심의회는 3개월간의 검토 끝에 수정된 헌법을 내놓는다. 전문 5장 121조 부칙 9조로 구성됐다.
헌법 개정안에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이 담겨 있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맡으며 국무총리도 국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재임이 가능하도록 했다. 계엄권, 긴급명령권 등 대통령이 나라를 통제할 수 있는 카드도 늘어났다.
하지만 정치활동의 자유나 개인의 자유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기본적으로 헌법에는 인간의 기본권을 존중한다는 헌법정신을 이어갔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물론 직업 선택의 자유, 주거의 자유, 양심의 자유도 추가로 넣었다. 이와 동시에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한 일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특히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은 국회의원에 출마하거나 정치활동을 할 수 없게했다. 쿠데타 이후 정지시킨 헌법재판소는 다시 살리지 않았고 비상설기관인 '탄핵재판소'를 세웠다. 중립적인 헌법기관으로 선거관리위원회도 신설됐다.
이 내용의 헌법 개정안은 국가재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으며 그해 12월17일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국민투표를 통과한 6차헌법은 다음 해인 1963년 12월27일부터 시행됐다.
이 헌법 수정안은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겉으로 보기엔 미국식인 강한대통령제 국가를 표방하고, 개인의 자유를 확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들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수정안 곳곳에서 드러났다.
결국 이 헌법은 박 전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며 그가 17년간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이 이 헌법에 이어 대통령 3선제가 가능하게끔 6차개헌 절차를 밟았다. 3선으로 대통령이 된 박 전 대통령은 1972년 집회, 시위의 자유, 정당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7차 헌법 개정안(유신헌법)을 만들어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