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당해 피흘리던…길냥이 '회색이'를 구조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남형도 기자
2022.03.05 08:00

반복된 학대로 얼굴·이마 찢어져, 학대범 아직 못 잡아…포획·치료·쉼터 연계까지 여럿이 힘 합쳐 가능했던 '기적'

[편집자주] 2018년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해봐야 제대로 안다며, 동떨어진 마음을 잇겠다며 시작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갑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러나 숙제가 더 많으니, 차마 못 다한 뒷이야기들을 가끔씩 풀고자 합니다.
할머니가 돌보던 길고양이, 아니 동네 고양이 '회색이'는 학대범의 반복된 학대로 이마와 얼굴이 찢어진 채 피흘리고 있었다. 포획 및 구조 후 다행히 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제공.

"회색이(길고양이)가 안 보이네요, 잡혀야 구조할텐데…"

동네를 다 돌아봐도 흔적이 없어 맘이 초조해졌다. 할머니가 늘 밥을 주던 자리에 포획틀을 설치해놓고, 그 안에 회색이가 좋아하는 캔 간식을 놓고, 녀석이 그 안에 들어오길 기다리던 중이었다. 학대범의 반복된 학대로 이미 얼굴이며 이마가 찢어져 피흘리던 터라, 빨리 치료해줘야 했다. 그런데 학대당한 뒤론 경계심이 더 심해져 도저히 병원에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포획해서, 구조하기로 한 거였다. 현장엔 포획을 기꺼이 도와주러 와서 포획틀을 설치해준 스나이퍼안똘님, 먼 거리를 오가며 회색이와 할머니를 도와주고 제보해 알려준 이브님, 그리고 내가 함께 회색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할머니가 묘안을 냈다.

"기자님이 차를 이 앞에 옮겨주시면, 회색이가 그 밑으로 들어올 것 같아요. 그리고 저를 보면 안심해서 바깥에 나올 거고요. 그래서 포획틀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해볼게요."

차 밑에서 등장한 회색이. 늘 돌봐주던 할머니가 역시, 회색이를 가장 잘 알았다./사진=남형도 기자

할머니의 말에 따라, 다른 곳에 주차돼 있던 차를 포획틀 근처로 옮겼다. 아마 수년간 밥과 물을 주며 돌보던 회색이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건, 다름 아닌 할머니일테니까. 난 아예 바깥에 나가지도 않았다. 낯선 이를 경계할 것 같아서.

그리고 20여분이 지났을 무렵, 정말 회색이노랑이(할머니가 돌보는 또 다른 길고양이)가, 차 밑에 나타났다.

40분만에, 피투성이가 된 '회색이'가 들어왔다
회색이 구조를 위해 포획틀을 설치하려 사전 작업 중인 스나이퍼안똘님./사진=남형도 기자

회색이와 노랑이는 주위를 경계하며 두리번거리다, 할머니만 있는 걸 확인한 뒤에야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도 녀석은 머뭇거리며 포획틀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리와, 회색아. 괜찮아, 괜찮아"하고 타이르며 회색이를 안내했다. 난 차 안에서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제발 들어가주길 바라고 있었다. 회색이는 가까이 왔다가, 뒷걸음질 치다가를 반복하며 애간장을 태웠다.

"회색이가 한 번에 들어와야 구할텐데…" 할머니는 회색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 포획틀에 넣으려 부지런히 움직였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 20여분 정도가 더 지났을까. 할머니가 기쁜 표정으로 내게 와서 외쳤다.

"회색이가 들어왔어요!"

초조해하며 차 안에서 기다리던 스나이퍼안똘님, 이브님도 기뻐하며 한걸음에 달려왔다.

포획틀에 들어간 회색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담요를 덮어주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결국 두려움보다 배고픔이 더 컸던 것일까. 회색이는 좋아하는 간식을 먹으러 들어왔다가 우리의 바람대로 잡혀주었다. 녀석은 놀랐는지 포획틀 끝에서 잠시 발버둥치다 이내 얌전해졌다. 안심시키기 위해 포획틀을 할머니가 가져온 담요로 살포시 덮었다.

포획틀 안에서 가까이 마주본 회색이의 상처는 생각보다 더 심했다. 얼굴과 이마에 피를 꽤 흘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떻게 애를 이렇게 해놨느냐, 정말 나쁜 놈 아니냐"며 눈물을 흘렸다. 다들 걱정어린 표정으로 회색이를 바라봤다.

내 차 뒷좌석에 실은 회색이. 이제 빨리 동물병원에 갈 차례였다./사진=남형도 기자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 동물병원으로 갈 차례였다. 그건 내 몫이었다. 차 뒷좌석에 회색이가 들어간 포획틀을 조심조심 놓고, 치료가 예정된 병원 주소를 찍고, 시동을 걸었다. 한마음으로 구조해준 이들 모두가, "회색이를 잘 부탁한다"며 멀어지는 내게 응원을 보냈다.

병원 가던 길, '쌕쌕' 거리던 숨소리에…눈물이 났다
동물병원으로 가는 길, 회색이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마음은 급한데, 운전은 살살하느라 조바심이 났다. 방지턱 하나를 넘을 때에도 회색이가 놀랄까봐 심장이 덜컹거렸다.

블루투스를 연결해 '고양이 심리 안정 음악'을 작게 틀어놓고, 조심조심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정지 신호가 걸리면 뒷좌석을 돌아보며 회색이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회색이를 병원에 입원시킨 뒤, 상처에서 떨어진 딱지를 차 뒷좌석에서 발견했다.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사진=남형도 기자

다행히 녀석은 조금 안정이 되었는지, 포획틀 안에 두었던 간식을 마저 먹었다. 배고팠던 게 분명했다. 헤매고 헤매다 도달한 곳이 불안해보이는 곳일지라도, 녀석은 그걸 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리 절박하게 살아가던 길 위의 작은 생명을 어찌 이리 가혹하게 학대했을까. 차 뒷좌석에서 '쌕쌕' 거리며 내는 회색이의 낮은 숨소리를 들으며 별 수 없이 눈물이 흘러 앞을 가렸다. "이제 괜찮아, 잘 치료해줄게"라고 어르고 달래며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하기 전 병원에 입원해 있던 회색이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회색이를 치료해주겠다고 나선 이는 동물보호단체 팅커벨프로젝트의 황동열 대표님이었다. 그리고 팅커벨프로젝트를 후원하는 회원들은, 학대당하는 이 작은 생명에게 치료비를 쓰는 것에 흔쾌히 동의하고 학대범을 잡아야한다고 함께 분노했다. 그 덕분에, 팅커벨프로젝트와 연계된 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게 됐다.

병원에 도착해 회색이를 데리고 가서 수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봤다. 수의사는 "회색이가 경계심이 심해, 마취 후 검사와 치료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회색이를 입원시킨 뒤 병원 문을 나서는 마음이 무거웠다.

많이 찢어진 이마, "외부 가해로 인한 상처"…수술 잘 마치고 회복 중
마취를 하고 봉합 수술을 한 회색이. 학대로 인해 이렇게 상처가 많이 찢어져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황 대표님과 함께, 매일 병원에 연락해 회색이의 안부를 확인했다.

회색이는 마취 후 상처를 소독하고 찢어진 상처를 봉합하는 수술을 했다. 생각보다 이마가 많이 찢어진 상태였다. 구내염이 살짝 있었지만 심하진 않아 약을 쓴다고 했다.

며칠 뒤 상태를 물으니, 수의사는 "회색이가 밥을 잘 먹고, 이마 상태도 좋아지고 활력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유전자 검사에서 세균 몇 가지가 나와 약을 먹인다고 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회복이 잘 되는 편이긴 한데, 세균이 항생제를 이겨내면 복잡해진다"며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사진으로 본 회색이는 움츠러들어 보이긴 했지만, 이마와 얼굴 상처는 한결 나아보였다. 잘 치료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함께여서 가능했던 '구조'…감사한 이들 "제가 회색이를 도운 이유는"
수술 후 회복 중인 회색이, 정말 고생 많았어./사진=남형도 기자

취재하며 알게된, 학대당한 회색이를 보며 마음이 많이 쓰였다. 할머니 홀로 힘든 몸으로 회색이와 노랑이를 돌보고 있는데, 또 다칠까봐 매일 신경 쓰느라 힘듦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은지 오래였다. 차마 그대로 둘 수 없었으나, 길고양이를 구조해 본 경험이 없어 엄두가 안 났다.

구조할 수 있었던 건, 회색이를 살리겠단 마음 하나로 오롯이 도움을 준 이들 덕분이었다.

포획도 힘들지만, 포획하려면 치료해줄 곳과 치료 후 갈 곳이 다 마련돼 있어야 했다.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님께 이야기하니 흔쾌히 치료해주겠다고 했고, 쉼터도 대신 알아봐주었다. 서울 양천구의 고양이 쉼터인 '길동이 하우스'의 김현정 대표님이, 학대당한 회색이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녹록지 않은 쉼터 사정상, 한 마리를 더 받기도 쉽지가 않은 걸 잘 알아서, 정말 감사했다. 살아가는 건 계속 비용이 드는 것이므로.

그런데 황 대표님이 포획은 쉽지 않다고 해서, 이번엔 포획해줄 이를 찾는 게 관건이었다. 회색이 포획 구조는 다행히 개농장 철거 등 동물 구조를 위해 전방위로 활약해주었던 스나이퍼안똘님이 해주겠다고 했다.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로를 바라보는 회색이와 할머니. 둘의 인연이 애틋하다./사진=남형도 기자

이들은 왜 회색이를 돕겠다고 했을까. 각자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스나이퍼안똘님(인스타그램 @a_d_sniper) : "요즘 학대범 수법이 너무 잔인하고 지능적입니다. 회색이를 그냥 둘 수 없어서 바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꼭 학대범을 잡아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모두가 지켜봐야 할 겁니다."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님(https://cafe.daum.net/T-PJT) : "길위에서 위태로운 생활을 하는 고양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아프거나 다친 고양이들은 볼 때 마다 너무도 마음이 아픕니다. 게다가 회색이처럼 사람에게 학대를 당해 다친 고양이들은, 더욱 안쓰럽고요. 사람에게 다친 상처를 사람이 치유해주고 싶단 마음으로, 우리 팅커벨 회원님들과 뜻을 모아 회색이 치료에 도움을 드린 겁니다."

김현정 길동이 하우스 대표님(@intheway1004 ) : "저희 쉼터에도 학대 받고 버려진 아이들이 있거든요. 회색이의 사진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좋은 이들이, 더 선한 영향력을 뻗어나가길 바라는 바람으로, 이렇게 꼭 알리고 싶었다.

할머니가 기자에게 보낸 문자. 제가 살린 게 아니라, 회색이가 살길 바라는 많은 분들이 힘을 합쳐 살렸지요./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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