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에서 화재난 거 뉴스에서 봤는데 여긴 구식 건물이라 스프링클러가 없거든요. 매번 걱정되죠."
24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만난 70대 박모씨는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40년째 시장에서 더덕과 도라지를 판매하고 있다는 그는 전기난로와 온열 방석으로 몸을 녹이고 있었다. 가게 안은 사람 1명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그는 "혹시 화재가 날까봐 우려스럽다"면서도 "겨울은 날이 추워 난로가 없으면 버티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2일 밤 10시50분쯤 충남 서천에 있는 서천특화시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점포 227곳이 불에 탔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은 약 9시간 동안 이어졌다. 점포들이 가깝게 붙어있고 불이 쉽게 번지는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 구조로 지어진 점이 화재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기자가 들른 서울의 전통시장들에도 화재 위험은 산적해 있었다.
경동시장 초입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늘어선 좁은 골목이 나왔다. 가게 주변으로는 포댓자루와 비닐 등 불에 쉽게 탈 수 있는 물품들이 놓여있었다.
일부 점포에서는 소화기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한 점포는 기둥에 '소화기'라고 적힌 빨간 스티커를 붙여놨지만 기둥 주변은 매대로 가로막혀 있었다. 기둥 위로는 멀티탭이 설치돼 여러 개의 플러그가 꽂혀 있었다.
곳곳에는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 구조로 설치된 가게들이 보였다. 하나의 점포를 3개 정도로 분리해 쓰는 곳도 있었는데 칸막이는 스티로폼 패널 등으로 설치돼 있었다. 나무판자 등을 사용해 옆 점포와 공간을 분리한 곳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다른 시장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겨울철 기온이 떨어지면서 전기난로, 석유난로, 전기장판 등을 사용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전통시장 1구역에서만 전기난로나 장판을 사용하는 상인을 열 명 정도 찾을 수 있었다.
영등포 전통시장 입구 인근에서 옷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선풍기처럼 생긴 난로를 틀어둔 채 점포를 지키고 있었다. 의자에는 털방석이 깔려있었다. 그는 "가게 안에 조금이나마 온기가 돌 게 난로를 틀어 놨다"고 밝혔다.
작은 불씨가 대형 화재로 번지는 일이 이따금 발생하면서 시장은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경동시장이 속한 청량리 종합시장은 상인들이 의용소방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모든 점포가 문을 닫은 후 2인 1조로 화재 위험이 없는지 살펴보는 게 주된 업무다.
야채나 과일은 수분이 많아 겨울철 어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막기 위해 난로를 켠 채 퇴근하는 상인들도 있다. 고양이가 넘나들면서 난로를 치고 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청량리 종합시장 관계자는 "기둥마다 소화기를 구비해놓고 스프링클러나 화재감지기, 열감지기 등은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며 "화재는 상인들의 안전불감증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서 순찰을 하면서 상인들에게 주의해달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설이 재래시장의 경우 시설이 노후한 곳이 많아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혈관에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전기 배선 등도 노후화되면 전기 흐름이 원만하지 못해 열이 축적되면서 스파크가 튀게 된다"며 "특히 시장에는 가연물이 많기 때문에 전열기기 사용 후 코드를 빼고 퇴근하는 등의 대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의 경우 양쪽에 철판이 있고 가운데 스티로폼이 있어 소방대원들도 불을 끄기 어려운 구조"라며 "비용이 좀 들겠지만 불에 쉽게 타지 않는 소재의 패널을 쓰는 게 좋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