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인 2008년 11월 27일 오전 7시, 충북 옥천군 옥천읍의 안 아파트에서 30대 모녀와 세살배기 딸이 숨져 있는 것을 40대 남편이 발견했다.
남편은 경찰에 "오늘 새벽에 출근해 일을 마친 뒤 집에 돌아와 보니 안방에서 아내가 옆구리를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린 채 딸과 함께 숨져있었다"고 말했다.
과연 이들 집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 발생 하루도 지나지 않아 범인은 신고자인 남편 김모씨(당시 42세)로 드러났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이날 바로 김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이날 새벽 0시께 자신의 아파트에서 부인 백모씨(당시 35세)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후 옆에 있던 세 살배기 딸을 목 졸라 죽인 혐의다.
김씨는 경찰에 "4000만원이 넘는 카드빚을 진 아내가 흥청망청하는 생활습성을 버리지 않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며 "딸까지 살해할 생각은 없었지만 범행 장면을 목격한 딸이 큰 소리로 우는 바람에 목을 졸랐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자백을 토대로 아파트 화단 땅속에 묻어둔 범행 도구도 찾아냈다. 김씨는 1주일 전 범행도구를 미리 구입해 집안에 숨겨두고 범행 전 아내 백씨에게 수면제를 탄 커피와 술을 마시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후 김 씨는 아파트 현관에 설치된 CCTV에 찍힐 것을 우려해 범행 도구와 피 묻은 옷가지 등을 베란다 밖으로 던진 뒤 한적한 도로변에서 옷을 태우고 흉기를 땅에 묻었다. 이후에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처남과 선배 등을 불러내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귀가 후 2시간 가까이 지체하다 경찰에 신고하는 등 허점도 보였다.
김씨는 당초 홧김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지만, 경찰은 범행이 계획적이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범행에 앞서 김씨가 슈퍼마켓과 약국에서 흉기와 수면제를 미리 구입한 점, 지난달 부인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하면서 보험금 1억원의 수령자를 본인으로 해 놓은 점, 범행 뒤 흉기를 화단에 묻고 혈흔이 남아있는 옷가지를 불태우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점 등에 비춰서다.
경찰이 김씨를 구속해 조사하는 과정에서는 더 끔찍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씨가 사건 발생 2년여 전인 2006년 6월 10일 자신의 노부모가 사는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당시 85세)와 어머니(당시 75세)를 숨지게 한 혐의가 추가 확인 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부모의 집을 팔아 아내가 진 수천만 원의 빚을 갚기 위해 부모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에 대한 판결은 이듬해 4월 처음 내려졌다. 청주지법 영동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김명한 지원장)는 부모와 처자식 등 4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씨에 대해 존속살인죄 등을 적용,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심신이 미약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신감정 결과 받아들일 수 없고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데 배경이나 사정이 없었던 점, 살해 동기가 모두 경제적 이유였던 점 등으로 미뤄 법정최고형이 사형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부모를 살해한 뒤 2년간 버젓이 살아오다가 또다시 처와 자식을 살해하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사회적 파장이 컸던 점, 범행 수법이 잔인한 점,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은 점 등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씨 변호인은 판결에 불복해 곧장 항소했고, 결국 같은 해 9월 열린 항소심에서 형이 감형됐다. 대전고법 청주재판부는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범행은 천륜과 인륜을 모두 저버린 패륜적 범행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피고인에게 더 이상 교화개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인간성이 말살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원심을 파기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피고인은 39세의 늦은 나이에 만난 부인의 낭비벽과 음주 등 무절제한 생활과 딸을 돌보지 않는 태도, 부모와 부인과 갈등 등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채 신경증적 증상에 시달려 오던 중,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