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나서자 독일이 무너졌다... 열강들의 혈투 '1차 세계대전'[뉴스속오늘]

양성희 기자
2024.07.28 05:30

1914년 7월28일,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탱크의 모습./사진 출처=영국 런던 임페리얼전쟁박물관

110년 전 오늘 세기의 전쟁이 터졌다. 이전까지와 다른 차원, 다른 규모의 전쟁이 벌어지면서 '세계 대전'이라는 말이 붙었다.

여러 국가가 참전하며 삽시간에 세계 전쟁으로 번진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며 시작됐다.

수천만 명이 동원된 이 전쟁에서 1000만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은 결국 독일의 항복으로 약 4년 만에 끝이 났는데 상흔은 깊었다.

황태자 암살이 세계전쟁으로

제1차 세계대전 발칸반도에서 터졌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점이어서 오래전부터 분쟁이 끊이지 않고 시끄러운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기도 했다.

이곳은 1300년대 오스만제국이 지배했는데 세력이 약해지자 1878년 세르비아가 독립을 선언했다. 세르비아가 주변 지역과 함께 국가를 세우려던 차, 오스트리아가 1908년 주변 지역이었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차지했다.

1914년 6월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에 의해 암살당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터졌다. 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유럽 나라들은 오스트리아 편에, 또는 세르비아 편에 섰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모습./사진 출처=영국 런던 임페리얼전쟁박물관

삼국 동맹 vs 삼국 협상, 1차 대전 구도로

러시아가 세르비아 편에 서자 독일이 오스트리아 쪽에 섰다. 강대국들은 세 나라끼리 뜻을 모아 연합 전선을 만들었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로 구성된 '삼국 동맹'의 동맹군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로 이뤄진 '삼국 협상'의 연합군 구도로 전쟁이 번졌다.

삼국 협상이 주시하는 나라는 독일이었다.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팽창하는 제국 중 가장 공격적인 나라였다. 주변 강대국들과 갈등이 빈번했다. 동맹군 중 이탈리아는 나중에 연합군 편으로 돌아섰다. 오스트리아와 영토 갈등을 겪은 것이 하나의 이유였다.

전쟁은 아시아 강대국이던 일본 참전을 불러왔다. 서구 열강이 정신없이 싸우는 틈에 연합군 편에 서서 중국 칭다오에서 독일을 몰아내는 구실로 중국에서 이권을 재빠르게 챙겼다. 터키도 참전했는데 독일과 손을 잡았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국지전으로 끝날 뻔한 전쟁이 제국주의 패권다툼으로 비화하면서 열강들의 이합집산을 불러왔다.

유럽 개입 않겠다던 미국, 결국 참전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전쟁은 미국이 중립을 포기하고 참전하면서 종결됐다.

독일이 영국의 여객선을 격침했는데 여기서 100명 넘는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은 게 계기였다. 미국은 당초 유럽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고립주의를 표방한 '먼로 독트린'을 선언했지만 자국민 희생이 참전 구실로 작용했다.

미국은 처음에 강한 항의했지만 독일이 잠수함 작전을 이어가자 전쟁을 피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은 군수 물자를 팔아 최강대국으로 발전했고 이를 토대로 군사력도 키웠다.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된 오스트리아가 먼저 항복을 선언했고 이어 1918년 11월 독일도 항복했다. 독일 안에서도 전쟁 피로감이 커진 상태였다.

패전한 독일은 식민지를 모두 빼앗기고 베르사유 조약에 근거해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베르사유 조약은 프랑스 파리 교외 베르사유에 독일과 연합국이 모여 맺은 조약이다.

후유증은 독일만의 몫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참전국이 국력을 모두 쏟아부은 탓에 경제난을 겪었다. 이와 달리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급부상, 오늘날까지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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