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사외이사 책임 판례보니…대주주가 대신 물어주기도

황국상 , 최민경 기자
2019.05.27 18:12

[the L][사외이사의 탈출구]불법감시 미흡 뿐 아니라 '임무해태'로도 책임인정, 개인제재 방안은 '미흡'

[편집자주] 사외이사는 주식회사 경영의 조력자이자 감시자임에도 거수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적책임에도 불구하고, 거수기 역할의 면죄부가 늘고 있다. 사외이사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편법과 맹점을 들여다봤다.

"주식회사의 이사들이 합리적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면, 이사들이 결의에 찬성한 행위는 이사의 선관주의(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에 위배되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는 2012~2013년 강원랜드 사외이사들이 태백시에 대한 150억원 규모의 부실한 기부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강원랜드에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의 대법원 선고 취지다.

상법 제399조는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정관에 위배된 행위를 하거나 △임무를 게을리 하는 등 방법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 이사들이 연대해서 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해사(害社) 행위가 이사회 결의에 의한 때는 해당 이사회에서 찬성표를 던진 이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돼 있다.

법원이 사외이사가 사내이사 및 회사의 경영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을 때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 강원랜드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코스닥에 상장됐다가 분식회계 등을 이유로 상장폐지된 코어비트의 투자자들이 회사의 전·현직 임원과 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사외이사 A씨는 "회사에 출근도 하지 않았고 이사회 결의에도 참가하지 않았다"며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4년 12월 A씨의 주장에 대해 "실질적 활동을 하지 않는 사외이사라고 하더라도 대표이사와 다른 이사들의 업무를 감시·감독할 책임이 있다"고 '선관주의 위반'을 이유로 책임을 지도록 했다.

과거에는 사외이사에게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 자체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법무법인 한누리의 구현주 변호사는 "과거에는 이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구하는 소송을 내더라도 사외이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많지 않았다"며 "사외이사가 사내이사에 비해 정보접근성이 낮은 데다 주도적으로 문제가 될 행위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책임인정 여지가 더 높은 사내이사에게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며 기업 차원의 잘못된 결정이 사회 전체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며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사외이사에게도 책임을 묻는 움직임이 늘어났다. 2016년 이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이 불거지고 난 후 투자자들이 잇따라 제기한 다수의 소송에서 사외이사들이 피고로 이름을 올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코어비트 사건이 사외이사가 회사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인정한 사례라면 이번 강원랜드 기부금 사건은 사외이사에 보다 엄중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한단계 진일보한 판결로 평가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책임을 사외이사들이 지지 않고, 태백시에 구상권을 청구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데 있다.

윤승영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법은 이사가 법령·정관에 위배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만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도 회사에 대한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코어비트 사건이 명백한 불법행위를 감시하지 못한 책임을 물은 판례라면 이번 강원랜드 판결은 사외이사의 임무해태에 대해서도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번 강원랜드 판결의 한계는 있다. 법원이 사외이사의 책임을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결정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나 기업이 사외이사로부터 손해 전액을 보전받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강원랜드 사건만 보더라도 강원랜드의 전직 사외이사 7명은 문제가 된 이사회 결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확약서를 써 준 태백시 등에 대해 구상금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사외이사들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고 피해는 기업이 입었음에도 실제 돈을 물어줘야 하는 이들은 사외이사가 아닌 외부인이라는 얘기다.

다수 기업들은 사외이사 뿐 아니라 이사회 멤버들이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질 경우 이를 금전으로 보전하는 내용의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이같은 보험은 경영진들이 과도하게 위험회피적인 결정만 내림으로써 기업발전을 저해하지 않도록 과감한 결단을 내리도록 보조하기 위해 도입된 장치이지만 그 취지와 맞지 않게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린 이사들의 책임을 덜어주는 쪽으로도 쓰인다는 지적이 있다.

더구나 기업 오너나 대주주가 잘못된 의사결정에 참여한 사외이사가 부담해야 할 몫을 대신 짊어진 경우도 있다. 1999년 LG화학이 100% 보유한 LG석유화학 지분을 옛 LG그룹 대주주 일가에게 헐값에 매각해 2640억원 상당의 손해를 회사에 끼친 사안에 대해 참여연대가 고(故) 구본무 회장 등을 상대로 회사에 손해를 배상하라는 주주대표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구 회장 등이 LG화학에 400억원을 배상해야 하고 △당시 LG화학 이사회 결의에 참석한 사외이사들도 400억원 중 30억원에 대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때 구 회장은 사외이사들이 내야 할 30억원 전액을 자신이 대신 납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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