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기레기'(rap. 크린랩)[체헐리즘 뒷이야기]

남형도 기자
2019.09.07 06:10

마미손이 인정한 재치 있는 가사, "100점 만점에"…기자된지 만 9년, 스스로 돌아보는 랩으로

[편집자주] &#65279;<font color="#ff0000">지난해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안다며, 공감(共感)으로 서로를 잇겠다며 시작한 기획 기사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갔습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땐 설레기도 했고, 소외된 이에게 200여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질 땐 울었습니다. 여전히 숙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차마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고자 합니다. 한 주는 '체헐리즘' 기사로, 또 다른 한 주는 '뒷이야기'로 찾아갑니다.&#65279;</font>&#65279;
지난 1월, 이 곳 녹음실에서 스웩(swag)을 뽐냈었다. 크린랲 비닐장갑을 낀 크린랩이 미세먼지를 비판하는 랩을 하고 있다. 삿대질이 살아있다./사진=녹음실 사장님

미세먼지의 계절이 오니, 잊고 있던 '흑역사'가 스멀스멀 떠올랐다.

지난 1월이었다. 여느 때처럼 미세먼지를 한 바가지 들이마신 날이었다. 난 뜬금없이 랩을 하기로 맘먹었다. 더 표현하고 싶은 게 많았다. 기사만으론 뭔가 부족했다. 까짓 못할 게 뭐 있냐 싶었다.

마미손에게 연락해 가르쳐달라고 했다. 핑크색 복면을 쓴, 그 사람 맞다. 찾아갔더니 그날은 복면을 거꾸로 쓰고 있었다. 뭐 어쨌거나 랩을 배웠다. 가르침은 단순했다. 일상적인 말로, 솔직하게 쓰란다. 래퍼명도 지어줬다. 마미손은 있으니 '크린랲(그 장갑 브랜드 맞음)'은 어떠냐고 했다. 그걸 '크린랩'으로 바꿔서 정해봤다. 랩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내자, 그런 의미로.

미세먼지를 주제로 랩을 썼고, 녹음도 했다. 기사가 나갔다. 차마 끝까지 못 들었단 독자가 많았다. 괜찮다고, 내년에 들으라고 권했다. 자꾸 귀에서 맴돈다고도 했다. 담배보다 끊기 어려울 거라 했다. 음원 앱에 올려달란 얘기도 있었다. 뭐 자랑이라고, 그렇게까지 알리고 싶진 않았다.

한 달 뒤에 마미손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랩을 잘 들었다"며 "이거 가사가 약간 마미손 스타일"이라고 했다. 또 "가사에 리듬감이 살아 있고 재치 있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가사 얘기만 하고 랩 실력에 대한 얘긴 전혀 안 했다. 그러면서 점수도 매겨줬다. 100점 만점에 85점이라고. 앞으로 더 분발해달라고 했다.

고백건대, 그 때 녹음한 랩은 다시 듣기가 참 힘들었다. 머리가 쭈뼛 서고 손발이 오그라들어 얼굴이 가을 홍시 마냥 달아올랐다. 향수에 젖은 어느 날, 문득 "내 노래 듣자"며 틀었는데, 아내가 조용히 껐다. 날 사랑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 반년 정도는 잊고 살다가, 최근 랩이 또 떠올랐다.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되돌아가선 안 될, 몹쓸 갈망이었다. 세상에 또 그런 걸 내놓으면 안 된단 걸 잘 알았다. 그래도 어떡하나. 한 번 새겨진 랩의 본능은 대정맥에서 우심방으로, 다시 우심방에서 우심실로 쿵쾅거렸다(이상한 표현).

다시 어느 주말 저녁, "쇼미더머니 시즌 8에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잘 되면 기자 대신 래퍼로 전향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몹시 덤덤하게 "빨래나 내놓으라"고 했다. 그래서 설거지 그릇들이 마찰하는 소리로 맞서며, 헹구는 라임에 맞춰 분노의 랩을 했다. 앞치마가 춤을 췄다.

그리고 쇼미더머니는 포기하고,'쇼미더머니투데이(회사 이름)'나 하기로 했다. 랩은 누구나 할 수 있잖은가. 경연에 나가지 않더라도.

마미손, 그는 내게 랩의 기초를 알려줬다. 복면 너머 그의 모습을, 아니 진심을 볼 수 있었다./사진=이상봉 기자

사실 랩을 쓰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기사로 쓰기엔 표현할 방법이 좀 막막한.

최근 언론을 향한 시선들 때문이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보도와 기자회견이 계기가 됐지만, 사실 '기레기(기자+쓰레기)'란 말은 한참 전에 등장했었다.

2010년 말 기자를 시작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덧 10년 차가 됐다. 그저 감개무량하기엔 언론이 처한 상황이 암담하다. 솔직한 고백이다.

종이신문 광고가 주 수익인데, 정작 독자들은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본다. 역설적이다. 매체는 많아지고, 광고 파이는 줄고, 기자들은 차장만 달아도, 아니 그 전에라도 영업에 내몰린다. 뭐라 하겠는가, 그게 내 월급인데. 기사는 공짜인데. 좋은 기사를 써서 수익이 나면 좋겠지만, 그런 게 아닌데. 해결 방법이 막막한, 오래된 고민이다.

온라인 실검이, 독자들을 중요한 기사에서 더 멀어지게 만든다. 자극적이고 말초 신경 자극하는 기사들이 범람하는 주 요인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캡쳐

온라인은 눈 뜨고 더 못 볼 지경이다. 포털사이트로 기사가 소비되는데, 여기에 모든 매체가 책상머리 앞에 앉아 목을 맨다. 조회 수 올려야 한다고, 뭐라도 지푸라기라도 터는 맘으로 기사를 쏟아낸다. 이슈엔 기사가 몰리고, 그렇지 않은 건 필요해도 기사가 텅텅 빈다. 어쩌겠는가. 실제 그런 기사들을 좋아하고 보는데. 책상머리 앞에 앉아 종일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본다.

팩트는 뒷전, 저널리즘은 나 몰라라. 그렇게 점점 기레기가 돼 간다.

참으로 고민이다. 여기엔 함께 기자라 불리는 이들에 대한 생각도, 기민하게 변하지 못하는 언론도, 그리고 구조적인 한계도 있다. 기자를 그만두는 후배들에게, "야, 그래도 그만두지 말라"며 자신 있게 말할 명분을 차마 찾지 못했다. 후배에게 "기자 되길 잘했지?"하고 떳떳하게 얘기하지 못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자 말고 다른 거 해라. 너 같은 인재가 왜"라고 털어놓는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뭣보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필요했다. 시선에서 벗어난 곳을 크게 떠들겠다며 기자가 됐다. 그에 맞는 기사를 얼마나 잘 써왔는지. 때론 먹고 사는 일이 다 그렇다며 합리화하진 않았을지. 그저 어쩔 수 없다며, 뭘 해보려는 노력도 없이 자조(自嘲)만 한 건 아닌지. 정말 지금 상황에서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인지도.

다음은, 그렇게 고민 끝에 써 내려간 가사들이다.

랩을 쓰기 위해, 영감을 쥐어짜고 있다. 손에 쥔 것은 국산 펜이다. 오른 손목에 모기 물렸다. 긁었더니 빨개졌다(tmi)./사진=남형도 기자 왼손

제목: 10년차 기레기의 '독백'

작사: 크린랩

작곡:Changes (Prod. Jurrivh x Syndrome)

독자 제보라는 제목 날아온 메일

빨리 읽으려고 부리나케 클릭클릭

야 이 기레기야 니가 기자냐

엄마 나도 커서 기자나 할래요

혹시 아내 볼까 뒤로 가기 Ctrl+w

이 정돈 애교 금욜 술자리 안주

매일 맞는 매일매일 익숙한 내 일

내일 돼도 내 일 밥벌이 내 일

갑자기 떠오른 스물셋넷 언저리

도서관을 하릴없이 걸었었지

그때 눈에 밟힌 미화원 여사님

쓰레기통 앉아 한숨 한 번 하아

못 숨기고 더러워진 엉덩이

하필 여기 앉았냐고 물었더니

나는 그냥 여기 좋고 익숙하니

마음 써줬다며 올라간 입꼬리

이건 정말 아니잖냐고

Wanna shout it 정말 아니라고

글을 써서 알리자고 남기자고

남 기자 제발 Change 단 하나라도

스물여덟 이름 석 자 명함 박고

뒷면엔 journal-ist 기자라고

어리버리 까고 또 깨지고

깨져도 또 까고 벌떡 일어나고

그딴 건 괜찮은데 one day

someday forty five 꼭대기

집에 와서 열었더니 웬 각대기

각대기 열었더니 이런 쓰레gift

그날 밤에 뜬 아름다운 기사

낮에 봤던 선배들 기사

너넨 기자 아닌 걔네 흑기사

그걸 받은 나도 부질없이 그저 쉿(shit)

안타까워 썼던 밤샘 임산부 story

부조리한 악덕 업주 고발한 자리

돈 몇 푼에 팔아버린 by-line

파란 꿈들도 점점 fade out

날 일으킨 건 학생들 메일

우리 쌤 제발 살려 주세요

좋은 분인데 글쎄 해고한대요

욕설 모함 그런 분 절대 아녜요

쌤은 애들 다친다 그만하라고

울컥 기사 꾹꾹 눌러 또 쓰고

울 쌤 살았다고 정말 고맙다고

기자 되길 잘했다며 또 웃고

어느덧 서른일곱 팀장 명함

금쪽같은 후배들이 벌써 여덟

8 eyes shine 첫 맘 생각

좋은 선배 되겠다고 다짐만

실검 뭐 떴냐 송송 커플이요

써라 또 뭐 떴냐 고유정이요

써라 또 뭐 있냐 조국힘내세요

시계 보니 벌써 힉 고생 많았다

선배 기레기라 그래요

평생 인턴이나 하래요

제목 왜 이따위냐 욕해요

잘 알아 나도 겪는 일이라

클릭 트래픽 클릭 트래픽

저널리즘 아웃 오브 안중

팩트확인 나중에 걍 고쳐

실검 이게 최선입니까

오랜만에 후배 온 연락

선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왜 그만두냔 말은 속으로만

그동안 참 고생했단 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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