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을 나왔다가 선선해진 공기에 움츠러들었다. '이젠 정말 가을이구나' 혼잣말을 했고, 다가올 추운 겨울을 떠올렸다. 하얀 입김과 흰 눈을 상상하면 으레 크리스마스 생각에 설레었었다. 올해는 맘이 좀 달랐다. 동네 고양이들 생각이 났다. 까망이, 하양이, 점박이, 얼룩이까지. 오가며 봤던, 기억나는 녀석들만 해도 꽤 됐다.
익숙한 거리를 구석구석 다니며, 겨울에 지낼만한 데가 있나 찾아봤다. 그리 마땅찮았다. 지난해 겨울엔가, 주차장에 자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던 게 생각났다. 날 두려워하는 눈빛이면서도, 바깥에 나갈 엄두도 못 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놀라지 않도록 살금살금 차에 타면서, 길 위의 작은 삶에 대해 안쓰러워했었다.
걱정만 컸고 정작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는 새 수은주가 영하 몇 도까지 곤두박질쳤고, 혹독한 바람이 불었고, 길 위의 많은 게 얼어붙었다. 그리고 봄 벚꽃이 필 무렵, 눈에 익었던 동네 고양이 몇몇이 안 보였다. '어디서 잘 지내고 있겠지, 괜찮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했다면, 그해 동네 고양이들의 겨울은 무척 혹독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겨울엔 무언가 하기로 했다. 모든 고양이를 살릴 순 없어도, 우리 동네 고양이만은 살릴 순 있으니까. 기껏해야 네댓 마리인데,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니까. 매일 오가고, 매일 눈길을 줄 수 있으니까.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기나긴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도록, 집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아는 게 없어 검색으로 동네 고양이 엄마들의 '길냥이 집짓기' 정보를 취합했다. 중요한 건 다섯 가지 정도였다. 1. 당연히 따뜻해야 하고 2. 비나 눈에 젖지 말아야 하고 3. 눈에 띄지 않아야 하며 4. 날아가지 않아야 하고 5. 집에 적응할 수 있게 먹이를 놔둬야 한다.
스티로폼 상자부터 구해야 했다. 최소 한 마리는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커야 했다. 동네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날, 여기저기를 헤매며 마땅한 걸 찾았다. 납작한 건 많은데, 통통한 게 별로 없어 꽤 헤매야 했다.
겨우 마땅한 걸 찾았는데, 경비아저씨가 이미 끈으로 묶어 놓은 게 아닌가. 아저씨에게 가서 "스티로폼 상자가 필요하다"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줬다. "뭐 때문에 그러냐"고 묻기에 "포장하려 그런다"고 얼버무렸다. 혹시나 치워버릴까 걱정스러웠다. 새가슴이 되어 있었다.
방한용으로 단열재를 사러 시장에 갔다. 온통 돌아다녀도 없기에, 대신 비닐 뽁뽁이 큰 것 두 개를 샀다. 스티로폼 상자 안팎으로 넣어줄 참이었다. 검은색 포장지도 5장 샀다. 고양이 겨울집은 최대한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게 좋다고 했다. 죄지은 게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어도 그렇단다. 고양이 엄마·아빠들 마음도, 사람 몰래 숨어 사는 녀석들 기분도 이해가 됐다.
이를 거실에 늘어놓고 겨울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장필순의 노래, '그래도 메리크리스마스'를 틀어 놓았다. "다 사랑받는 건 아냐, 행복한 것도 아냐"란 가사가 흘러나왔다. 낮고, 어둡고, 외면당하는 이들을 향한 음악이었다. 길 위의 작은 삶도 그러했겠단 생각이 들었다.
씻고 말려놓았던 스티로폼 상자에, 검은색 포장지를 먼저 붙였다. 그리고 고양이가 들어갈 수 있도록 동그랗게 문을 내었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었다. 냄비뚜껑을 들었다가, 아내와 눈이 마주친 뒤 조용히 내려놓았다. 별수 없이 7kg짜리 아령을 박스에 올리고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름대로 괜찮았다. 그리고 그걸 따라 커터칼로 잘라 구멍을 냈다.
뽁뽁이 비닐은 안쪽엔 세 겹을 싸고, 바깥쪽에 두 겹을 더 쌌다. 구멍을 미리 내놓은 탓에, 비닐을 쌀 때마다 구멍을 뚫어야 했다(좀 바보임). 솜이나 담요를 넣으란 이도 있었는데, 고양이가 젖은 채로 들어가면 감기에 걸린다 해서 말았다. 일단 놓아보고, 그래도 추우면 추후 단열재를 보충해야지 생각했다.
집이 얼추 완성돼 갔다. 주말에 17호 태풍이 온단 뉴스가 생각나, 입구에 지붕을 만들기로 했다.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집에 있던 택배 상자 하나를 잘라,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감쌌다. 그리고 지붕을 만들어 붙였다. 마지막으론 바람을 막을 수 있게, 출입구에 뽁뽁이 비닐로 문을 만들었다. 드나들 수 있도록 여러 갈래로 오려 두었다.
간단할 거라 여겼는데, 그것만으로도 4시간 정도가 훌쩍 갔다. 자그마한 집 안에 걱정도, 한숨도, 애정도, 웃음도 두루 담겼다. 포근한지 손을 넣어보고, 푹신한지 눌러보고, 까끌까끌하진 않은지 두루 쓸어보았다. 두 뺨이 얼얼한 추위를, 그걸 피해 들어와 몸담을 아이들을 생각했다. 동네 고양이와 함께, 집을 만든 것 같은 따뜻한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동네 고양이 겨울집이 완성됐다. 아내는 "겨울이 벌써 따뜻해진 것 같다"며 응원을 해줬다. 혹시나 누가 치울까 싶어 지붕에 글 하나를 썼다. 길고양이가 몸을 녹이는 공간이라고. 매서운 추위만 피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작은 생명이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게해 달라고. 깨끗이 관리하다 겨울이 지나면 수거하겠다고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동네 곳곳을 다니며 어디에 둘지 찾았다. 경비초소를 나도 모르게 피해 다녔다. 풀숲이 우거진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거기엔 놀랍게도 고양이 밥자리가 있었다. 사료도, 물도 놓여 있었다. 누군가 이미 돌보고 있었던 거였다. 반갑고 또 고맙게도.
밥자리엔 '고양이 급식은 구청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또 '학대는 동물보호법 제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는 글도 붙어 있었다. 밥과 물을 주며 이미 어려움을 많이 겪은 모양이었다. 겨울집을 더 깊숙한 곳에 놓고, 자꾸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얼마나 고단하게 이들을 보살펴왔을지 짐작이 됐다.
무거운 돌로 겨울집을 꾹꾹 눌러놓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혼자가 아니고, 너희들도 혼자가 아니라고. 우린 같은 동네에서, 매일매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면서'내년 봄에도 꼭 보자'고, 나지막이 읊조리며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