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1년, 12.3이 남긴 것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이 지났다. 국민과 국회의 힘으로 계엄은 저지됐고, 정권은 교체됐다. 민주주의는 복원됐고, 경제는 회복 중이다. 그러나 계엄을 잉태한 제왕적 대통령제와 대결적 정치구조는 여전히 남아있다. 12.3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을 다시 살펴본다.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이 지났다. 국민과 국회의 힘으로 계엄은 저지됐고, 정권은 교체됐다. 민주주의는 복원됐고, 경제는 회복 중이다. 그러나 계엄을 잉태한 제왕적 대통령제와 대결적 정치구조는 여전히 남아있다. 12.3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을 다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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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에서 군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계엄군으로 투입된 가해자임엔 분명하지만,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 동원된 탓에 깊은 상흔을 안게 됐다는 점에선 동시에 피해자다. 비상계엄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고강도 군 개혁'에 명분을 부여했다. 그러나 역대급 인적청산과 명령 거부권 보장까지 수반한 개혁에 군은 불만을 토로한다. 전문가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단호한 인적 청산은 필요하다면서도 이른바 명령 거부권은 '전시'가 아닌 '평시'에만 부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일 국방부에 따르면 '내란극복·미래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는 최근 정당하지 않은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의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상관의 명령이 △헌법 또는 법률에 명백히 위반되는 경우 △형법 등에 위반돼 범죄가 되는 경우 △사적 목적 또는 권한 범위 밖의 사항이 명백한 경우 등에 대해선 명령을 복종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법 개정 추진으로 군 안팎에선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에는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는 우리 국민들에게 강한 '정치적 효능감'을 남겼다. 친위 군사 쿠데타를 국민들의 손으로 막아내고, 국민이 뽑은 국회가 계엄을 즉각 해제했다. 이 모습은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전무후무한 장면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군과 공무원이 부당한 지시에 맞설 수 있는 '명령 거부권' 보장도 계엄 사태가 남긴 유산이다. 정치적 효능감과 명령 거부권 모두 12. 3과 같은 역사적 비극을 막을 막강한 억제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1년 전 사태의 배경이 된 제왕적 대통령제와 대결적 정치구조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정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헌법 또는 법률 개정에 대한 논의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물리적 충돌 없이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들은 국민들이 분명 자부심을 가질 만한 역사적 성취였다"며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당시 광장으로 나와 빛의 혁명을 이끌었던 청년들이 한 시대를 기억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직후 국제사회에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한국은 대통령 탄핵과 대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국제사회의 우려를 씻어내는데 성공했다. 위기와 회복의 지난 1년을 시간순으로 되짚어본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8분 윤석열 전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통해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곧 공개된 계엄 포고령에는 '정치활동 금지' '언론·출판 통제' '전공의 처단' 등 차디찬 단어가 담겼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 소식을 접한 국회는 곧바로 비상이 걸렸다. 국회에서 퇴청한 후 저녁식사를 즐기거나 귀가한 의원들, 보좌진들에게 비상 소집령이 떨어졌다.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모여드는 사이 계엄군은 국회 본관 진입을 시도했고, 보좌진들은 이들을 몸으로 막아섰다. 국회 밖에선 시민들이 계엄군의 차량을 가로막았다. 결국 계엄군이 창문을 통해 본관에 진입, 본회의장으로 향했지만 이미 늦었다.
"야. 계엄 터졌다. " 지난해 12월3일 대학원생인 강현씨(25)는 친구의 전화에 잠에서 깼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곧장 국회로 향했다. 그는 "상황이 안 돼서 현장에 가지 못하는 친구들을 대신해서라도 내가 일단 가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친구와 국회에 도착한 그는 상공에 띄워진 헬기와 시민 150여명이 국회 정문에 달라붙어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을 봤다. 경찰과 시민이 대치하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다가 경찰에 제지당하며 신원 확인을 강요받기도 했다. 강씨는 "상황이 너무 심각해지면 국회로 뛰어들어가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이후 새벽 3시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집으로 돌아갈 때만 해도 1년간 벌어질 일을 상상조차 못했다. 강씨는 "12·3 계엄 당일보다 그 이후 더 황당한 순간이 많았다"고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차 탄핵안 표결이 무산된 것부터 충격이었다. 그는 "모두가 분명 계엄이 잘못됐다고 했는데 그 다음 주부터 '계몽', '윤어게인'을 외치며 양극화되는 모습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지금 떠올려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죠. " 11월말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관저 일대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거리엔 직장인 등 몇몇만 오갔다.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차량 소음이 선명히 들릴 만큼 주변은 조용했다. 차도 통제는 없었다. 길가엔 쓰레기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초에는 달랐다.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시끄러웠고 소음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 과정에서 찬반 집회 참가자들이 몰려들며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한파주의보 등 추위는 사람들을 막지 못했다. 식당 주인 최모씨(48)는 그때의 혼돈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의 가게 앞은 집회 인파로 가득 찼고,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소음이 종일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18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했지만, 그런 상황은 처음이었다"라며 "일하는 가게가 역사적 현장의 한가운데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라고 했다. 지난 1월15일 두번째 체포 시도가 진행됐고 식당 근처는 아수라장이 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계엄 전후 상황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계엄 처벌에 왜 이렇게 긴 시간을 들이고 있을까. 법조계는 "헌정질서 회복의 첫걸음이 처벌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명확한 진상규명부터 해야 한다는 얘기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오는 14일까지 수사를 진행한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의 수사 기한은 오는 28일까지다. 법원에는 각 특검이 기소한 사건들이 쌓여있다. 서울중앙지법은 내년 초부터 계엄 관련 사건들을 연이어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 계엄에 대한 처벌 과정이 지속되면서 일각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한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수사를 장기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초유의 사태였던 만큼 제대로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유승익 명지대 법학과 교수는 "내란은 헌정질서 파괴 범죄로 우리 법에서 이미 규정을 하고 있다"며 "그런데 내란으로 읽힐 수 있는 계엄 선포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우리 헌정 질서의 일부분이 파괴됐거나 최소한 허약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비상계엄 여파는 끝나지 않았다. 조지호 경찰청장 탄핵 심판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서 직무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올해 하반기 인사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중간다리인 경찰서장급 총경 인사부터 막히면서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된다. 비상계엄 가담 경찰관 색출 작업이 본격 시작된 점 역시 조직 내 혼돈을 키운다. ━3개월 넘게 미뤄진 하반기 인사, 총경·경정급 혼돈 속━2일 경찰에 따르면 매년 7~8월에 이뤄지던 총경 전보 인사는 이달에서야 진행될 예정이다. 경찰청은 지난달 시행됐던 근무평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총경 인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 인사 발표 시점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총경 계급은 흔히 '경찰의 꽃'이라 불린다. 시·도경찰청 과장, 일선 경찰서장 계급으로 실질적인 지휘관 역할을 맡기 시작하는 계급이면서 경정·경감 등과 함께 실무의 최전선에 있는 인력이다. 치안감·경무관 등 고위 지휘관에게도 직접 업무보고를 맡으면서 지휘부와 현장경찰을 잇는 경찰 조직의 가장 중요한 고리다. 총경들의 배치를 보면 그 해 경찰의 치안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비상계엄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이 수사를 받고 내란 우두머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선고는 내년 초 예정돼 있다. 피고인들이 혐의에 따라 형량이 얼마나 나올지 주목된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가 내년 1월 심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재판부가 오는 29일 3개의 내란 사건 재판을 병합한다고 했기 때문에 윤 전 대통령과 함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과 조지호 경찰청장·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등에 대한 사건도 함께 내년 2월 중순쯤 결론이 나올 방침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과 관련, 내란 우두머리·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수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의 추가 기소에 따라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이적죄 혐의 재판도 각각 추가됐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 하자 대통령 경호처를 동원해 영장 집행을 저지한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이 적용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구상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12·3 비상계엄·내란·외환 관련 형사재판에 넘겨진 이들의 공소장으로 계엄 선포까지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비상대권', 계엄 구상의 시작━윤 전 대통령의 계엄 첫 구상 시점은 취임 반년 만인 2022년 11월로 추산된다. 윤 전 대통령의 외환 혐의(일반이적죄) 공소장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그때부터 '비상대권'을 언급했다. 당시 여소야대 속에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대립으로 정치적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군·정보 라인과 가진 삼청동 안가 만찬 자리에서 더욱 구체적인 계엄 논의에 나섰다. 김용현 전 경호처장(이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과 함께 식사하며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수밖에 없다. 군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외에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처장 앞에서 7~8차례 '비상대권', '비상조치권' 등을 언급했다.
전 국민을 충격에 안긴 지난해 12월3일 밤.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강행한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회로 향했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로 달랐지만 이유는 같았다. 선배 세대가 피로 만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참극을 막아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머니투데이는 비상계엄 1년을 맞아 계엄 당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시민 5명과 만났다.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에게 그날 밤의 충격은 여전히 생생했다. 다시 같은 일이 벌어져도 국회로 가겠다는 의지도 확고했다. ━'계엄 선포' 듣자마자 국회로 향한 시민들━ 직장인 최윤이씨(28)씨는 계엄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향했다. 밤 10시30분 장례식장에서 텔레그램을 확인한 그는 "40여년간 없던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영등포 집 근처에 군이 깔렸을 것이란 불안보다 국회로 가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가까스로 잡은 택시에서 기사도 손을 떨고 있었다. 기사는 "위험하다"고 했지만 최씨가 "안 가는 게 더 무섭다"고 말하자 "가까운 곳까지 가보겠다"며 차를 몰았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 2024년 12월3일 22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계엄 선포 이후 45년 만이었다. 선포 직후 군병력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이동했고 여·야 정치권 모두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하는 등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자정 무렵엔 계엄군이 헬기 등을 통해 국회 경내로 진입했고 경찰은 국회진입을 차단했다. 우원식 국회의장 등 일부 의원들은 국회 담장까지 넘어 본회의에 참석했다.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했지만 시민들과 당직자, 보좌진들의 저항에 막혀 실패했고 결국 4일 오전 1시1분 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계엄선포 155분 만이었다. 3시간여가 흐른 오전 4시27분. 윤 전 대통령은 국회의 해제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고 3분 뒤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계엄해제안이 의결됐다.
"계엄 당일 국회에 간 절 칭찬한 친구가 탄핵이 인용되자 크게 화를 내더라고요. " 2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12월3일 밤 집에 누워 있다가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하고 친구들과 국회로 달려갔다. A씨와 친구들이 도착하자 경찰관들이 국회를 에워싼 상황이었다. 국회 상공에는 헬기가 날아다녔다. 국회가 계엄 해제 안건 표결에 들어가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국회 앞을 지켰다. A씨는 "명백한 잘못이 있으니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연히 파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4일 뒤 예상치 못하게 탄핵 소추안이 부결됐다"고 말했다. 그가 더 놀란 건 계엄 이후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윤어게인' 세력의 등장이다. 그의 주변에서도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A씨는 "무조건 진보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도 어느새 소셜미디어에 부정선거, 윤어게인을 올리고 있더라"고 말했다. 계엄 이후 A씨는 극심한 갈등을 체감하고 있다. 그는 "계엄을 선포한 12월3일 이후에 정서적 내전이 더 심해진 것 같다"며 "일상에서마저 갈등이 양극화됐다는 현실에 무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