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학살'…부끄러움을 아는 검사[우보세]

김태은 기자
2020.12.09 05:23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20.12.8/뉴스1

#1. 1973년 10월 20일은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의 변곡점이 되는 매우 중요한 날로 평가된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를 맡은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한 날로 '토요일밤의 학살'이라고 불린다. '학살'이라고 불릴 만도 한 게 닉슨 대통령은 콕스 특검을 해임하기 위해 두명이 더 자신의 '목'을 내놨기 때문이다. 콕스 특검을 해임하라는 닉슨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부 장관과 윌리엄 러켈스하우스 법무부 차관은 콕스를 해임하는 대신 자신의 직을 버리고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돌아섰다.

닉슨 대통령의 '구원투수'는 로버트 보크 법무차관보였다. 법무부 장관 대행을 맡아 콕스를 해임하는 칼을 대신 쥔 것인데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연방대법관 자리를 약속받고 이를 수행했다는 게 훗날 알려졌다.

닉슨 대통령이 콕스를 해임하려던 이유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는 테이프 공개를 막기 위해서였다. 대통령의 참모였던 리처드슨과 러켈스하우스가 콕스를 해임하라는 닉슨 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리까지 던진 이유는 그것이 진실규명을 막기 위한 대통령의 '사법방해'이자 '권력남용'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돌아선 것이 결과적으로 닉슨 대통령 탄핵의 결말로 이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닉슨 대통령은 콕스 해임으로 시간을 번 동안 편집본으로 여론 조작을 시도했으나 진실은 감출 수가 없었다. 편집본에 고의적으로 1분 30여초 정도가 삭제된 흔적이 금세 드러났고 이에 대한 거짓 해명이 또다시 적발되는 '악수'가 반복됐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증거인멸 혐의까지 받으면서 테이프를 내놓기에 이르렀고 이후 그의 운명은 모두가 아는 바다.

#2. 지난 1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위원회 개최를 눈앞에 두고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윤 총장 징계를 청구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대신 징계위원장을 맡아 윤 총장의 해임을 의결하는 역할이 맡겨진 그의 마지막 선택지였다. 징계위 개최를 만류하던 그에게 검찰 2인자 자리인 대검 차장검사 자리 제안도 있었으나 이조차 뿌리쳤다하니 연방대법관 자리 약속에 대통령의 권력남용에 눈감은 보크 대신 법률가의 양심을 지키고자 한 리처드슨의 길을 택한 셈이다.

보크가 맞게된 인생의 말로를 이미 알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연방대법관의 꿈은 사라지는 듯했지만 1989년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꿈이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은 그의 연방대법관 인준에 반대표를 던졌다. 대통령의 안위를 위해 법 원칙을 어긴 그가 연방대법관의 자리에 어울릴 리 만무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반면 리처드슨은 포드정부에서 주영대사, 상무장관을 역임했으며 그뒤 해양법학회 대통령 자문위원 등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고 전 차관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진실규명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판단 앞엔 윤 총장의 징계를 위해 추 장관의 친위부대로 움직였던 법무부 감찰담당관실 소속 검사들의 내부고발이 있었다.

김용규 인천지검 부장검사는 윤 총장 대면조사 지시를 거부하고 하루만에 파견 근무에서 돌아와 "이상한 일을 시켜서 싸웠다"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윤 총장 징계 핵심 사유인 '판사 불법사찰' 혐의가 당시만해도 감찰 대상에는 올라있지 않았던 급조된 혐의란 점도 알렸다.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는 윤 총장에 대한 수사의뢰 보고서가 조작됐다고 검찰내부망을 통해 공개 고발했다. 직권남용 혐의가 없다는 문구를 상사인 박은정 감찰담당관 지시로 삭제하게 됐다는 점도 추후 고발했다. '직권남용'으로 '조작된 진실'이 세상에 확인되는 순간 이 검사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그는 "총장님에 대한 수사의뢰 결정은 합리적인 법리 검토 결과를 토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 절차마저도 위법하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며 "당초 파견 명령을 받아 이 업무를 시작하면서 제가 가졌던 기대, 즉 법률가로서 치우침 없이 제대로 판단하면 그에 근거한 결정이 이뤄질 것이란 믿음을 더 이상 가질 수 없게끔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검찰 내 평가는 이렇다. 당초 추미애 장관 라인 검사들로 분류됐지만 추 장관의 지시에 따라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 법과 규정에 위반되는 일이란 점을 알았을 때 중단할 줄 아는, 적어도 '부끄러움을 아는 검사'라는 것이다. 적어도 부끄러움은 아는 검사들의 고백이 오는 10일 '목요일의 학살' 당일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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