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영상 범람, '배우의 실종''연기의 소멸'
감정 기계적 조립, 진짜·가짜 흐려져도
'인간의 신체'가 건네는 감동 선명해져
챗GPT가 사용자들의 얼굴을 만화 캐릭터로 바꿔주며 대중화의 포문을 연지 일 년 남짓, AI(인공지능) 이미징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엉성한 오류로 놀림당하던 것은 옛말이 되고, 이제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깜빡 속을 정도로 정교한 AI 영상들이 늘어난다. 얼마 전 극장을 찾았는데 본영화 시작 전에 상영되는 광고의 상당수가 AI 영상이었다. 화면 아래 작은 글씨로 "AI로 생성한 영상입니다"라는 고지가 없었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SNS와 숏폼 플랫폼에도 국적을 알 수 없는 AI 영상물들이 쏟아진다. 재미있는 밈(meme)부터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까지 그 성격도 목적도 다양하지만, 이들의 공통적 특징은 익숙한데 자연스럽지는 않고, 단순한데 통일성은 없는 것 같다. 특히 AI 배우는 같은 인물인가 싶다가도 장면마다 미세하게 인상이 달라지고, 눈매나 표정에서 발생하는 묘한 이질감 때문에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스페인의 거장 부뉴엘 감독은 영화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에서 한 명의 여주인공을 전혀 닮지 않은 두 배우가 번갈아 연기하는 독특한 실험을 감행한 적이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분열적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연출이었는데, 사실 이러한 사례는 역으로 전통적인 영화가 '단일하고 통일된 인물'이라는 허상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를 부각한다. 현실의 수많은 복잡성을 털어낸 가상의 서사를 이끌어 가려면 단일하고 견고한 존재적 영토가 필요하고, 편집으로 뭐든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배우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기(Acting)는 단순히 그럴듯하게 대사를 외워 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몸과 얼굴, 그리고 목소리라는 배우의 고유한 정체성을 배역과 일치시켜 나가는 헌신적인 과정이다.
생성형 AI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영상에서는 배우의 실종과 함께 그러한 '연기'의 본질도 사라진다. AI 영상의 제작 과정에서 배우의 신체는 기계적으로 해체되고 재조합된다. 동선을 잡는 대역의 '몸' 위에, 프롬프트가 불러낸 가상의 '얼굴'이 씌워지고, 그 위로 인공지능이 복제한 '음성 클론'이 얹히는 식이다. 고유성이 삭제된 얼굴은 프레임과 표정 단위로 잘게 분해되어, 계산된 데이터와 톤의 '배치'에 따라 기쁨, 슬픔, 분노를 기계적으로 조립해 낸다. 전통적인 의미의 연기는 사라지고 지시문(Prompt)의 조합과 그 결과물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무성영화 시기, 최초의 스타 배우로 꼽히는 아스타 닐센의 연기 중 전설처럼 회자되는 장면이 있다. 부유한 청년을 유혹하도록 고용된 여자의 심경 변화가 드러나는 연기다. 여자는 처음에는 사랑하는 척 연기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 청년을 진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를 고용한 남자가 커튼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이제 그를 '거짓으로 사랑하는 척' 연기해야 한다. 몸짓도, 표정도 이전과 똑같고, 그녀의 행동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마음의 변화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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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란 사실이 아닌 것을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속임수의 기술이 아니다.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외면을 만들기 위해 배우는 자신의 생체적 시간과 신체적 한계를 모두 던져 넣는다. 떨리는 동공 속의 놀라움, 분노로 억눌린 숨소리, 미세한 근육의 경련까지, 스크린을 채우는 모든 것은 배우라는 한 개인의 생명력과 무관하지 않다. 연기는 배우가 자신의 존재를 여러 겹으로 읽어낼 수 있게 나누고 다져가는 과정이기에, 기계가 대체하거나 흉내 낼 수 없는 감동과 아름다움을 준다.
파편화된 코드와 알고리즘의 배치로 완성되는 AI 영상의 시대,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점점 흐려진다. 하지만 오직 인간의 신체만이 건넬 수 있는 감동과 진실의 영역 또한 한층 선명해진다는 게 조금 위안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