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한다" 마지막 인사에 3000만원 덜컥 내어준 거래처 사장님…눈물이 쏟아졌다[인류애 충전소]

남형도 기자
2022.06.15 17:00

협력하던 디자인회사 힘들 때, 돈 빌려줘 막은 치킨 회사 대표님…차용증도 찢고 "나중에 잘 돼서 다 갚아달라"고

함께하던 회사의 폐업 위기에, 차용증도 없이 선뜻 3000만원을 빌려준 홍세범 대표님. 그 역시 무너지는 순간의 힘듦을 잘 알기에 그리 결정한 거라고 했다. 지난달 25일, 경기도 구리의 치킨 매장에서 만난 홍 대표님./사진=남형도 기자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폐업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다니고 있었다. 끝을 결정한 이는 작은 디자인회사의 최모 대표였다. 청춘을 바쳤으나 코로나19로 더 버틸 수 없게 됐다. 그게 지난 2월이었다. 거래처마다 다니며 죄송하다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하고 있었다.

미루고 미루다 가장 마지막에 만나러 간 이가 있었다. 지난해 초부터 협력해오던 작은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의 홍세범 대표였다. 정도 도움도 많이 나눈 터라 유독 입이 잘 안 떨어졌다. 최 대표는 폐업 상황을 설명했다. 혹시 잔금을 300~500만원 정도 미리 주실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리고 "버티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묵묵히 듣던 홍 대표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앉아서 기다리는데, 잠시 뒤 최 대표의 핸드폰이 울렸다. 3000만원이 입금됐단 문자였다. 보낸 이는 홍 대표였다. 빌려달라고 한 것도 아녔기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최 대표는 프린터기 A4용지를 가져와 각서를 쓰기 시작했다. 돈을 빌려준 이는 그 종이마저 찢었다.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이런 걸 왜 쓰냐고 했다. 그저 보란 듯이 일어나 다 갚으면 된다고 했다. 외려 이것밖에 돕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최 대표는 그걸로 직원들 밀린 월급을 주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최모 디자인회사 대표님이 올린 감사의 글./사진=커뮤니티 화면 캡쳐

그날 저녁, 그가 36년 동안 제일 힘든 시기에 귀인을 만났다며 올린 글을 우연히 봤다. 조회 수 817회, 댓글 2개, 주목도 별로 받지 못했다. 그걸 보며 글의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아서…받을 생각 않고 드렸다

수소문해 찾았다. 그리고 지난달 말, 힘들었던 누군가 '귀인'이라 부른 홍 대표를, 경기도 구리에 있는 그의 치킨 가게 앞에서 만났다.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그는, 내게 근처에서 사 온 시원한 라떼 한 잔을 건넸다. "그런 글이 올라온 것도 몰라서 당황했다"며 쑥스러워하는 웃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형도 : 사실, 친해도 돈 빌려주는 건 어렵잖아요. 두 분이 어떤 사이인 건가요.

세범 : 처음 회사 설립했을 때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이런 건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그때 많이 도와주신 분이었어요. 캐릭터도 만들어주고, 메뉴판이나 홈페이지 디자인도 잡아주시고요. 도와주고 사소한 거라며 "그냥 됐어"하며 돈도 안 받으신 것도 많고요. 그렇게 같이 잘 되자고 응원하는 사이였지요.

형도 : 그러다 디자인회사 대표님이 어려워지신 거고요.

세범 : 그렇지요. 코로나19로 거래처가 어려워지니 같이 힘들어지신 거지요. 사실 저보다 더 좋은 분이에요. 회사 직원 부모님이 큰 수술을 한다고 도와주시기도 했거든요.

알고 보니, 그 디자인회사 대표님도 좋은 분이었다. 그와도 연락해 이야길 들었다. 최 대표는 "직원 어머니가 눈을 많이 다쳐서 수술비가 1000만원 넘게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긁어서 직원에게 줬다"고 했다. 긁는단 표현을 보니 회사 상황이 여의치 않았으리라. 그러나 기꺼이 도왔다. 그 덕분에 직원의 어머니도 잘 쾌차했단다.

형도 : 그래도 3000만원은 큰돈인데요. 차용증도 안 쓰고 빌려주신 건, 어떤 마음에서였나요.

세범 : 되게 열심히 사시고 능력도 있으신데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가족도 있는데 여기서 무너지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 마음도 너무 잘 알고요. 저도 그런 힘듦을 겪어본 적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받을 생각을 안 하고 그냥 드렸지요.

힘들어 휘청일 때 그 역시 도움받았다고…지역 보육원에 치킨·떡볶이도 후원
홍세범 대표가 기부한 치킨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 그의 아내 역시 같은 마음으로 기부의 뜻을 지지하고 돕는다고 했다./사진=홍세범 대표 제공

형도 : 대표님도 그런 때가 있으셨던 거군요.

세범 : 20대 중반 정도였을 거예요. 원래 뮤지컬 배우가 꿈이라 혼자 서울에 살았거든요. 그땐 돈도 못 벌고, 집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어 힘들고 휘청거렸었어요. 밖에 나앉을 뻔했지요.

형도 : 너무 많이 힘드셨겠어요.

세범 : 그렇지요. 친구들이 한 달 동안 자기 집에서 밥 주고, 재워주고, 제가 일어설 때까지 도와줬어요. 너무 고마웠죠. 친구 부모님도 얼마나 불편하셨겠어요. 그런데도 제 자식처럼 대해주셨고요. 지금도 그때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해요.

그 역시 그리 어려운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도움받은 기억으로 또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됐다. 지금도 틈틈이 지역 보육원과 장애인 복지관에 치킨과 떡볶이를 기부하고 있다.

함께 살아갈줄 아는 멋진 마음을 지닌 이의, 따스한 모습을 한 컷 더 찍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형도 : 치킨 매장이 아직은 9개인데, 성장하는 데에 더 쓸 수도 있는 돈인데요. 언젠가 잘 돼서 돕자고 미룰 수도 있고요.

세범 : 돈이란 게 한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벌고, 좀 덜 쓰고, 여기서 도울 수 있으면 돕자고 느꼈어요. 가게가 새로 생기면 주변의 보육원이나 복지관을 봐요. 어려운 곳이 있는지 싶어서요.

형도 : 치킨이나 떡볶이 기부하시면 아이들이 많이 좋아하겠어요.

세범 : 처음엔 코로나 때문에 잘 먹고 좋아하는 사진만 전해 받아서 봤는데요. 코로나 좀 풀리고, 주기적으로 가니 저희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아이들이 있더라고요(웃음). 조금씩 나와서 보기도 하고요. 스쳐 가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소소하게나마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힘입어 회사 버티고, 빌린 돈도 조금씩 갚고 있어

지난해 12월, 강동구에서 나눔가게로 인증되기도 했다./사진=홍세범 대표 제공

형도 : 디자인회사 대표님은 조금 나아지셨을까요.

세범 : 다행히 조금씩 풀려가는 것 같아요. 중간에 연락 오시면 항상 고맙다고 하시고요. 빌려드린 돈도 계속 갚으시고요.

형도 : 힘든 시기를 함께 넘긴다는 것, 참 좋네요.

세범 : 저도 힘들고 그분도 힘든데, 계속 힘내시는 모습 보니 덩달아 더 힘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돼요. 힘든 상황에서도 더 열심히 하시는데, 저는 이게 맞나 싶어 더 달리게 되고요.

형도 : 혹시, 그 대표님께 하시고픈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세범 : 제가 표현을 잘 못 해서(웃음)…불과 며칠 전에 또 안 좋은 일이 있으셨지만, 잘 이겨내실 거라 생각해요. 지금처럼 계속 잘 버텨주셨으면 좋겠어요. 결국엔 웃을 날이 올 거예요. 같이 힘내서 쭉 가서 성공하자고요.

매장을 더 많이 내고픈 이유 중 하나가, 가까운 곳에서 치킨을 조리해 보육원 아이들에게 더 따끈따끈하게 전해주고 싶어서라는 그의 선한 웃음이 참 좋았다.

도움 받은, 디자인회사 대표님이 전해온 이야기

3000만원이 누군가에겐 크고 누군가에겐 얼마 안 되는 돈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표님 회사 역시 아직 크지 않은 프랜차이즈란 걸 잘 압니다. 그래서 늘 직접 몸으로 뛰고 지금도 매장에서 자주 근무하시는 것도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말 많이 눈물 흘렸습니다. 벅차올랐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밀린 월급을 줄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직원들인데, 월급이 못 나가는 상황이 되니 너무 마음이 안 좋았었거든요.

막말로 돈만 받고 도망갈 수도 있는 건데, 믿고 이렇게 해준다는 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걸 통해서 저희 직원들도 웃으며 일할 수 있었어요. '아직 살만하구나,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그런 용기가 났습니다. 제게 은인입니다. 진짜 솔직한 마음입니다.

다시 일어나려고 합니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꼭 보답하겠습니다. 도움에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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