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30분 서울 광화문 사거리. 술자리를 마친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저마다 손을 흔들기를 30여분. '빈 차' 불이 켜진 택시들은 손님들을 힐끗 쳐다보고 그대로 지나쳤다. 가까스로 멈춰선 택시 한 대에 손님이 몸을 욱여넣자 택시기사가 묻는다. "혹시 콜 부르셨어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콜 영업이 시장을 장악하며 승차거부 양상도 달라졌다. 직접적인 승차거부 대신 '디지털 승차거부'(콜거부)가 일상이다. 단거리 승객의 택시 잡기는 더 어려워졌다. 장거리 승객의 콜만 골라 받는 택시기사들은 당당하다. 승차거부와 콜거부는 엄연히 다르다는 인식이다.
3일 머니투데이가 서울시 개인·법인 택시기사 100명을 상대로 인터뷰한 결과 택시기사들의 70%(70명)는 '일상적으로 콜거부를 한다'고 응답했다. '콜거부를 하지 않는다'는 대답은 19%(19명)에 그쳤다. 나머지 11명은 택시 앱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 택시기사는 승차거부와 콜거부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100명의 택시기사 가운데 콜거부를 승차거부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9%(9명)에 그쳤다. 택시기사 대부분인 91%(91명)은 콜거부는 승차거부와 달리 불법이거나 비윤리적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콜거부를 정상적인 영업의 하나로 생각했다. 승객과 대면 접촉 없었기 때문에 승차거부가 아니라는 태도다. 심야 시간 승객이 택시를 못 잡아 귀가하지 못하는 결과는 승차거부와 같지만 택시기사들의 인식은 달랐다.
7년째 개인택시를 몰고 있는 김민석씨(60)는 "승객에게 목적지를 물어보지도 않았고 승객이 타지도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승차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오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웬만하면 장거리 손님 위주로만 태운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들이 콜거부를 서슴지 않는 이유는 기존 승차거부 규정이 손님과 접촉이 있었을 때만 적용돼서다.
서울시에 따르면 승차거부 유형은 △택시가 승객 앞에 정차해 목적지를 물은 후 승차시키지 않고 출발하는 행위 △빈차등을 끄거나 고의로 예약등을 켜고 승객을 골라 태우는 행위 △승객이 밝힌 목적지와 반대로 간다며 승차를 거부하는 행위 △택시호출 시 요청한 목적지가 탑승 후 변경됐을 때 해당 승객을 하차시키는 행위 △일행이 승차한 후 각각 하차지점이 다를 때 선 하차지점에서 모두 하차시키는 행위 등이다.
10년째 택시를 운행하는 이모씨(50)는 "앱이 없었을 때는 길거리에 나온 손님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지만 앱이 나온 이후로는 굳이 손님에게 방향을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며 "카카오앱이 나오고 손님을 골라태우는 행위가 많아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앱택시 활성화에 따른 택시 운행행태의 변화와 관리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앱을 활용해 영업했을 때가 무작위로 거리에 있는 손님을 태웠을 때보다 장거리 통행 비중이 훨씬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무작위로 영업을 할 때는 5㎞(킬로미터) 이하 단거리 영업의 비율이 62.5%, 10㎞ 이상 장거리 영업이 18.0%였다. 반면 앱택시 이용 영업의 경우 5㎞ 이하 단거리 영업은 24.3%, 10㎞ 이상 영업은 45.9%였다.
콜거부 문제가 커지면서 카카오택시는 지난해 10월부터 콜 알고리즘을 변경하고 단거리 운행을 많이 한 기사에게 장거리 콜을 우선 배정해주는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지만 현장에서 콜거부는 여전하다. 개인택시 경력 15년차 이우석(63)씨는 "알고리즘을 바꿨다고 하는 데 영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특히 돈벌이가 그나마 되는 자정에서 새벽 2시까지는 대부분 장거리 손님만 태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콜거부도 승차거부처럼 명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목적지를 알리지 않는 대신 충분한 보상을 줘서 택시기사들의 콜거부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안기정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 연구위원은 "싱가포르에서는 승객들이 목적지를 표시하지 않고 택시앱을 통해 택시를 호출할 수 있다"며 "의무적으로 목적지를 표시하도록 하는 택시앱은 시정조치를 통해 승객이 목적지를 표시할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