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배정석] 민주주의 흔드는 '영향력 공작'

[MT시평/배정석] 민주주의 흔드는 '영향력 공작'

배정석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
2026.07.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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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석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
배정석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대국민 연설에서 자신이 패배한 2020년 대선에 중국이 개입한 정황을 공개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을 재탕하며 선거제도의 신뢰를 훼손하여 재선 실패 시, 불복의 빌미를 만들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하지만, 미국 선거에 외세의 개입 시도가 있었던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다만, "시도가 있었다"는 2020년보다 더 확실한 사례는 트럼프가 승리한 2016년 선거였다. 당시 미국 국가정보장실(ODNI)은 "러시아 정보기관의 개입이 있었다"고 공식 확인했다.

러시아는 사이버 공격을 통해 상대 후보인 힐러리의 보안 위반, 민주당 경선 부조리 등을 수집해 폭로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허위 정보 유포와 여론조작으로 트럼프를 지원했다. 임기 말의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 정보기관 두 곳(FSB, GRU) 제재, 정보요원 35명 추방, 외교 시설 2곳 폐쇄 등 강력히 대응한 것도 근거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은 상대국의 정책 결정이나 여론이 자국에 유리하도록 만들기 위한 정보기관의 비밀공작이다. 주로 정치인, 언론인, 학자를 포섭하거나, 가짜뉴스 유포(Disinformation) 등을 활용한다. 최근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직접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져 위협이 대폭 증대되었다.

지난 5월 캘리포니아주 아카디아의 시장인 에일린 왕이 중국 정부를 위한 불법 대리인(Illegal Agent) 혐의로 기소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녀는 웹사이트 'US 뉴스센터'를 운영하며,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부의 지령을 받아 중국에 유리한 여론 형성에 기여했다.

2021년 캐나다 총선에서는 중국의 '반중 후보 낙선운동'이 확인됐고, 2022년 2월에는 호주 방첩기관(ASIO)이 "총선에서 친중 인사들을 당선시키려는 중국 정보기관의 시도를 적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도 2022년 중국계 변호사 크리스틴 리가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부와 연계되어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제공하며 친중 입장을 확산해 온 사실이 방첩기관(MI5)에 적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3년 11월 인터넷 신문을 가장해 친중 여론을 확산시키려던 38개 웹사이트가 적발되어 충격을 주었다. 외국 정보기관은 교민 활용, 후원금과 언론 매체를 통한 영향력 확대, 여론 주도층 포섭 전략 등을 구사한다. 지지율 차이가 박빙인 경우, 선거 결과를 바꾸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향력 공작은 민주주의의 투명성과 자율성을 잠식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정보활동은 현행 간첩죄로는 처벌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찍이 1938년 제정된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통해, 사전에 등록하지 않고 외국을 위해 활동하는 것을 처벌하고 있으며, 호주·영국·캐나다도 최근 유사한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우리도 외국 대리인 등록제를 시급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여론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외부의 물리적 공격보다 은밀한 침투와 영향력 공작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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