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개발조합, 강제퇴거자에 이전비 미리 줘야"… 고법 첫 판결

황국상 기자
2019.04.18 17:39

[the L] 서울고법, 인천지법 1심 뒤집고 2심서 파기자판... "조합의 이사비 등 지급, 거주자의 부동산 인도의무보다 선이행해야"

지난 1월16일 박원순 시장이 을지로 일대 재개발사업을 전면 재검토 한다고 밝힌 가운데 22일 오후 서울 중구 세운3구역 상가 인근에 철거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재개발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강제로 이주해야 하는 거주자에게 조합이 주거이전비, 이사비 등을 미리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또 나왔다. (관련기사,2018년 9월13일자 [단독] 법원 "세입자도 재개발 '이사비' 못받으면 집 안넘겨도 돼") 드물게 하급심에서 조합의 '선지급 의무'를 확인한 판결이 있었지만 고법에서 이를 확인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6부(부장판사 황병하)는 인천의 한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A씨를 상대로 낸 부동산을 넘겨달라고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의 1심을 파기하고 조합의 청구를 기각했다. 조합이 A씨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부동산 인도청구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2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2016년 7월 인가된 관리처분계획에 따라 조합은 A씨가 소유한 토지와 건물을 포함한 인천 한 지역에서 재개발 정비사업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조합과 A씨는 토지·건물 수용 보상금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인천 지방토지수용위원회가 토지·건물에 대한 손실보상금을 3억1300여만원으로 정했고 조합은 이를 공탁했다. 별도의 이주정착금이나 주거이전비, 이사비 등은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A씨는 조합의 청구에 대해 "조합의 이주정착금, 주거이전비, 이사비 지급의무가 피고(A씨)의 부동산 인도의무보다 선이행 또는 동시이행 관계에 있다"며 "조합으로부터 이주정착금, 주거이전비, 이사비를 지급받기 전까지 조합의 청구를 거절할 수 있다"고 맞섰다.

1심에서는 A씨의 이 같은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2심에서는 판단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도시정비법은 법이 정한 현금청산 대상자에 대해 보상대상 주거용 건축물에 대한 평가액의 30%에 해당하는 이주정착금, 가구원수별 명목 가계지출비를 기준으로 한 2개월치 주거이전비, 가재도구 등 동산 운반에 필요한 이사비 보상이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는 청산금을 통해 생활의 근거를 상실한 현금청산 대상자의 손실을 보전하고 종전과 같은 생활상태를 유지·재건할 수 있도록 한 보상조치"라며 "관련법리에 따르면 A씨가 부동산을 인도하는 것에 앞서 조합이 A씨에게 이주정착금, 주거이전비, 이사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조합은 A씨가 이주정착금 등을 미리 청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조합은 이를 법규에 따라 산정해 공탁할 수도 있었다"며 "조합의 주장은 도시정비법, 토지보상법 취지를 망각한 태도"라고 판단했다.

한편 재개발 조합이 강제퇴거 거주자에게 주거이전비와 이사비 등을 먼저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에도 인천지법에서 한 재개발 조합이 세입자를 상대로 건물에서 퇴거할 것을 청구한 소송에서도 '이사비 등 선지급 의무'가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 차원에서 조합의 선지급 의무가 확인된 적은 아직까지 없다.

법원 관계자는 "법리를 따지면 조합의 선지급 의무가 있음이 명확하다고 보임에도 이 같은 판단은 아직 법원 내에서 소수에 불과하다"며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은 향후 법원의 판례가 달라질 조짐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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