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보고 조리 봐도 음음 알 수 없는 둘리 둘리 (빰빰). 빙하 타고 내려와 음음 친구를 만났지만.'
어렸을 때 봤던 만화 '아기공룡 둘리' 주제곡을 들으며 걷고 있었다. 손엔 늘 마셨던 커피 대신 '초코맛 쭈쭈바'를 들었다. 영상도 봤다. 빛바랜 평온한 화면. 혀를 삐죽 내민 둘리가 꽃밭에서 나비를 잡으려 잠자리채를 움직이는 모습. 이게 얼마 만인지. 참고로 둘리와 난 동갑이다(반갑다 친구).
흥얼거리다 보니 빙그레 미소가 피어났다. 애써 기억하려 한 적도 없건만, 30년 넘게 잊히지도 않은 가사. 버스 타러 가는 길이 경쾌했다. 그때였다.
'일억 년 전 옛날이 너무나 그리워. 보고픈 엄마 찾아 모두 함께 나가자. 아아, 아아.'
그 부분을 들을 무렵 눈길이 닿은 이들. 정장을 입고 출근하던 중장년 직장인. 아이의 노란 가방을 메고 걸어가던 엄마. 이른 아침부터 바닥을 쓰시는 나이 지긋한 경비원님. 지각했는지 분주히 뛰어가던 청년.
어어, 갑자기 왜 이러지 싶을 만큼 당황스럽게 스르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별안간 길을 걷다 질질 짜는 사연 있는 남성이 됐다. 두리번거리다 댓글을 보고 안도했다.
'이 노래가 슬프면 진정한 어른입니다.'(추천 2000개)
되돌아갈 수 없는 날을 그리워하며 '오락실'에 가고 있었다.
'남형도 어린이'로 하루쯤 돌아가보고 싶었다. 어른이란 단어는 때때로 좀 고달파서. 가수 김창완님 에세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에서 봤던 문장 중 마음에 들어온 게 있었다.
'저는 아이들이 다 천진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다 지혜롭고 심지가 굳다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흔들리는 어른의 모습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렴요, 얼마나 매일 성실히 흔들리는데요. 그러고 보니 달력이 5월로 넘어갔네요. 살짝 서운한데요.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는데요. 그런데 어린이도 어버이도 아닌 어른이를 위한 날은 왜 없을까요.
그런 생각들. 그래서 멋대로 하루를 정했다. 어른의 짐 따위 다 내려놓고, 어린이였을 때처럼 보내보기로. 느끼기엔 어디론가 가버린 게 아닌가 싶은데, 부르면 동심(童心)이 잠깐이나마 나와줄까 싶어서.
'커피'. 어른의 상징과도 같은 이것부터 거부하기로 했다. 가방에 늘 꽂고 다니는 709㎖(밀리리터)짜리 텀블러. 에스프레소 쓰리샷을 내려 텀블러 목구멍까지 물을 받았다. 맛은 아무래도 좋았다. 노동용 커피였기에.
2017년 알쓸신잡 방송에서, 정재승 뇌과학자도 커피에 대해 이리 말했다.
"뇌가 1.4킬로밖에 안 돼요. 그런데 음식 에너지는 23%나 쓰죠. 굉장히 힘든 일인 거예요. 몸에 에너지가 떨어지잖아요. 뇌를 천천히 쓰라고 아데노신이란 물질이 나와요. 근데 카페인(커피)이 하는 일이, 그 아데노신을 막는 거예요. 우리 뇌를 속이는 거죠. 너 계속 뇌 써도 된다고."
아침에 커피를 마셔야 버티는, 굉장히 피로한 사회란 얘기. 실제 늦은밤에도 기사 마감하며 커피를 들이부었었다. 마침표를 찍기 전엔 잘 수 없다며 닦달하고 몰아세웠다. 새벽에 다 쓰고 잠들라치면 정신이 말짱했었다.
'어른이날'인 오늘은 달랐다. 일단 떠올린 계획은 이랬다. 오락실로 가는 길에, 맘에 드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자. 홍대입구 과자 가게에서 초코맛 쭈쭈바를 사서 똑 땄다. 꼭다리를 버릴만한 부르주아가 아녀서 쪽쪽 빨아 먹었다.
달다. 달아서 행복하다. 어른이 아침부터 쭈쭈바라니 좋다. 잔소리할 사람도 없고, 주어진 용돈 안에서 뭘 집고 뺄지 고민할 일도 없어. 다 먹으면 또 사 먹으면 되고. 쭈쭈바를 물고 걸을 때의 해방감. 맑은 봄날, 몽실몽실 보드랍고 동그랗게 보이던 세상.
동네 오락실은 죄다 사라졌다. 연남동까지 갔다. 보글보글 같은 옛날 게임을 하고 싶은데, 서울 전체를 놓고 봐도 그런 오락실은 별로 없었다. 초코맛 쭈쭈바를 부지런히 빨고 꼴깍 넘기다, 용기가 투명해질 무렵 오락실 앞에 도착했다.
게임기가 적었으나 반가웠다. 아내가 챙겨준 천 원짜리 현금을 교환기에 넣었다. 어릴 땐 동전 바꿔주는 직원이 있었다. 100원짜리 10개를 작은 손에 쥐면, 오락실을 점령할듯 의기양양했었던.
익숙한 작은 의자에 앉았다. 이미 커버린 방댕이가 삐져나왔다. 오랜만인데 익숙했다. 악당에 방울을 쏘고, 몸으로 밀어 날리고. 조이스틱은 가볍게 쥐고, 버튼은 다다다다 빠르게. 첫판을 가볍게 깨고 환호성을 질렀다.
몇 판을 내리 깨자, 악당들이 미치기 시작했다. 몸이 새빨개지더니 돌진하며 이상한 불덩이를 쐈다. 부디 진정하라고 말로 하자고 외치며, 몸을 위아래로 들썩여보았으나 이내 익숙한 문구가 떴다.
'Game over(게임 오버).'
그래, 일대일 격투기 게임이 주 종목이었던 게 기억나 옮겨 앉았다. 놀랍게도, 캐릭터 기술을 꽤 기억하고 있었다. 세 판을 이기자 역시 악당들이 "이제 집에 좀 가줘야겠어" 하듯 각성하여 날 때려눕혔다. 이럴 때면 늘 하던 말이 있었다. 여기 게임기가 이상해, 기술이 잘 안 먹네(난 잘하는데 말이야).
배가 고팠다. 초등학교 때 수학학원 가방 메고 가던 분식집에 가고 싶었다. 떡볶이가 참 맛났다. 36년 죽마고우에게 "그 가게 아직도 있느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찾아보니 이미 없어졌다.
두 번째로 많이 가던 떡볶이집에 갔다. 쫄면과 라면과 떡을, 냄비에 섞어 만들어주는 분식집. 단맛과 짠맛, 매콤한 맛이 중독성 있게 어우러진 한 접시.
정말 오랜만에 앞에 놓인 떡볶이를 보니 군침 돌았다. 허겁지겁 비벼 먹었다. 빠르게 다 먹고, 볶음밥을 시키려 할 때였다.
배가 많이 불렀다. 그 시절엔 늘 모자랐었는데.
기억났다. 왜 항상 모자랐는지. 곁엔 늘 뺏어 먹던 친구들 천지였다. "한 입만"하고 달려오면 황급히 먹느라 바빴다. 신나게 놀고 먹는 작은 떡볶이 접시는, 늘 많은 젓가락들로 붐볐었다.
그땐 짜증났는데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 더 맛있었다는 걸.
점심 먹고 만화방에 갔다. 광경이 많이 바뀌었다. 1시간 사용권과 아이스티가 6000원. 야무지게 만화를 보기로 맘먹었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를 각각 꺼내었다. 초사이어인 흉내를 내고, 공부하란 공책에 만화를 그리고, 반짝거리는 카드를 모으고. 다 까먹었나 싶었던 추억이 숨을 쉬었다. 드래곤볼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최근 뇌출혈로 작고한 게 생각났다.
만화 은하철도 999 노래를 듣다가, 꽤 충격적이었던 마지막 회가 생각났다. 기계 인간들이 사는 행성이었나 그랬다. 영원히 살면 좋은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런데 건물에서 떨어진 기계 인간이 죽어가며 말했었다.
"영원히 산다는 건 쓸모없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거야."
이해하지 못한 채 남겨두었던 장면. 이젠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세월이 흘러 의미가 익었다. 만화 '아기공룡 둘리'에서 고길동이 불쌍하면 어른이 다 된 거라던데. 불쌍한 길동 아저씨. 둘리가 얼굴에 껌 뱉고, 머리에 땜빵 만들고, 아끼던 LP판을 깨고, 물놀이하다 집 박살내고. 공룡 거둬줬더니 외계인 친구(도우너)랑 또치까지 데려오고.
고길동이 악역인 줄만 알았는데, 늘 핀잔주고 잔소리했을지언정 그걸 받아주는 어른이었다.
내 어린 시절에도 어떤 어른이 있었다. 8살 때인가, 놀이터에서 꽃을 보며 장난치려한 적이 있었다. 그게 잘못된 줄 잘 몰랐던 어린이였다. 동네 어른이 그러면 안 된다며 날 혼내려 달려왔다. 놀라서 도망가다 넘어져 바닥에 얼굴을 찧었다. 어른이 말했다.
"괜찮니? 이 녀석아, 벌 받았다, 벌 받았어."
나쁜 짓 해서 벌 받은 걸로 믿었다. 그 뒤 다신 그러지 않았다. 잔소리 덕분에 넘어졌고, 넘어졌기에 배웠다. 김창완 님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에세이에서 그랬다.
"어른이 '일찍 다녀라.', '추울 땐 국물이 최고다. 뭐라도 좀 먹고 나가라.' 하면 다 잔소리로 들립니다. 오늘 아침에도 집에서 싸 온 김밥을 꾸역꾸역 먹는 데 아닌 게 아니라 목이 메더라고요. 그때 많이 들었던 익숙한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천천히 먹어라. 물도 마시면서.' 우리가 살면서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듣잖아요. 그런 모든 말 중에 체온이 담긴 말이 몇 마디나 될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잔소리로 들렸던 어른들 말 빼면."
체온이 담긴 잔소리. 그에 더하여 응원도. 졸업한 초등학교에 수십 년 만에 갔다. 마침 운동회를 하고 있었다. 줄다리기할 때, 이어달리기할 때, 새삼 보인 장면들. 거기에 꽤 많은 어른이, 매순간 사진 찍고 박수치고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저절로 어른이 된 게 아녔다. 어린이를 바라봐주던 어른이 다 있었다고.
집에 돌아갈 시간. 놀이터에서 놀면 멀리서 밥 먹으라 불러주던, 젊었던 엄마 목소리가 생각났다. 이젠 스스로 먼 길을 잘 찾아갈 수 있게 자랐다.
지하철 승강장에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 광고가 있었다. 사진 찍을 수 있게 거울이 붙어 있었다. 얼굴을 비춰보려 해도 키가 맞지 않아 다리만 보였다. 어린이를 위한 거였다. 작았던 어린이는 이미 너무 커버렸다.
때론 어른이 고단해 도피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루를 보내며 가만히 받아들였다. 이미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다고. 다만 틈틈이 행복해하며 또 알았다. 현실에 치여 사라진 줄 알았던 어린이가 내 안에 있단 걸.
그리 어른이 되었으므로, 후배 어린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할 때가 되었단 것도.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김소영 작가가 지난해 5월 '세바시 강연'에서 했던 좋은 이야기.
"어린이를 환영해주세요. 도움이 필요한지 한 번 물어봐 주세요. 처음 보는 어린이에게는 존댓말로 물어봐 주세요. 어렸을 때 여러분이 좋아했던 어른이 되어주세요. 만일 그런 어른을 만난 적이 없다면 여러분에게 필요했던 어른이 되어주세요."
이어 그는 이리 덧붙였다.
"그럴 때 여러분에게 '아, 나도 이제 다 컸다' 이런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에필로그(epilogue).
달고나를 좋아했다. 뽑기라고도 했다. 학교 앞 할머니가 설탕을 녹여 휘휘 젓고 소다를 한스푼 넣으면 빵처럼 부풀었다. 그걸 탁 쳐서 누르고 별 모양을 찍었다.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이스크림을 세 개째 물며 걸어가다가 달고나를 파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가격은 1개에 1000원이었다.
하루 종일 간식을 먹었더니 입이 달았던 터라 달고나가 별로 당기진 않았었다. 그렇지만 그 앞에 서 있었다.
"어르신, 달고나 1개 주세요."
네 개 남아 있길래, 한 개라도 더 팔아 조금이나마 맘 편히 집에 가게 해드리고 싶었다.
달고나를 그런 이유로도 살 수 있는 '어른이'가 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