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일 수도"…한강 소설 읽다 국회 간 대학생

김미루 기자
2025.12.02 06:47

[MT리포트] 비상계엄 1년, 12.3이 남긴 것 ②-4 국회 달려간 시민 인터뷰-대학생 채윤씨

[편집자주]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이 지났다. 국민의 힘으로 계엄은 저지됐다. 민주주의는 복원됐고, 경제는 회복 중이다.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한편 12.3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도 다시 살펴본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다음날 새벽 2시쯤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계엄 해제 발표를 기다리는 시민들과 인파를 통제하는 경찰이 뒤섞여 국회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모습. /사진제공=채윤씨.

지난해 12월3일 밤, 문예창작과 1학년생 채윤씨(20)는 서울 서대문구 집에서 비평 과제를 하고 있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설을 통해 '문학의 시대적 책임'을 서술하라는 과제였다. 소설의 배경인 1980년의 광주를 공부해 갔다. 머리를 싸매다가 자정이 돼서야 확인한 휴대전화는 뜨거웠다.

"계엄이 선포됐다."

단체 대화방에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져 있었다.

채씨는 "처음엔 인공지능이 만든 가짜라고 생각했다. 계엄일 리가 없지 않냐"며 "뒤이어 유튜브를 켰더니 난리가 난 국회 주변 영상이 보였다. 대통령이 진짜로 계엄을 선포한 건가 싶어 얼떨떨함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곧장 나갈 채비를 했다. 채씨는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코트를 걸치고 태블릿PC와 보조배터리를 가방에 넣었다. 심야버스를 기다릴 시간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택시를 잡아탔다. "여의도 간다"고 하자 60대쯤 돼 보이는 택시 기사는 "젊을 때 나도 학생 운동했다. 통제 때문에 다는 못 들어갈 테니 가능한 데까지 가보겠다"고 말했다.

4일 오전 1시30분쯤 국회 인근 도로에 도착하자 많은 시민이 모여 있었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안건을 가결했지만 대통령이 해제 발표를 하지 않고 있었다. 군인은 철수했지만 경찰이 시민들을 통제했다.

채씨는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나 보던 '계엄철폐', '독재타도' 구호가 다시 나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대통령이 계엄 취소를 안 하니 집에도 못 들어가고 계속 국회 앞을 지켰다"고 말했다.

문학과 함께 배운 역사…"다신 겪으면 안 되는 일"

서울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두고 플루트를 부는 채윤씨(20) 모습이 지난 4월4일 오전 본지 카메라에 잡혔다. 채씨는 계엄 사태 이후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하며 플루트를 연주했다. /사진=머니투데이.

그가 국회로 향한 배경엔 가족들도 있었다. 부모는 젊을 때 노동운동을 했고, 할머니는 제주 출신이다. 채씨는 "우리 집은 왜 이승만, 전두환을 싫어하는지 궁금해서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며 "한국에선 특히 예술과 역사가 발맞춰 간다는 생각이 있어서 세계대전과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전쟁도 아니고 간첩 사건도 아닌데 계엄까지 가는 사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난 1년간 그의 뇌리에는 비평 과제를 쓰며 읽었던 한강의 문장이 남았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계엄 이후 이 문장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고 변용돼 정치적 수사로 쓰였다. 그는 "그들의 희생을 단순한 교훈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되지 않냐"며 "계엄을 직접 겪어보고 나니까 누구도 다시는 그런 일을 겪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말도 안 되는 계엄 자체가 없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검 수사와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실망도 커졌다. 그는 "내란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 같지 않아 답답하다"며 "윤석열 정부가 끝났다고 다 끝난 게 아니지 않냐"고 했다. 이재명 정부의 헌법존중TF(태스크포스)에 대해선 "말단 공무원까지 색출하겠다는 건 가지치기밖에 안 된다"며 "정당 정치인부터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채씨는 거리 곳곳에서 열리는 혐오 시위를 보며 역사교육이 실패한 것 같단 생각을 한다. 그는 "저는 취직이 잘 안 된다"며 "그 불안 때문에 약자를 혐오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가 불평등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혐오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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