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 확인은 남성의 유일한 권리다. 호주제 폐지에 반대한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약자라고 억지부리며 온갖 혜택은 다 누리고, 남자를 노예처럼 부린다."
그는 시원하게 속얘기를 털어놨다. 침묵했던 일부 남성들은 그를 열렬히 지지하며 그의 발언에 환호했다. 하지만 대다수 여자들은 그의 생각과 말을 '혐오'했다. 말로써 남성의 권리를 주장한 그는 결국 단체까지 설립한다. 그는 철저하게 남자 입장에서 남성의 권리를 주장했다.
6년 전 오늘(2010년 11월26일) 고 성재기씨가 반페미니즘남성연대를 창립했다. 보잘 것 없는 작은 단체에 불과했지만 성씨의 주장은 속내를 털어놓지 못했던 일부 남성들의 큰지지를 받으며 여성과 남성의 갈등이 심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는 우리나라 사회가 남성의 권리를 철저하게 유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시각은 독특했다. 일단 여성과 남성의 능력은 동등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제껏 남성이 우월한 사회지위를 누리면서 여성의 권리를 박탈해 경제력, 사회 인식 등이 동등하지 않음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성재기씨는 파격적인 주장을 늘여놨다. 여성들이 남성의 성욕을 이용해서 남성을 부려먹는다고 주장했다. 또 포르노 영상·성매매 등이 남성의 왜곡된 성인식을 키우는 것이 아닌 성욕구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보고 이에 대한 처벌은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 가산제를 폐지를 반대했고 여성의 생리휴가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면서 가부장적 책임에서 남자를 자유롭게 주장하는 등 일관성 없는 주장도 계속됐다.
그의 시각에선 우리나라 여성들은 자신이 약자임을 이용해 혜택을 받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이런 시각 때문에 여성단체에서는 그를 비판했으며 오히려 남성과 여성 간의 성대결을 부추기기도 했다.
2000년대 중후반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하던 성씨는 2010년 뜻을 모은 사람들과 함께 단체를 설립한다. 이 단체에서 그는 '남성 중심' 권리를 꾸준히 요구하며 싱글대디, 노숙인, 남자 동성애자들을 지원했다.
하지만 그의 남성연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일반적 시각에서 크게 벗어났던 그의 단체를 후원해줄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 사재를 털어 수억원을 쏟았지만 돌아오는 후원금은 10분의1도 안됐다.
그러던 중 그는 한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이 모든 남성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한강에서 투신하겠다고. 2013년 7월26일 그는 마포대교에서 결국 자신의 몸을 던졌다. 당시 함께 그를 지켜보던 지인과 취재진들이 곧바로 구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사흘만에 여의도 밤섬 인근에서 시체로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