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8월 25일 저녁 7시쯤. 특별할 것 없는 아주 평범한 날. 하승우 대구경찰청 제5기동대 순경(28)은 대전 유성구의 한 상가 건물 1층, 꼬칫집에 있었다. 경찰 동기들을 만나기 위해 휴가를 쓴 날이었다. 오랜만에 대화도 나누었다.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갈 때였다. 상가 직원이 "불이 났다"고 했다. 하 순경은 위치를 봤다. 화장실에 가기 직전, 천장에서 이미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연기도, 불꽃도 다 보였다.
불이 난 곳과 반대 방향으로 피하고 싶은 게 '본능'. 그러나 하 순경은 거꾸로 움직였다. 휴가였고, 불을 끌 의무도 없음에도, 본능적으로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소화기를 들고, 천장을 향해 거세게 분말을 뿌려 불을 끄려 애썼다.
그때였다. 불이 활활 타오르던 천장에서, 무언가가 그의 얼굴에 떨어졌다. 뜨거운 낙하물은 이마를 먼저 덮쳤다. 이어 그의 왼쪽 얼굴까지 상처 낸 뒷바닥으로 떨어졌다.
특별할 것 없는 아주 평범한 날. 친구들과 꼬치로 저녁 먹던 그런 날.
지하 2층, 지상 6층짜리 건물에서, 1층 화장실 환풍구부터 화재가 번져가고 있었다.
소화기를 분사하다 얼굴에 '2도 화상'을 입었고, 불길을 못 잡는단 게 명확해졌다. 그럼 출입구로 대피하는 게 본능일진대, 하 순경은 그와는 반대로 움직였다. 언뜻 이해되지 않았던,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형도 : 경찰이시고, 실은 화재를 진압하는 역할도 아니시고요. 불을 끄시려다 다치시기까지 했는데, 어떤 마음이셨던 건가요.
승우 : 보자마자 '불 꺼야 한다, 안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지요. 몸이 반응하고 움직여지더라고요.
형도 : 그런데 불이 잘 꺼지지 않았던 거고요.
승우 : 상가 직원 두 분과 소화기 3대를 다 썼는데도 안 잡히더라고요. 처음엔 진화됐나 했는데 불길이 점점 커지는 거예요.
형도 : 그래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승우 : 동기 한 명에게 연락했어요. "여기 불났으니까 대피시켜야 한다"고요. 1층은 상가 직원분께 말씀드려서, 사람들이 더는 못 들어오게 막아달라고 했지요.
형도 : 낙하물 때문에 화상까지 입으셨는데도요.
승우 : 아픈 건 둘째였어요.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 생각이 먼저 나더라고요.
형도 : 그래서 거꾸로 건물 계단을 올라가며 알리신 거고요.
승우 : 맞아요. 상가에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무슨 상황이지,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1층에 화재 났으니까 빨리 대피하세요! 건물 밖으로 나가세요!" 외치면서 계단으로 1층부터 6층까지 올라갔지요.
하승우 순경과 동기인 강준규 세종경찰청 제3기동대 경장은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이미 정전돼 건물이 컴컴했고, 연기는 자욱했다. 하 순경은 멈춘 에스컬레이터로, 강 경장은 계단을 오르며 화재 사실을 알렸다.
형도 : 그 장면을 상상해보니, 순간 몸이 멈출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두렵지 않으셨던 건지요.
승우 :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었지요. '아무도 안 다쳤으면 좋겠다', 그 마음뿐이었어요.
형도 : 건물 안에 있던 분들은 대피를 잘하신 거고요.
승우 : 가게 안에도, 이용하던 분들까지 해서 200여명 정도였는데요. 내려가시는 모습을 보고 따라서 저도 나왔지요.
형도 : 다들 무사하셨을까요.
승우 : 불길에 다친 사람은 저 한 명이었어요. 연기 때문에 목이 아프신 분이 2~3명 정도라고 들었고요. 아무도 안 다치고 다 대피했습니다.
형도 : 다들 고마워하셨겠어요.
승우 : 긴장이 탁 풀리더라고요. 바깥에 나오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거예요. 시민분들도, 상가 직원분들도 다 너무 감사하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한 분은 경찰청 홈페이지에 감사하게도 올려주셨고요.
형도 : 정말 다행이에요. 순경님 덕분에요. 얼굴 화상 치료는 잘 받으셨을까요. 아프셨을 텐데요.
승우 : 많이 따갑더라고요. 119를 타고 응급실에 갔는데, 2도 화상이 의심된다고 하더라고요. 화상 전문 병원에 가라고요. 이마가 제일 심하다고 해서, 3주 정도 치료받았지요. 피부가 약간 노랗다고 하더라고요.
형도 : 흉터는 안 남으셨을까요.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승우 : 이마에 조그맣게 점처럼 흉터가 남아 있는데, 이 정도는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해요(웃음).
대구에 돌아와 부모님을 뵙고 말씀을 드렸다. 우연히 불이 난 곳에 있었고, 200여명의 사람을 대피시켜 구했다고. 부모님은 하 순경에게 물었다. "다친 사람들이 있느냐"고. 아들이 답했다. 다친 사람은 없고, 저만 치료 잘 받으면 된다고.
부모님은 그럼 다행이라고, 잘했다며 아들을 대견해했다.
형도 : 걱정하셨을 법도 한데요. 부모님 입장에서는요.
승우 : 원래 제가 경찰관이다 보니, 직업적으로 늘 위험에 처할 수 있단 걸 생각하고 계신 거지요.
형도 : 승우님의 그런 의로운 마음에, 영향을 주신 분이 있을까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지 그런 게 궁금해요.
승우 : 의무 경찰로 군 생활을 했는데요. 시민들 가까이에 있을 때 뭔가 보람이 느껴졌어요. 실종자 수색을 나갔을 때, 발견했을 때, 가족에게 돌아갔을 때요. 무사히 돌아갈 수 있구나, 그 때의 뿌듯함이요. 발견 못했을 땐 아쉽고 속상했지만요.
형도 : 경찰이 되신 계기와 연결이 되는 거네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까요.
승우 : 부모님께서 항상 말씀하신 게 있었지요. "승우야, 항상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고요.
형도 : 그 바람대로 의인(義人)이 되신 거고요. 누군가를 돕고, 나아가 살리는.
승우 : 경찰이 되기 전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지하철을 타고 가다 60대 남성 승객이 하차하러 일어나려다, 갑자기 쓰러지시는 거예요. 놀라서 다가가 확인했더니, 당뇨가 있어서 저혈당 쇼크가 온 거지요.
형도 : 그거 갑자기 위험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요.
승우 : 마침, 정말 우연스럽게도 저한테 과일 사탕 하나가 있었어요. 그 사탕을 쥐여 드리며 이거 드시라고 했지요. 그러고 나니 기력을 좀 차리시더라고요.
'참사'가 될 수도 있었던 화재를 미담으로 바꾼 의로운 사람. 부단히 인명을 살리고 도우려 애쓰지만, 안타까운 일이 많단다. 경찰 3년 차인 그의 고민이 그랬다. 그래서 좌우명이 '즐기면서 살자'라고 했다. 무언가 얽매이거나 많이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고.
형도 : 즐기면서 살자는 말, 어쩐지 고된 경찰 업무라 주문처럼 되뇌시는 말 같기도 합니다.
승우 : 지구대에서 안타까운 일이 좀 많았어요. 제일 안타까운 게 심경 비관으로 자살하신 분들이지요. 현장을 맞닥뜨리면 '아, 이 분은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선택을 했을까' 싶지요.
형도 :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서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달려오시는 분들이지요.
승우 : 제일 먼저 누르시는 번호가 112인데, 시민분들에겐 안 좋은 모습이 많이 비쳐 안타까워요. 알려진 영웅보단, 숨겨진 영웅이 훨씬 많고요. 묵묵히 티 내지 않고 사건 하나를 해결하려 애쓰고, 많이 고생하고, 안타까워요. 인식이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형도 : 그 얘기도 꼭 함께 담을게요. 고생 많으신 걸 잘 알지요.
승우 : 끝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요.
형도 : 뭘까요. 편히 들려주세요.
승우 : 화재 상황이 정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난 아니겠지' 생각하지만,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요. 그럴 때 누구나 다 저처럼 할 수 있어요. "불이 났으니 대피해달라"고, 한 마디 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요.
30년 남은 경찰 생활 동안, 지금처럼 많은 사람을 돕겠다던 하승우 순경. 그에게,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하진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끝으로 이리 물었다. 다시 화재 상황과 마주한다면, 또 그리할 거냐고. 그랬더니 이리 답했다.
"똑같이 해야지요. 한 번 이렇게 해봤으니까, 다음번엔 안 다치고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