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서울 대림역 주변 한 오피스텔. 가상통화(코인) 투자설명회에 주부와 은퇴한 직장인 등 50~70대 20여명이 몰렸다. 투자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은 "수백퍼센트(%) 수익률"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30분간 설명회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강사에게 몰렸다. 이들은 "잘 모르겠고 투자하면 되는 거지?", "내가 돈 줄 테니 투자 좀 해 줘"라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코인 투자 광풍이 몰아친 지 1년 6개월, 거품이 꺼진 시장에 코인을 이용한 유사수신 다단계 사기가 번지고 있다. 1년만에 수십~수백배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만 수만명. 주로 50~70대 주부, 은퇴한 직장인이 '묻지마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불법 다단계 투자설명회에서 강사를 지낸 김모씨(52)를 만났다. 김씨는 모피 유통·건물 철거·PC방 사업을 연이어 실패한 뒤 택시기사를 하던 중 친구 말에 속아 투자에 뛰어들었다.
김씨가 투자한 코인은 해외 마케팅 회사가 만들었다는 F코인으로 광고를 보면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코인을 지급한다는 말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투자자를 관리하는 지역 센터장이었던 친구의 권유로 투자를 시작한 김씨는 결국 투자설명회 강사로 나섰다. 그러나 유사수신행위에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가 잇따르면서 경찰은 이 F코인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김씨는 "실체도 불분명하고 수익률도 터무니없이 높았는데 왜 투자했는지 모르겠다"며 "자녀 학비 1000만원을 잃었고 설명회 때 만난 사람의 얼굴을 볼 낯도 없다"고 한탄했다.
◇"통장 사본 보여주면 대부분 '혹'"=김씨가 투자설명회 때 가장 먼저 투자자에게 보여준 건 다름 아닌 센터장 등 상위 투자자의 통장사본이었다. 사기 코인에 관심을 보인 이들은 사업의 내용보다도 수익률에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김씨는 "100만원 투자한 사람이 1년 되감기 투자'(복리투자)를 해서 매일 60만원씩 통장에 이자가 찍히고 있는 통장 사본을 보여주면 대부분 눈이 휘둥그레졌다"며 "'자녀 결혼도 시켜야 하고 학비도 필요하지 않냐'고 하면 투자자의 눈이 흔들렸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실제로 이자를 받아 수익을 내는 투자자는 없었다. 투자자를 속이기 위해 센터장 등 일부 상위투자자 통장에만 이자를 제대로 넣은 것이다. 김씨 자신도 통장 사본을 믿고 강의를 했지만 결국 투자 후 두 달까지만 이자가 찍혔고 이후부터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통장사본을 보여주고 난 이후엔 인센티브 제도를 언급했다. 김씨는 "한달만에 투자자 20명을 모집한 투자자의 통장에 매달 40만원이 찍히는 사진을 보여주면 투자자는 다시 한 번 놀란다"며 "투자를 결심한 사람들이 가족, 지인들을 다 끌어들이는 것도 인센티브의 유혹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고수익을 올리는 센터장은 투자금을 가로채는 것"이라며 "통장 사본을 봤다고 속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다단계 늪…문제 되면 다른 코인으로 2차 사기 유도"=다단계 코인 사기에서 센터장급 이상 되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사기에 몸담았던 사람들이라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다단계 코인 사기에서 최상위에는 처음 '사기 코인'을 만든 설계자가 있고, 그 아래 지역 센터장이 있는데 센터장은 코인을 낮은 가격으로 대량으로 보유해 놓았다가 미끼를 문 투자자에게 동시다발로 판다. 김씨에게 투자를 권유한 친구(센터장)는 3~4개의 코인을 보유하며 투자를 권유했다.
김씨는 "대표가 구속되거나 투자자들이 사기인 걸 알고 원금을 내놓으라고 쫓아오면 자신도 피해자라며 새로운 코인으로 갈아타라고 권유한다"고 설명한다. 투자자 대부분은 50~70대로 코인 투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2차 피해를 낳는다고 말한다.
김씨는 "검찰에 송치된 Y페이, R캐피탈를 비롯해 수사선상에 오른 F사, T사 등을 뜯어보면 사기 수법은 동일하다"며 "새로운 코인 투자를 또 유도하면 절대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