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1000'의 전설 '쌍권총'…日은 시신에도 벌벌 떨었다[뉴스속오늘]

차유채 기자
2024.01.12 05:3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김상옥 의사 /사진=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1월 12일 오후 8시, 종로경찰서에 폭탄이 날아들었다. 이 폭발로 건물의 일부가 파손되고 행인 7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큰 소동이 났다.

범인으로 지목된 이는 3년 전 수배 대상자에 올랐던 김상옥 의사였다. 김상옥은 자신을 잡으러 온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그가 1000여명에 달하는 일본 경관과 전투를 벌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청년사업가, 항일투쟁에 나서다
김상옥 의사 /사진=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김상옥은 1889년 지금의 종로 효제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는 등 불우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김상옥은 14살 때부터 낮에는 철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하며 성공한 청년사업가가 됐다. 그가 창신동에서 운영하던 영덕철물상회는 한때 종업원이 5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랬던 김상옥은 1919년 3·1운동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반일 비밀 조직인 '혁신단'을 결성하고, 지하 신문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했다가 40일간 고문을 당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암살단을 조직해 일본 고관 및 친일민족반역자에 대한 응징 및 숙청을 기도했다.

1920년에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및 일본 고관을 암살하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면서 결국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그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김상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조소앙 등과 독립운동 거사 계획에 참여하는 동시에 의열단에 입단했다.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총독 암살을 계획하다
삼판통 총격전 현장터 /사진=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1922년 12월, 김상옥은 권총과 폭탄을 가지고 경성에 돌아왔다. 그는 다시 한번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비롯한 총독부 고관,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1923년 1월 12일, 그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폭발에 종로경찰서에는 수사본부가 설치됐고, 별동수사대까지 꾸려졌다. 서울 전역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졌으며, 거리의 행인들은 곳곳에서 몸수색을 당했다. 결국 경찰 정보망에 은신처가 발각됐다.

닷새 뒤인 17일, 종로경찰서 형사부장 다무라를 중심으로 경찰 21명이 김상옥 체포에 동원됐다. 김상옥은 이들과 대치하다 총격을 가해 다무라를 처단하고 포위망을 벗어나 남산으로 탈출했다. 군인과 경찰 500여명이 남산을 포위했으나 김상옥은 찾을 수 없었다.

항일투쟁실기, 김상옥 의사의 항일투쟁활동과 독립운동을 함께한 동지들의 증언에 의해 쓰여진 역사적 자료 /사진=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그는 일본 경찰의 경계를 피해 효제동에 은신하며 앞으로의 거사 계획을 구상했다. 그러나 22일 새벽, 이곳마저 일본 경찰에게 걸리고 말았다. 이때 약 1000여명의 경관이 김상옥 검거에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옥은 단신으로 지붕을 넘나들며 권총 두 자루로 3시간 동안 총격전을 벌였다. 그는 홀로 무려 일본 군경 15~16명을 쓰러뜨렸으나 탄환은 금세 바닥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마지막 한 발을 자신의 몸에 겨눴다. 그렇게 김상옥은 34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총알 10발 상처에도 항거…전설로 남은 '쌍권총' 김상옥
김상옥 의사 영정 /사진=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김상옥은 사망했을 때도 두 눈을 뜨고 이를 악문 채 양손에 권총을 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경관들은 그의 시신마저 두려워했고, 결국 그의 어머니가 직접 아들의 생사를 확인했다.

심지어 김상옥은 자결에 사용한 총알 1발을 제외하고도 몸에 10발의 총알을 맞았다. 총상도 독립을 향한 그의 신념을 꺾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총독부 경무국의 야마구치 고등과장은 사건 전모를 발표하면서 김상옥이 폭탄 투척 사건의 범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상옥이 자결하면서 그가 폭탄을 투척하였는지에 대해 심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사건에 대해서는 김상옥이 결행했다는 설이 정설이기에,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헌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김상옥은 국가보훈부에서 1992년부터 선정·발표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최초로 선정됐다. 이어 1988년 서울 종로에 김상옥 의거 터 표석이 설치되었으며, 1998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는 그의 동상이 설치됐다.

(왼쪽부터) 드라마 '각시탈' 속 각시탈, 영화 '암살' 속 하와이 피스톨 /사진='각시탈' 스틸컷, '암살' 스틸컷

쌍권총, 1대1000 전투 등 비범한 전투 능력으로 김상옥은 대중 매체에서도 많이 다뤄졌다.

그는 드라마 '각시탈'의 모티브 및 영화 '암살'에서 배우 하정우가 연기한 '하와이 피스톨'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밀정'에서 배우 박희순이 연기한 '김장옥' 역시 김상옥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한편, 사단법인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는 김상옥 순국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 12월부터 오는 3월 10일까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1층 원형 특별전시실에서 '김상옥, 겨레를 깨우다' 전시를 진행한다.

관람객은 전시 공간에서 김상옥의 독립운동 활동을 다룬 영상과 3·1운동 당시 여학생을 구하고 일본 경찰에게 빼앗은 칼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