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 겨울 추위가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동네서 우연히 폐지 손수레를 봤다. 뒤뚱뒤뚱 올라가는 걸 돕고, 땀을 소매로 훔치고 나니 누군가 생각났다. '폐지 아저씨' 최진철씨였다.
고단하고 길었을 그의 삶은 이랬다. 잘 나가던 중식 주방장이었고, 갑자기 뇌경색이 찾아왔고, 몸 왼쪽에 장애가 남았고, 걷고 말하는 게 힘들어졌다. 일자릴 잃었고, 이혼했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하루아침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그때 폐지 손수레를 잡았단다.
그와 처음 만난 건 2018년 12월이었다. 영하 20도의 추운 날씨였다. 하루 내내 함께 폐지를 주웠고, 165kg을 모았고, 겨우 1만원을 손에 쥐었다. 기사가 나갔고, 돕겠단 이들의 메일이 200통이나 쏟아졌다. 최씨 계좌를 알려주니 며칠 뒤 전화가 왔다. 그는 꺽꺽 울고 있었다. 고맙다고.
그리 훈훈한 마무리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난해 여름, 최씨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간암(초기)에 걸렸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뇌경색은 재발했단다. 지병이었던 당뇨 때문에, 왼쪽 둘째 발가락도 절단했다. 그의 팔다리는 부러질 것처럼 앙상했다.
최씨는 힘겹게 말했다. 어떤 때는 울음도 안 나온다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싶다고. 그 모습 그대로 기사에 고이 담았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기사가 나간 뒤 댓글을 달았다. 염치불구하고, 독자들에게 또 도움을 청했다. 어쩔 수 없었다. 눈에 자꾸 아른거렸다. 지독히 아픈 와중에도, 수술비며 병원비 걱정을 하는 아저씨 모습이. 아픈데 맘이라도 좀 편하기를, 그런 맘이었다.
메일이 하나둘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걸 읽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학생이라던 한 독자는 "더운 날씨에 이리 가슴이 사무칠 일이 있을 줄 몰랐다"며 "큰 도움은 되지 못해도 모른척하진 않겠다"며 돕고 싶다고 했다. 아이 엄마란 독자는 "아저씨는 잘못한 게 없다고, 자책하지 말고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도움의 뜻을 전해왔다.
또 다른 독자는 "누군가에겐 하루 술값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하루 생계일 수도 있다"며 "조금이라도 더 도움 되는 곳에 쓰고자 한다"고 했다. 3살 아이를 키운단 워킹맘은 "자라나는 아이에게,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 보여주고 싶다"고 후원금을 보내겠다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란 독자는 "돈이 넉넉진 않지만 알바비가 들어오면 도와드리고 싶다"고 했다.
장문의 메일을 보낸 한 취업준비생 독자는 "나쁜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 때 날 잡아준 건 주위 사람들 응원과 격려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힘들 때 맘속으로 저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린다. 그 아이를 안아주는 상상을 하며, 제 팔로 저를 안아준다. 웃겨 보이지만 꽤 효과가 있다"며 위로와 응원을 전했다.
지난해 8월22일, 최씨는 간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난 뒤 연락을 했었다. 그리고 2020년 새해가 밝은지 이틀째 되던 날, 그를 만나러 갔다. 그의 소식이 궁금했다. 몇몇 독자들이 "폐지 아저씨가 수술을 잘 받았는지 궁금하다"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간암 수술은 잘 끝났다. 열어보니 초기였다. 열흘 정도 입원했었단다. 기억은 잘 안 난다고 했다. 많이 힘든 시간이었으리라, 여전히 앙상한 그를 보며 짐작만 했다.
수술한 지 넉 달여 만에 최씨는 검사를 했다. 다행히 암세포가 퍼지지 않았단다. 더 지켜보자고만 했단다. 그 말을 들으니 한결 맘이 놓였다.
그렇지만 아직 병마와 싸우고 있다. 맘이 약해질 때가 많단다. 그보다 나이 많은 이들에게 "빨리 죽는 병이냐"고 때때로 물어본단다. 말하는 게 수술 전보다 힘들고, 입맛이 통 없다고 했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죽을 먹는다고 했다. 새벽에도 통 잠을 못 이룬단다. 저녁엔 자주 운다고 했다, 괴로워서.
몸이 말을 안 들어, 바깥에도 잘 못 다니고 있다. 종일 누워 지낸단다. 그는 "폐지를 다시 줍고 싶은데, 일을 못하겠다"며 답답해했다. 폐지를 줍는 삶이 바닥이라 여겼는데, 그보다 더한 삶이 있을 줄은 몰랐다. 최씨는 "회복이 안 될 것 같다"며 희미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의 손을 꽉 잡으며, "치료 잘 받으면 꼭 회복될 거라고, 맘 약해지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독자들 도움 덕분에, 병원 검사도 하고 치료도 받는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통장엔 "힘내세요", "건강하세요" 같은 문구와 함께 5만원씩, 7만원씩 찍혀 있었다. 통장 잔고가 890만원 정도 남았다. 하지만 간암뿐 아니라 지병인 당뇨병, 뇌경색 치료도 계속 받아야 해서 그리 넉넉하진 않다.
그에게 도움이 없었음 힘들었을 것 같냐고 묻자, 그는"그럼 죽었지"라고 짧게 답했다. 그 말이 너무 묵직했다. 그래도 아직 살만하다고, 다행이라고 말을 돌리자, 최씨는 "진심으로 고마워요. 고마워요"하며 또 꺽꺽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인터뷰는 이걸 마지막으로 더는 안 하겠다고 했다, 많이 미안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