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6일. 70대 노부모와 10대 친아들 등 일가족 3명을 무참히 살해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임모(당시 46세)씨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피해자 가족이자 임씨 형제인 유족들이 수사 단계에서부터 일관되게 선처를 탄원한 것이 2심에서 일부 반영됐다. 패륜 범죄를 저지른 임씨와 그를 용서한 가족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군 전역 후 가스레인지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던 임씨는 프레스 기계에 오른쪽 손가락 4개가 절단됐다. 장애에도 그는 택시 기사로 일하며 삶을 이어갔다.
이후 1996년 지인 소개로 만난 오모씨와 동거를 시작한 임씨는 이듬해 아들을 낳고 1998년 결혼에 성공했다. 단란했던 그의 가정은 아내 오씨가 술과 도박에 빠지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씨는 사채에 전세자금까지 빼내 도박자금으로 사용했고 이 때문에 임씨와 다투다 2001년 가출했다.
아내 가출에 당시 다섯 살에 불과했던 아들을 남양주에 거주하던 부모에게 맡긴 임씨는 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5년여가 지난 2006년 임씨는 친형 도움으로 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하고 보다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이쯤 아내 오씨도 잘못을 빌며 돌아왔고 임씨가 그를 용서하며 부부는 재결합했다.
하지만 이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다. 2010년 오씨는 임씨가 저축해둔 돈과 아들 명의 보험까지 해약해 받은 돈을 모두 가지고 또다시 집을 나갔다.
아내의 두 번째 가출로 삶의 의욕을 잃은 임씨는 생계를 포기한 채 도박에 빠져 살았다. 그는 도박자금 마련을 위해 유일한 돈벌이 수단인 개인택시 면허와 차량도 팔아버렸다. 또 지인들로부터 받은 돈까지 모두 탕진했다.
무일푼 신세로 전락한 임씨는 자살을 결심했다. 그런데 자신이 죽으면 부모와 아들이 경제적으로 고통받을 것이 분명해 같이 죽는 게 낫다는 엉뚱한 판단을 했다. 당시 임씨 부모는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고 임대료를 받아 가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잘못된 생각임을 깨닫지 못한 임씨는 결국 2012년 2월 28일 오전 8시쯤 부모 집에 있던 부엌칼로 자고 있던 어머니를 살해했다. 비명을 듣고 온 아버지도 흉기로 찔렀고 이후 아들 방으로 가 자고 있던 아들까지 살해했다.
범행 후 임씨는 형에게 전화해 "미안하다. (부모님이 있는) 집에 가보라"고 했고, 형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10분 뒤 현장에 도착해 시신을 발견했다.
임씨는 사건 다음 날 구리 한 모텔에서 붙잡혔다. 퇴실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모텔 직원이 객실에 갔다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임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형제인 임씨 범행으로 부모와 조카를 잃은 유족들은 큰 슬픔 속에서도 임씨에 대한 용서의 뜻을 수사 당시부터 밝혔다. 임씨 형제들은 "가정사로 괴로워할 때 가족으로서 도와주지 못한 것이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 '선처' 호소에도 불구하고 2012년 7월 1심은 임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심은 "피고인이 이 사건 각 범행을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를 납득하기 어렵고 피해자들을 살해한 것이 결코 우발적 범행으로 볼 수 없다"며 "범행 수단이 잔혹하고 범행 결과 부모와 자식이 모두 살해된 점으로 볼 때 개선 교화의 여지가 있다고는 볼 수 없어 법정 최고형을 선고함이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임씨는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항소했고 2심이 이를 받아들였다.
2심은 "임씨는 우울증 등으로 인한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임씨가 사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없었다고 판단한 원심은 심신장애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 유족인 피고인 다른 가족들이 피고인 범행과 그 참담한 결과에 대해서는 통탄하면서도 피고인을 용서했고, 그동안 피고인이 가정사로 괴로워할 때 가족으로서 도와주지 못한 것에 대해 오히려 미안해하며 선처를 구하고 있는 점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형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