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다니고 있었다. 끝을 결정한 이는 작은 디자인회사의 최모 대표였다. 청춘을 바쳤으나 코로나19로 더 버틸 수 없게 됐다. 그게 지난 2월이었다. 거래처마다 다니며 죄송하다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하고 있었다.
미루고 미루다 가장 마지막에 만나러 간 이가 있었다. 지난해 초부터 협력해오던 작은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의 홍세범 대표였다. 정도 도움도 많이 나눈 터라 유독 입이 잘 안 떨어졌다. 최 대표는 폐업 상황을 설명했다. 혹시 잔금을 300~500만원 정도 미리 주실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리고 "버티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묵묵히 듣던 홍 대표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앉아서 기다리는데, 잠시 뒤 최 대표의 핸드폰이 울렸다. 3000만원이 입금됐단 문자였다. 보낸 이는 홍 대표였다. 빌려달라고 한 것도 아녔기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최 대표는 프린터기 A4용지를 가져와 각서를 쓰기 시작했다. 돈을 빌려준 이는 그 종이마저 찢었다.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이런 걸 왜 쓰냐고 했다. 그저 보란 듯이 일어나 다 갚으면 된다고 했다. 외려 이것밖에 돕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최 대표는 그걸로 직원들 밀린 월급을 주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날 저녁, 그가 36년 동안 제일 힘든 시기에 귀인을 만났다며 올린 글을 우연히 봤다. 조회 수 817회, 댓글 2개, 주목도 별로 받지 못했다. 그걸 보며 글의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수소문해 찾았다. 그리고 지난달 말, 힘들었던 누군가 '귀인'이라 부른 홍 대표를, 경기도 구리에 있는 그의 치킨 가게 앞에서 만났다.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그는, 내게 근처에서 사 온 시원한 라떼 한 잔을 건넸다. "그런 글이 올라온 것도 몰라서 당황했다"며 쑥스러워하는 웃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형도 : 사실, 친해도 돈 빌려주는 건 어렵잖아요. 두 분이 어떤 사이인 건가요.
세범 : 처음 회사 설립했을 때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이런 건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그때 많이 도와주신 분이었어요. 캐릭터도 만들어주고, 메뉴판이나 홈페이지 디자인도 잡아주시고요. 도와주고 사소한 거라며 "그냥 됐어"하며 돈도 안 받으신 것도 많고요. 그렇게 같이 잘 되자고 응원하는 사이였지요.
형도 : 그러다 디자인회사 대표님이 어려워지신 거고요.
세범 : 그렇지요. 코로나19로 거래처가 어려워지니 같이 힘들어지신 거지요. 사실 저보다 더 좋은 분이에요. 회사 직원 부모님이 큰 수술을 한다고 도와주시기도 했거든요.
알고 보니, 그 디자인회사 대표님도 좋은 분이었다. 그와도 연락해 이야길 들었다. 최 대표는 "직원 어머니가 눈을 많이 다쳐서 수술비가 1000만원 넘게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긁어서 직원에게 줬다"고 했다. 긁는단 표현을 보니 회사 상황이 여의치 않았으리라. 그러나 기꺼이 도왔다. 그 덕분에 직원의 어머니도 잘 쾌차했단다.
형도 : 그래도 3000만원은 큰돈인데요. 차용증도 안 쓰고 빌려주신 건, 어떤 마음에서였나요.
세범 : 되게 열심히 사시고 능력도 있으신데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가족도 있는데 여기서 무너지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 마음도 너무 잘 알고요. 저도 그런 힘듦을 겪어본 적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받을 생각을 안 하고 그냥 드렸지요.
형도 : 대표님도 그런 때가 있으셨던 거군요.
세범 : 20대 중반 정도였을 거예요. 원래 뮤지컬 배우가 꿈이라 혼자 서울에 살았거든요. 그땐 돈도 못 벌고, 집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어 힘들고 휘청거렸었어요. 밖에 나앉을 뻔했지요.
형도 : 너무 많이 힘드셨겠어요.
세범 : 그렇지요. 친구들이 한 달 동안 자기 집에서 밥 주고, 재워주고, 제가 일어설 때까지 도와줬어요. 너무 고마웠죠. 친구 부모님도 얼마나 불편하셨겠어요. 그런데도 제 자식처럼 대해주셨고요. 지금도 그때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해요.
그 역시 그리 어려운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도움받은 기억으로 또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됐다. 지금도 틈틈이 지역 보육원과 장애인 복지관에 치킨과 떡볶이를 기부하고 있다.
형도 : 치킨 매장이 아직은 9개인데, 성장하는 데에 더 쓸 수도 있는 돈인데요. 언젠가 잘 돼서 돕자고 미룰 수도 있고요.
세범 : 돈이란 게 한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벌고, 좀 덜 쓰고, 여기서 도울 수 있으면 돕자고 느꼈어요. 가게가 새로 생기면 주변의 보육원이나 복지관을 봐요. 어려운 곳이 있는지 싶어서요.
형도 : 치킨이나 떡볶이 기부하시면 아이들이 많이 좋아하겠어요.
세범 : 처음엔 코로나 때문에 잘 먹고 좋아하는 사진만 전해 받아서 봤는데요. 코로나 좀 풀리고, 주기적으로 가니 저희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아이들이 있더라고요(웃음). 조금씩 나와서 보기도 하고요. 스쳐 가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소소하게나마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형도 : 디자인회사 대표님은 조금 나아지셨을까요.
세범 : 다행히 조금씩 풀려가는 것 같아요. 중간에 연락 오시면 항상 고맙다고 하시고요. 빌려드린 돈도 계속 갚으시고요.
형도 : 힘든 시기를 함께 넘긴다는 것, 참 좋네요.
세범 : 저도 힘들고 그분도 힘든데, 계속 힘내시는 모습 보니 덩달아 더 힘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돼요. 힘든 상황에서도 더 열심히 하시는데, 저는 이게 맞나 싶어 더 달리게 되고요.
형도 : 혹시, 그 대표님께 하시고픈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세범 : 제가 표현을 잘 못 해서(웃음)…불과 며칠 전에 또 안 좋은 일이 있으셨지만, 잘 이겨내실 거라 생각해요. 지금처럼 계속 잘 버텨주셨으면 좋겠어요. 결국엔 웃을 날이 올 거예요. 같이 힘내서 쭉 가서 성공하자고요.
매장을 더 많이 내고픈 이유 중 하나가, 가까운 곳에서 치킨을 조리해 보육원 아이들에게 더 따끈따끈하게 전해주고 싶어서라는 그의 선한 웃음이 참 좋았다.
3000만원이 누군가에겐 크고 누군가에겐 얼마 안 되는 돈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표님 회사 역시 아직 크지 않은 프랜차이즈란 걸 잘 압니다. 그래서 늘 직접 몸으로 뛰고 지금도 매장에서 자주 근무하시는 것도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말 많이 눈물 흘렸습니다. 벅차올랐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밀린 월급을 줄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직원들인데, 월급이 못 나가는 상황이 되니 너무 마음이 안 좋았었거든요.
막말로 돈만 받고 도망갈 수도 있는 건데, 믿고 이렇게 해준다는 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걸 통해서 저희 직원들도 웃으며 일할 수 있었어요. '아직 살만하구나,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그런 용기가 났습니다. 제게 은인입니다. 진짜 솔직한 마음입니다.
다시 일어나려고 합니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꼭 보답하겠습니다. 도움에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