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날 백발 시민은 군인에게 말했다…"날 쏘고 넘어가라"

김미루 기자, 최문혁 기자
2025.12.02 06:43

[MT리포트] 비상계엄 1년, 12.3이 남긴 것 ②-3 국회 달려간 시민 인터뷰-은퇴 사업가 문혁씨

[편집자주]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이 지났다. 국민의 힘으로 계엄은 저지됐다. 민주주의는 복원됐고, 경제는 회복 중이다.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한편 12.3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도 다시 살펴본다.
문혁씨(73)가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사진을 보고 있다. 휴대전화 속 사진은 은박지를 덮은 채 눈을 맞고 있는 집회 참여 청년들의 모습. /사진=최문혁 기자.

지난해 12월3일 밤 11시4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철공소 사업을 하다가 은퇴한 백발의 문혁씨(73)가 놀란 건 무장한 군인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국회로 달려온 수많은 청년들과 함께였다. 문씨는 "(청년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말했다.

문씨는 계엄 당일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지인의 전화를 받고 계엄 선포 사실을 알았다. 그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몸부터 숨겨라"고 당부했다. 정작 자신은 차를 몰고 국회로 향했다. 평생 서울에서 살며 여러 격동의 순간을 목격한 문씨는 "계엄의 무서움을 알기에 잡히면 큰일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시민들이 국회로 모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고 했다.

국회 정문 근처에 도착하자 군인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내렸다. 그들은 총을 들고 열 맞춰 시민들과 대치했다. 문씨는 "지휘관 지시에 앞줄 군인 8명이 담장을 넘어 국회로 들어가길래 지인과 함께 군인들을 끌어내렸다"며 "군홧발에 얼굴을 찍힐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젊은 군인들은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시민들이 스크럼을 짜고 국회 담장을 넘으려는 군인들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문씨는 자신에게 다가온 군인에게 모자를 벗고 백발을 보여줬다.

"살 만큼 살았으니 나를 총으로 쏘고 넘어가라."

지휘관은 병력을 철수시켰다. 국회 상공에선 헬기 소리가 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 본회의에서 계엄 해제 안건이 가결됐다.

강렬한 청년들의 모습…"'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말 체감"
문씨가 고사성어 '공휴일궤'를 한자로 써 내려가고 있다. /사진=최문혁 기자.

문씨는 계엄 당일 청년들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는 "원래 집회 현장에서 젊은 친구들은 귀하다"며 "계엄령이 선포된 날 국회 앞은 달랐다. 청년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혹시 모른다는 불안감에 계엄 해제 후에도 해가 뜰 때까지 국회 앞을 지켰다"며 "많은 청년들이 국회의사당역 안에 종이상자를 깔고 자고 있었다"고 말했다.

탄핵 촉구 집회에서 만난 청년들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문씨는 "추운 겨울 은박지를 덮고 앉아 눈을 맞는 청년들을 보며 미안하고 고마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문씨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역사적 쾌거가 청년들을 국회로 이끈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소년이 온다'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계엄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계엄의 무서움을 전해줬다"며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말을 체감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한 작가는 계엄 선포 2개월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내란 혐의 재판을 지켜보며 문씨는 '공휴일궤'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렸다. 공휴일궤는 한 삽의 흙이 모자라 공들여 쌓은 산이 한꺼번에 무너진다는 뜻이다. 그는 기자 앞에서 공휴일궤를 직접 써내려가면서 "마지막까지 책임을 묻고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