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논란이었다. 한 초등학교 성교육 교재 얘기다. 여성가족부가 배포한 책이었다. 책 속 그림엔 엄마와 아빠가 발가벗고, 성교하는 모습이 담겼다. 얼핏 봐도 적나라했다. 어떻게 성관계를 하는지, 그래서 정자가 어떻게 자궁으로 가 난자와 만나는지, 설명이 상세했다. 책 제목은 이랬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그걸 알려주겠단 취지였다.
그러나 이 책은 오래 못 갔다. 외설적이란 문제 제기 후, 여가부 스스로 회수했다. 몇몇 표현이 특히 집중 질타를 받았다. 성관계를 두고 "재미있거든", "멋지고 신나는 일" 등이라 표현한 것. 어떻게 쾌락을 강조하느냐, 너무 부적절하단 우려가 쏟아졌다. 전제가 돼야 할 사랑, 그에 따른 책임, 그로 인해 태어날 생명. 그런 가치를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학부모들 걱정은 그랬다.
응당 일리 있는 얘기였다. 우리 아이가 혹여나 성(性)을 잘못 인식하진 않을까, 너무 빠른 것 아닐까, 그런 맘이었을 게다. 부모에게 아이란, 영원한 아이 아닌가. 공감할 수밖에.
그러니 어른들 시선에선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을 거란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서구 사회에선 괜찮지만, 우리나라 문화에선 수용이 어려웠을 수 있다"며 "섬세하게 고민하는 지점이 필요했었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번역 과정에서의 문제다. '10대, 인생을 바꾸는 성교육 수업' 저자인 나무 작가는, 문제가 된 성교육 교재의 영어판을 번역해 분석했다. 내용 차이는 이랬다.
[한국어] 아빠랑 엄마는 서로 사랑해. 그래서 뽀뽀도 하지. 아빠 고추가 커지면서 번쩍 솟아올라. 두 사람은 고추를 질에 넣고 싶어져. 재미있거든.
[영어] The father and mother love each other very much and want to be very, very close. Sometimes when the father feels especially loving, his penis becomes large(아빠와 엄마는 서로 매우 사랑하고 매우 친해지기를 원해. 때때로 아빠가 특별히 사랑을 느낄 때, 그의 고추가 커져).
원본은 덴마크 서적이지만, 영어 번역과 비교해도 상당 부분 다른 걸 알 수 있었다. 1971년 서적이라 아빠 중심으로 쓰인 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재미있거든"이라 표현할만한 부분은 없었다. 학부모 대다수가 걱정했던 대목이다. 나무 작가는 "번역이 좀 부족한 느낌이 있어서, 이 부분은 보완했으면 싶다"고 했다.
번역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같은 방식의 성교육 교재는,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단 게 중론이었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더폴에서 학부모 15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6.98%(740명)가 '너무 노골적인 묘사는 초등학교 교육 자료엔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큰 문제 없다'는 비율(45.65%, 719명)보다 더 많았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올바른 성교육이 부재했던 것에서 원인을 찾았다.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을 쓴 엄주하 작가는 "국가 주요 정책을 맡은 전문가, 관리자, 지식인들조차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간 성교육은 주로 이랬다. 크면 다 알게 된단 식이었다. 음성적으로, 성차별적인 성관계 중심의 성이 전해져 내려왔다. 그로 인한 문제는 이랬다. 엄 작가는 "성차별적인 성은, 권력을 가진 성을 정당화 시켰다"며 "가해자가 떳떳히 살고,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했다.
나무 작가도 비슷한 얘길 했다. 그는 "저 역시도 성교육을 받지 못했고, 이전 세대로부터 '여자는~', '남자는~'이란 소리를 듣고 자랐다"고 했다. 융(스위스 정신 의학자)이 말한 '집단 무의식'처럼, 이전 세대는 그 이전 세대에게 저도 모르게 길들여져 왔단 것이다.
그러는 사이 성은 감춰야 할 대상이 됐고, 부모들 역시 그랬다. 가정에서 자녀와 자연스레 얘기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니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줄지, 어떤 기준을 잡아줄지 알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린 알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성을 얼마나 빨리 배우는지와, 무조건 금기시해선 안 된다는 것도. 전문가 의견도 그랬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성에 대해선 첫 느낌을 어떻게 형성하는지가 중요한데, 아이들이 제대로 된 성을 경험하기 전에 음란물 등을 먼저 접하면 자극적인 것만 남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학부모들도 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단 걸. 더폴 조사 결과 학부모 80.44%(1267명)가 '예전에 비해 요즘 초등학생들은 굉장히 빠르다. 올바른 성 지식, 관념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데에 공감했다. 이 대표는 "초등학교 5~6학년만 되어도, 빨리 보는 애들은 본다"고 했다. 금기하는 게 더는 안 통한단 얘기다.
그러니 피할 게 아니다. 오히려 가정에서의 성교육이 중요하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랬다. 나무 작가는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각기 다른 아이들의 성 차이, 성인지 감수성 차이를 반영하기 힘들 수 있다"고 했다. 내 아이의 최고 전문가는 부모이니, 성교육 교재를 주기 전 먼저 읽고, 아이에 맞게 가감하거나 조절할 필요가 있단 것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이 대표는"부모님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실수해도 괜찮단다. 잘못된 걸 알 수 있고,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할 때, 부모가 말해주는 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는 것. 그렇게 충분히 얘길 나눌 때 아이는 존중 받는 느낌이 들고,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된단다.
경계해야 할 건 이런 거다. 엄 작가는 "성교육은 성관계만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조언에 따르면, 더 중요한 건 이런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말하듯, 각색해보았다.
"성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거야. 우리는 모두 성적 존재로 태어났지.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렴. 부끄럽거나 나쁜 게 아니야. 있는 그대로, 긍정적으로 보는 거야.
아마 성관계가 궁금하겠지. 그건 마음이 몸으로 전달되는 과정이야. 말하자면,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는 거야. 너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사랑하는, 그런 관계를 배우는 거랄까. 그러나 몸이 성숙 되고 난 뒤에 가능한 것이지. 신체적 성숙도에 따라 할 수 있는 게 정해져 있으니까.
그리고 욕구를 잘 조절해야 한단다. 그래야 건강하고 즐겁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