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헐리즘 뒷이야기
사람과 동물, 가족과 사회의 다양한 사연을 통해 삶의 의미와 연대,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전합니다. 감동과 공감, 때로는 사회적 이슈까지 진솔하게 다루는 휴먼스토리 코너입니다.
사람과 동물, 가족과 사회의 다양한 사연을 통해 삶의 의미와 연대,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전합니다. 감동과 공감, 때로는 사회적 이슈까지 진솔하게 다루는 휴먼스토리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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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번엔 마음을 먹은 듯했다. 88세 할아버지가 남긴 문자를 봤을 땐 그랬다. 그 문자엔 염려와 우정과 사랑이 다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우주인 두 존재 중 하나가 떠났을 때, 그게 할아버지였을 때. 홀로 남겨질 8살 진돗개 행운이가 새 가족을 만나 잘 살아갈 수 있게 바라는 거였다. 내용이 이랬다. '지난해 8월에 담도암 4기 판정을 받고 현재까지 4개월을 힘들게 지내왔습니다. 이젠 기력이 많이 소진돼 하루가 다르게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네요. 살만 치 살았으니 내일 죽어도 아쉬움은 없습니다. 다만 끝까지 살펴주지 못할 '행운이'가 눈에 밟힙니다.' 할아버지가 문자를 보내 도움을 청한 이는, 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표였다. 그는 유기 동물의 '임시 보호'를 더 많이 알리고 늘리려 진심인 사람이었다. 2023년, 할아버지가 심장 수술을 받았던 해. 그때도 그는 행운이가 외톨이가 될까 걱정된다며 장 대표를 찾아왔었다. 가족을 찾아달라고 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했었다. 행운이 없인
"정말 그때 번식장에서 봤던 애들이 맞아요?" 믿기지 않아 물었다. 귀 젖히고 꼬리치며 달려오던 하얗고 작은 강아지들. 꼭대기의 반가움(유계영 시인 책, 꼭대기의 수줍음에서 영감)을 표현하는 몸짓들. 뒷발로만 몸을 세워 껑충껑충 뛰며 바라보는 눈빛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가 하나하나 품에 안아준 사람. 동물 구조 단체 도로시지켜줄개의 이효정 대표가 답했다. "되게 밝아졌지요. 처음엔 다리로 땅도 못 딛고 납작 엎드려 있었어요." 그 작은 몸으로 견뎌야 했던 일들을 알기에, 죄스러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을 향해 반기고 있단 게.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닐지라도 그랬다. 여기는 인천에 있는 도로시지켜줄개 보호센터. 전남 함평 번식장에서 구해낸 강아지들을 20일 만에 보러 간 자리였다. ━ 비좁은 뜬장에서 벌어졌던 '강제 임신'…"완전히 강간이야"━30년간 운영하다 폐업을 앞둔 번식장이었다. 합법 번식장이면서 불법으로도 해왔다. 엄마 개와 아빠 개 60마리가 남겨
'주영이'는 강원도 화천 농장에서 살던 곰이었다. 열 살이 되면 합법적으로 죽이고, 몸보신용으로 웅담(곰의 쓸개)을 꺼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키우던 곰, 그게 사육곰이었으므로. 어미도 친구들도 그리 다 죽었다. 주영이 홀로 남았다. 주영이가 열 살이 되던 해, 웅담을 사고 싶단 이가 나타났다. 농장 주인은 팔지 않았다. 마지막 곰만큼은 살리고 싶었단다. 같은 강원도 화천에서 사육곰 13마리를 임시 보호시설에서 돌보는 단체가 있었다. 사육곰들을 위한 목소릴 진심으로 내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였다. 이들은 주영이를 살리기로 했다. 그게 지난해 10월이었다. 활동가들이 다가가자 주영이는 철창을 거칠게 쾅쾅 쳤다. 콧김을 내뿜기도 했다. 10년 만에 비좁은 철창에서 꺼내던 날, 주영이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탈출하지 않으면 죽는단 생각과 그게 불가능하단 절망 사이에서의 몸부림. 이마에 상처가 날 정도였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은 알았다. 주영이의 위협이 실은 '두려움'이란 걸.
※ 이 기사는 특정 기업에 이익과 불이익을 줄 의도가 전혀 없기에, 모두 익명으로 썼습니다. 다만 모든 기업과 소비자가 단 1분이라도 이 주제에 대해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만 담았습니다. 민희씨가 지난해 인천국제공항에 갔을 때였다. 쓰러질듯 배가 너무 고팠다. 뭔가 먹을만한 곳을 둘러보았다. 하필 A기업 계열사들 매장밖에 안 보였다.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 기업은 소비를 원치 않았기에. 당장 배고팠어도 들어가지 않았다. A기업에서 일어난 일을 안 뒤부터 그럴 수 없게 됐다. 그 기업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사망했다. 안전 장치는 부실했다. "제가 올해 스물일곱 살이에요. A기업만큼은 정말 소비를 못 하겠습니다. 여기서 사망한 노동자들 나이가 제 친구 또래에요. 저는 특성화고를 나왔어요. 생산직으로 근무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그들이 희생된 곳인데, 어떻게 거기서 만든 걸 살 수 있겠어요." 민희씨에게 불매는 선명한 '메시지'다. A기업에게 보내는.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죽게 하지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들이, 항상 자기만의 섬에 뚝 떨어져서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 역시 직시해야 한다.'(인셀 테러, 로라 베이츠) 40년간 '남성'으로 살았기에 정확히 알기 어려웠던 여성이 겪는 일들. 그래서 지난번 기사에선 버스·지하철·편의점·화장실·공원·길거리 등을 갈 때마다 검색하고 짐작했었다. '여성, 지하철, 일면식도 없는 남성'이란 식으로 찾았다. 한계가 있었다. 수사 중이거나 판결까지 난 사건만 파악할 수 있었으므로. 기사로 나오지도 않은 '음지'에서 고요히 벌어진 일. 문제 제기도 못 했던 일상의 폭력은 얼마나 많으며 어떤 게 있을까. 실제 사례를 제보받아 취재했다. 주어를 여성이 아닌 '나'로 바꾸어 다시 써봤다. 잠시나마 내가 겪은 일처럼 짐작해보자는 거다. 내가 14살 때였다. 학원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낯선 남성이 공원에서부터 따라왔다. 설마 하고 빠르게 걸었다. 그 남성도 빠르게 뒤따라왔다. 집 건물에 도착했다. 계단을 올라갔다. 남성은 바로 밑까지 쫓아
밤 10시. 백발의 할아버지는 바깥이 컴컴해진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동물병원 의자에 종일 쭉 앉아 있던 참이었다. 잘 보이지 않는 안쪽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행운아, 내일 또 올게." 아늑하고 따뜻한 음성. 그게 아녀도 가장 익숙하고 편안할 단짝의 목소리. 행운이는 병원 입원실 안에서 단박에 꼬릴 흔들었으리라. 서로 떨어져 본 일이 도무지 없었기에. 덜컹덜컹, 배에 붕대를 감은 개가 따라가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86세 할아버지와 7살 진돗개. 가족도 없이 홀로 살던 이는 어느 날 모란시장에 갔고, 운명처럼 하얀 개가 마음에 들어왔다. 상자 안에서 최고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 처음 만난 게 2016년 12월 29일이었다. 행복하게 잘 살라고 행운이라 이름 지어주었다. 행여나 겨울이라 추울까 싶었다. 점퍼 속에,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따스한 품에 넣었다. 덜덜 떨던 꼬물이는 따스함을 알려준 할아버지와 그리 둘도 없는 가족이 되었다. ━복지관서 챙겨준 고기로는, 수술비
"선생님, 만약에에요. 만약에에, 수술을 안 받으면 행운이는 어떻게 될까요?" 털이 덜덜 떨리던 하얀 개를 품에 안은, 할아버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자식보다 낫다던 유일한 가족, 반려견 '행운이'. 파란 가운을 입은 수의사가 대답했다. "글쎄요, 수술 안 받으면…짧게는 며칠, 길어봐야 몇 달일 거예요." 생각보다 짧은 선고일. 맘 준비가 안 된 할아버지는 부정하기 시작했다. 돌보던 동네 고양이 행복이 얘길했다. 그 녀석도 병원에서 죽을 거라 했는데, 여태 잘 살고 있다며. 수의사는 무언가 답하려다 말을 삼켰다. 할아버지 뒷모습은 작고 무력하기만 했다. 행운이와 할아버지를 응원하던 우리 세 사람. 이규상 트레이너, 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표, 그리고 나. 갑작스레 아픈 행운이를 보며, 우린 맘이 몹시 분주해졌다. 병명은 '자궁축농증'. 예상치 못한 흐름이었다. ━"나 죽으면 얘는 어떡해"…할아버지와 행운이를 위해 시작한 '훈련'━86세 할아버지와 행운이는 7년간 단짝이었다. 한겨
운전면허증을 처음 받아든 건 1977년이었답니다. 무려 46년 전이지요. 그해 기아에선 '브리사'란 차가 나왔다고요.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 배우가 몰았던 그 차 맞습니다. 그러나 당시엔 비싸서 사지는 못했답니다. 배우 양택조씨(84)를 경기도 일산에서 만나는 중이었습니다. TV에서 기억했던 것보단 세월이 꽤 흘러 있었지요. 이야기는 꽤 자주, 옛날로, 여러 갈래로 흘러갔습니다. 실은 운전면허를 반납한, 고령운전자로서 인터뷰를 하러 간 거긴 했지만요. 아무렴 어떨까 싶었습니다. 이 또한 기록이니까요. 1960년대 초에 군대 제대.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 연극 집안에서 자라 연극을 하다, 영화계로 넘어갔던 시기. 얻어 먹지도 못해 삐쩍 말라 배우로도 뽑히지 않고, 조감독을 했다고요. 수입이 적었지요. 장가도 가야하는데요. 더빙하는 사람들이 돈 버는 걸 보고, 그리로 파고 들었답니다. 그 결과 이랬답니다. "완전히 섭렵을 해버렸지. 충무로를 내가 다 먹어버린 거야. 1년에 국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우석씨가 그리 느낀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처음엔 잘 몰랐다. 이정도로만 말을 꺼내서였다. "우석아, 돈 좀 빌려줄 수 있니." "무슨 일이세요, 어머니." "아니 그냥, 투자할 데가 조금 있어서…." 그 때까지만 해도 그런가보다 했다. 어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던 터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우석씨는 당시 어머니에게 500만원을 빌려드렸다. 그 뒤로는 잊고 지냈다. 그러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 그 때 제대로 알게 됐다. 어머니가 '로맨스스캠' 사기를 당했다는 걸. SNS로 친한척 접근한다. 몇 달에 걸쳐서라도 감정을 흔들고, 외로운 마음을 파고든다. 됐다 싶을 때 본론을 꺼낸다. '돈 얘기'다. 우석씨 어머니도 피해자였다. 그리고 피해 금액은 자그마치, 1억3000만원에 달했다. ━카카오스토리 사진 댓글로 접근, 카톡으로 3~4달 '작업'━시작은 우석씨 어머니가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사진이었다. 어머니 나이는 1962년생, 61세. 통상
8월 8일,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차성경 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 대표와 현진 학사모 활동가, 그리고 정성용 캣치독팀 총괄팀장이 부산 해운대구 한 동네에 도착했다. 여기서 학대당한단 강아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견주는, 자그마한 강아지의 한쪽 앞발을 비닐봉지처럼 손에 쥔 채 동네를 걸어 다녔다. 그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본 설채현 수의사는 "강아지 관절이 걱정된다"고 했다. 게다가 제보자가 찍은 사진 속 강아지는 얼굴·털 상태도 안 좋아 보였다. '애착 인형'처럼 늘 그렇게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거기 간 게 처음은 아녔다. 8월 2일, 이미 학사모·캣치독팀과 첫 번째 구조 시도를 함께했었다. 구하지 못했다. 견주 집은 굳게 닫혀 있었고, 어렵게 만난 견주 아버지는 "우리 애 잘 있다", "고발하겠다"며 큰소릴 쳤다. 두 동물보호단체가 48시간 넘게 부산에 머물고, 경찰에 해운대구청 공무원까지 불러서 왔으나, 미비한 동물보호법 안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골에서 밭을 지키며 살던 개가 있었다. 그 개는 어느 날 새끼를 배었다. 주인은 개가 임신했다며 잡아먹으려고 했다. 그걸 차마 못 보았던 누군가 대전의 사설 유기견 보호소 '시온쉼터'에 제보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했다. 오은숙 소장(56)은 사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쉼터엔 이미 개 250마리가 지내고 있었다. 보호자에게 버려지거나 학대당하고, 개농장에서 잡아 먹힐 뻔한 개들을 살린 거였다. 더는 구할 형편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러나 임신한 어미에 작은 새끼들까지 잡아 먹힌단 말에 오 소장은 차마 모른 척하지 못했다. 곧장 가서 구조해 왔다. 개의 이름을 '사랑이'라 지었다. 3월 마지막 날, 사랑이는 새끼 둘을 무사히 출산했다. 오 소장은 두 아이의 이름을 '믿음이', '소망이'라 지었다. 감정이 있고 사랑을 주는 귀한 존재를 먹으려던 인간의 기억을 잊고, 잘 자라서 행복하게 살길 기도하고 바랐다. 그리고 하루 뒤인 4월의 첫째 날, 시온쉼터에 불이 났다. ━누전으로 숙소 불
"회색이(길고양이)가 안 보이네요, 잡혀야 구조할텐데…" 동네를 다 돌아봐도 흔적이 없어 맘이 초조해졌다. 할머니가 늘 밥을 주던 자리에 포획틀을 설치해놓고, 그 안에 회색이가 좋아하는 캔 간식을 놓고, 녀석이 그 안에 들어오길 기다리던 중이었다. 학대범의 반복된 학대로 이미 얼굴이며 이마가 찢어져 피흘리던 터라, 빨리 치료해줘야 했다. 그런데 학대당한 뒤론 경계심이 더 심해져 도저히 병원에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포획해서, 구조하기로 한 거였다. 현장엔 포획을 기꺼이 도와주러 와서 포획틀을 설치해준 스나이퍼안똘님, 먼 거리를 오가며 회색이와 할머니를 도와주고 제보해 알려준 이브님, 그리고 내가 함께 회색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할머니가 묘안을 냈다. "기자님이 차를 이 앞에 옮겨주시면, 회색이가 그 밑으로 들어올 것 같아요. 그리고 저를 보면 안심해서 바깥에 나올 거고요. 그래서 포획틀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해볼게요." 할머니의 말에 따라, 다른 곳에 주차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