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20일. 전 연인을 살해하고 도주한 김병찬(당시 35세)이 범행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범행을 저지른 그는 기차를 타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구로 향했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려고 잔꾀를 부렸지만, 경찰은 폐쇄회로(CC)TV 등으로 동선을 추적한 끝에 김병찬을 대구 호텔 로비에서 검거해 서울로 압송했다.
김병찬과 피해자 A씨는 2020년 봄 부산에서 만나 잠시 교제했다. A씨는 김병찬의 폭력과 집착을 못 이겨 그해 6월 이별을 통보했지만, 김병찬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A씨의 집에 무단침입했으며 살해 협박 등 스토킹을 일삼았다.
김병찬의 스토킹에 약 5개월간 시달린 A씨는 이를 견디다 못해 서울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자 김병찬은 서울까지 따라와 A씨를 괴롭혔다. 집에 무작정 찾아가 A씨를 사흘 동안 감금했으며, A씨의 차량에 몰래 들어가 있기도 했다.
A씨는 결국 5차례에 걸쳐 경찰에 스토킹 피해 신고를 했고, 김병찬은 11월9일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다. 경찰은 김병찬에게 △ 100m 이내 접근 금지 △ 휴대폰, 문자 메시지 등 정보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 A씨에게 스마트워치 지급 등 조치를 했다. 아울러 A씨는 김병찬의 보복을 우려해 친구 집으로 피신했다.
김병찬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부산으로 내려간 그는 인터넷에 '지문 남지 않는 칼 손잡이', '미끄러운 손잡이' 등을 검색하며 보복을 준비했다.
김병찬은 11월18일 서울로 올라와 범행에 사용할 흉기와 모자, 안경 등을 구입했으며 이튿날 A씨 오피스텔로 향했다.
오피스텔 주차장에 A씨 승용차가 세워진 것을 확인한 김병찬은 비상계단을 이용해 A씨 집으로 올라갔다. 이후 집에서 나온 A씨에게 달려들어 스토킹 잠정조치를 취소하라고 흉기로 협박했고, A씨가 이를 거절하자 범행을 저질렀다.
친구 집에 머물던 A씨는 이날 이사할 집을 알아보려고 자택을 찾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범행 당시 경찰에게 받은 스마트워치를 있는 힘껏 눌렀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경찰은 호출 12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A씨가 숨진 뒤였다. 이에 대해 경찰은 "기술적 결함으로 인해 스마트워치의 위치값과 피해자의 주거지가 500m가량 떨어져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붙잡힌 김병찬은 그해 12월16일 특가법(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보복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1심 재판부는 김병찬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 범행 내용을 모두 인정한 점 △ 반성문 제출 등 반성하고 있는 점 △ 이 사건 전에 특별한 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들어 "영구 격리가 필요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우발 범행을 주장하며 항소했지만, 오히려 항소심에서 더 중형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결별을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를 괴롭혔고 범행 전날 흉기와 모자를 구입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며 원심을 깨고 징역 40년으로 형량을 올렸다.
재판부는 "경찰관으로부터 스토킹 경고를 받는 등 공권력 개입 이후에도 범행이 이뤄졌다. 피고인이 원심 선고 직전 제출한 반성문을 보면 '백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모든 것이 제 잘못으로 치부되는 것 같다'고 기재했고, 보복 목적이 없다고 기존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지 여러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역시 항소심 판단에 동의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023년 1월 10일 "여러 가지 사정들을 살펴보면 원심이 피고인에 대해 징역 40년을 선고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징역 40년형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