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민센터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리는 이를 봤다. 훤칠한 키에 연갈색 안경을 쓴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 대번에 사람 살린 의인(義人)이 이분이구나 싶었다. 다가가 "선생님, 안녕하세요!"하니, 웃으며 인사한 뒤 내게 되묻는다. "앗, 그런데 어떻게 대번에 알아보셨어요?"
그래도 사람 많이 만나는 직업이라 나름의 감(感)이란 게 좀 있다고, 선생님에게서 어쩐지 좋은 기운이 느껴졌다고 답했다. 그와 카페까지 나란히 걸었다. 오월에 내리쬐는 오후 햇살이 따사로웠다. 살아 있어서 좋은, 아무 대가 없이 누릴 수 있는 것들 아닌가. 그러니 그가 살렸다는 이름 모를 생명이 더더욱 다행스레 느껴졌다.
나이가 고작 10대인 여학생이었단다. 주말 저녁 노들섬 인근 한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처음엔 물에 빠졌단 행인의 말에 이 남자는 '설마 누군가 구하겠지' 했다가, 사태가 위급한 걸 알고는 전력 질주해 아이에게 달려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학생은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어느새 카페에 도착했는데, 성큼 들어서는 남자의 뒷모습이 아까보다 더 크고 든든해 보였다. 만날 수 있어 영광이라 여기며, 기꺼이 음료를 사겠다고 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놓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김시영 씨, 마흔일곱 살. 그게 사람다운 그의 이름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부터 물어보았다.
형도 : 저녁에 한강서 산책하고 계셨었다고요.
시영 : 걷기 모임을 하고 있었어요. 맨 앞에서 걷는데 어떤 여성분이 제 옆을 지나며 "사람이 물에 빠졌어!" 하시더라고요. 처음엔 '누군가 구했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쪽으로 갔어요. 그런데 분명 사람이 빠졌다 했는데, 인근에 구급차도 없고 사람도 없어 이상한 거예요.
형도 : 상황이 심각하단 걸 느끼셨던 거군요.
시영 : 한강 다리 아래서 하얀 교복이 떴다가, 가라앉았다 하는 거예요. 이건 위급한 것 같단 생각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그때부터 막 미친 듯이 뛰어갔지요. 갔더니 여학생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곁에선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서 어쩔 줄 몰라 하시더라고요. 저보고 "어서 빨리 들어가서 구해줘"라고 하시고요.
형도 : 어떡해요. 그때 학생은 어떤 상태였나요?
시영 :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 "살려주세요"하고 절박하게 외치는 거예요. 순간 바로 뛰어들어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러다 둘 다 위험해져서 죽는 일도 많잖아요. 제가 수영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조금 침착하게, 구할 방법을 생각했지요.
형도 : 저라도 정말 머리가 새하얘졌을 것 같아요. 뛰어드는 것 말곤 생각도 안 날 것 같고요.
시영 : 천만다행으로, 그날따라 크로스백(옆으로 메는 가방)을 멘 거예요. 크로스백에 허리띠를 풀어서 고리를 만들어 묶고, 두 개를 연결해서 물에 던졌지요. 바닥에 엎드려 던졌는데, 다행히 학생이 한 번에 줄을 잡았어요. 그래서 쭉 당기며 소리쳤지요. "야, 정신 차려! 줄 꼭 잡아!"
형도 : 그 판단은 정말 '신의 한 수'네요. 원래 그런 구조 방법을 배우셨던 건가요?
시영 : 전혀요. 근데 위기 상황이 터지니까, 순간 연산 처리가 되는 것처럼 쫙 떠오르더라고요.
형도 : 그다음엔 어떻게 됐나요?
시영 : 줄을 당겨서 가까이 왔는데 학생이 힘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아이 손목을 잡았어요. 물이 묻어서 미끌미끌하더라고요. 엎드린 상태라 들 힘은 안 되더라고요. 제가 류마티스가 있어서 왼손은 힘을 콱 못 주거든요. 또 섣불리 당겨서 들었다가 시멘트 바닥 턱에 학생 얼굴이 다 긁힐까 봐 되게 신경 쓰이더라고요.
형도 : 그렇게 다급한 와중에도요, 아무래도 아이라서…
시영: 일단 제가 아이 손은 꼭 잡고 있으니까, 이건 놓지 않을 테니까요. 혹여나 흉터가 남으면, 평생 볼 때마다 그 사고를 떠올릴 수 있잖아요. 그게 싫더라고요.
시영 씨는 뒤따라온 이들에게 "도와달라"고 크게 소리쳤다. 누군가 119에 신고했고, 아이를 함께 끌어 올렸다. 작은 돗자리를 팔뚝에 대어 상처가 안 나도록 신경도 썼다. 땅에 올라온 뒤 학생은 손을 덜덜덜 떨었다. 아주머니들이 학생 몸의 물기를 닦고, 손을 잡고 마사지하며 기다렸다. 불과 10분도 안 되어 한강에서 배가 한 척 오고, 구급차가 오고, 경찰이 왔다. 시영 씨의 이름과 연락처, 생년 월일도 적어갔다. 구급차가 떠나고 다시 산책하는데 그제야 시영 씨의 심장이 '쿵쿵쿵'하며 뛰었다. 그래도 침착하게 대응했구나 싶었다.
형도 : 사람을 구하신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셨지요.
시영 : 2002년에 중국 북경에 어학연수를 갔었어요. 그때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해서 기숙사에 남아 있었거든요. 5월이었는데, 그때 기숙사 경비하는 친구들과 친해져서 밥을 먹고 있는데, 어느 날 담장 밖에서 "살려달라"는 말이 들리더라고요. 담을 올라가 밑을 보니 칼 든 남자가 있고, 여자 한 명은 피 흘리며 기절해 있고, 또 다른 여자는 소리치고 있었고요.
형도 : 아이고, 이 일도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네요. 어떻게 하셨나요.
시영 : 담장을 뛰어넘어 내려갔지요. 겁은 안 나더라고요. 경비원들도 따라 내려오니, 칼 든 남자는 도망갔고요. 피에 물든 여자를 업고 막 뛰어가서 택시를 잡았지요. 병원까지 함께 싣고 갔고요.
형도 : 사실 대단하신 게요. 괜히 꼈다가 다칠까 봐, 모른 척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끼어들고 사람을 구하고, 어떤 마음에서 시작되는 건가요?
시영 : 제가 외국에 살면서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요. 우린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우리나라, 우리 가족. 다른 나라에선 그런 말을 잘 안 쓰거든요. 각자도생이란 말을 안 좋아해요. 사회는 유기체이고, 우린 서로 다 연결돼 있잖아요.
그러면서 시영 씨는 앞에 놓인 시원한 커피를 가리켰다. 우리가 이걸 마시려고 아프리카서 원두를 따온 건 아니잖냐고. 그 많은 이들이 연대하고 비용을 맞추고, 그래서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거라고. 나 홀로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함께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켰기에 이 한 잔을 마시는 거라고. 그 말을 들으니 커피 맛이 유독 청량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시영 씨가 마음 쓰이는 게 있어 보였다. 살려낸 여학생이, 혹시나 그날 유독 마음이 힘들어 한강에 왔다가 빠진 거라면…그런 생각 말이다. 노들섬은 유원지이고 데이트 코스인데 홀로 가방도 없이 교복을 입고 와 물에 빠졌으니 말이다.
형도 : 그러게요. 혹시 그 학생에게 힘든 일이나 고민이 있었던 거라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시영 : 지나고 나니 다 별 것 아니더라고요. 그땐 정말 힘들었지만요. 살다 보니 그보다 더 좋은 일도 많고요. 물론 더 힘든 일도 많아요. 근데 그 일 역시 별 게 아니더라고요, 지나고 보면. 어렵고 힘들면 옆에다 이야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 도와줄 준비가 돼 있으니까. 우리나라에 맘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정말 많아요.
혹여나 그 학생이 의심이 많은 나 같은 성격이어도, 그래서 잘 믿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세상에 좋은 사람 한 명은 확실히 있단 걸 알지 않았을까. 물에 빠진 자신의 손목을 잡아준 한 아저씨 덕분에 말이다.
형도 : 아, 혹시 그 학생에게 연락이 오진 않았나요?
시영 : 차라리 그 학생이 제게 연락하지 말고 다 잊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아무것도 모를 나이잖아요. 뭔가 고민이 있을 것 같아 지금도 좀 가슴이 찡하거든요. 무조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제가 가장 원하는, 학생을 구한 저에 대한 상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말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왈칵 데워졌다.
"그러라고, 살리면서 생채기 하나도 안 나게 하려고 노력한 거니까요."
입수자를 보면 사람들이 뛰어들고 싶거든요. 주위서도 그런 걸 기대하고, 영화에서도 그러는데 한 번만 참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람을 구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잘난체 하는 걸까, 못 구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낫습니다. 그걸 꼭 기사에 담아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