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손대지 마요. 성추행 신고할 거야!"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월 어느 날 저녁. 영장을 들고 절도 혐의 피의자를 체포하러 간 인천 남동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피의자는 '난 범인이 아니다'라며 경찰서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설상가상으로 여성인 피의자는 남성이 대부분인 강력팀 형사들을 향해 '날 만지지 말라'고 소리쳤다.
막내인 조설 형사(34·경장)가 나섰다. 조 형사는 팀내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피의자에게 다가가니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에 취한 피의자를 상대하는 데는 2~3배 힘이 든다. 말이 안 통하는 건 기본이고 힘도 평소의 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피의자는 임자를 잘못 만났다. 조 형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딴 태권도 선수 출신이다. 조 형사는 먼저 피의자의 한쪽 팔을 붙잡았다. 저항이 세졌다. "짭새들아" 등 거친 말도 내뱉었다. 하지만 조 형사는 나머지 한쪽 팔을 붙잡고 피의자를 바닥에 눕혔다. 피의자의 양손엔 수갑이 채워졌다.
조 형사는 2017년 2월 대구 수성경찰서부터 현재까지 5년째 '형사과 생활'을 하고 있다. 조 형사가 이토록 길게 하는 데는 남다른 배경이 있다. 2015년 무도특채로 경찰에 입직한 조 형사는 형사·수사 부서에서 5년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 하지만 조 형사가 단순히 의무 때문에 형사 생활을 오래하는 건 아니다. '무도특채 출신 형사과장'이 되고 싶다는 조 형사 눈빛에는 의무 기간이 끝나도 형사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결의가 읽혔다.
고교 시절에만 5개 대회 우승,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 2014년 전국체전 금메달. 경찰 제복을 입기 전 조 형사는 태권도복을 입고 수 차례 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전국체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친 조 형사는 2급 체육교사 자격증을 따는 등 지도자의 길을 걸으려 했다.
이랬던 그가 경찰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데는 5살 아래 남동생 조건희 경사(당시 순경시보)의 영향이 컸다. 조 형사보다 1년 먼저 일반공채로 경찰에 입직한 조 경사는 "누나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 못 지나치는 성격이니 경찰을 하면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조 형사는 머니투데이와 만난 지난달 31일 카페에서 끊임없이 남들을 도왔다. 한 중년 여성은 조 형사에 '휴대폰으로 사진 보내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조 형사는 '어머니, 이거요?'라며 흔쾌히 도왔다.
경찰이 되기 전 선수 시절 조 형사는 운동밖에 몰랐다. 조 형사는 "매일 몸과 정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과 오후, 야간에 이어지는 고된 훈련을 버텨냈다. 경기를 앞두고 심장이 터져나올 것 같은 부담감도 이겨내야 했다.
그때 얻은 체력과 인내심은 형사 생활의 원동력이 됐다. 조 형사는 "피의자를 쫓고 대면하는 과정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된 일"이라고 말한다. 지난 2월27일 경북 구미시로 향한 2주간의 추적 끝에 침입 절도 혐의 피의자를 잡은 일도 체력이 뒷받침돼서 가능했다. 피의자는 같은 달 13일 새벽 1시34분쯤 인천 남동경찰서 관할 지역의 한 식당에 몰래 들어가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 밤샘 당직근무에 이은 휴무일에도 인근 CCTV를 추적하는 과정을 반복해 얻어낸 성과였다.
조 형사는 "CCTV를 추적하는 것이 쉬워보여도 체력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피의자들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먼 거리를 걷는 경우가 많아 50m 간격으로 블랙박스, CCTV 등을 추적해야 한다. 강력3팀은 해당 피의자를 검거해 여죄를 추궁한 끝에 인천과 경북 일대에서 벌인 약 20건의 침입 절도 행각을 추가로 밝혀냈다.
선수 시절 섰던 매트 위와 범죄 현장은 달랐다. 조 형사는 "예의를 중시하는 태권도에는 규칙이 있고 반칙을 하면 감점을 당하지만 범죄자들에겐 그런 게 없다"고 말한다. 지난 1월 절도 혐의 피의자를 제압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조 형사는 "그날 세상에 있는 욕이란 욕은 다 들었다"고 말했다.
마약반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2019년 개봉작 '극한직업'에는 장연수 형사(이하늬 분)가 등장한다. 장 형사가 무에타이 선수 출신이라는 극중 설정은 조 형사와 닮았다. 신장 177cm로 팀내 최장신이라는 조 형사는 "키 큰 것부터 시작해 닮은 구석이 많다"고 말한다. 팀내 고참 형사들을 '형님'으로 부르는 등 털털한 모습도 영화 속 장 형사와 현실 속 조 형사를 겹쳐 보이게 만든다.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없냐는 질문에 조 형사는 멋쩍게 웃으며 "딱히 없다"고 답했다. 오히려 피의자들이 본인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고 한다. 조 형사는 "사전에 전화로 조사하면 여성 형사인 것을 알고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라며 "하지만 조사실에서 내가 서서 인사하면 피의자들이 그때부터 예의바르게 변한다"고 말한다.
여성 경찰만 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 2016년 여름 대구 수성경찰서 산하 상동지구대에 신입 순경으로 있던 조 형사는 자해기도 현장에 출동했다. 여성인 자해기도자는 나체 상태로 칼을 들고 있던 상황이었다. 남성 동료들이 들어가려 하니 자해기도자는 강하게 저항했다. 현장 경험이 별로 없었던 조 형사지만 홀로 들어가 '어떤 점이 그렇게 힘들었나' 묻고 얘기를 들어주니 자살기도자는 칼을 내려놨다.
조 형사는 이미 손목에 자해를 한 자해기도자를 이불로 감싸고 치료를 위해 119 구조대와 함께 응급실까지 동행했다. 응급실로 향하는 동안 자해기도자는 조 형사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현장에 여성인 조 형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 형사는 "이럴 때처럼 현장에는 여성 경찰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조 형사는 경찰 내 '무도 교관'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 조 형사에 '형사와 태권도 선수 중 무엇이 더 좋느냐'는 질문은 난제다. 조 형사는 "선수 때는 홀로 매트에 올라 개인의 승리를 쟁취했다면 형사가 되고 나선 팀의 목표를 위해 함께 움직인다"며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는 질문이라 절대 대답을 않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조 형사는 최근 모교인 서울체육고등학교를 찾아 태권도부 후배들을 만났다. 조 형사가 만난 20여명 선수들 중 5명 정도가 무도특채로 경찰이 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고 한다. 조 형사는 "태권도 선수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경찰관이란 선택지도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조 형사는 경찰로서 수사를 통해 체육계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조 형사는 "선수로 있으면서 체육계의 숱한 비리를 목격하고 또 피해를 입기도 했다"면서 "그때는 함구해야 했던 체육계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고 뿌리 뽑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