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되면 시장 빼앗긴다…대책 없으면 이공계 말라죽는다"

대담=이학렬 사회부장, 정리=이현수 기자, 이강준 기자, 사진=김창현 기자
2025.12.15 05:00

[머투초대석]이현순 중앙대 이사장 인터뷰…"차원이 다른 기술 지원책 필요"

이현순 중앙대학교 이사장./사진=김창현 기자.

"기술은 기업과 국가에 생명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기술이 회사의 운명, 나아가 국가의 운명까지 결정합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두산연강재단에서 만난 이현순 중앙대학교 이사장은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이사장은 "많게는 수십조원을 쏟아부어 개발한 기술을 뺏기는 순간, 우리의 시장 장악력은 형편없이 떨어지게 된다"며 "어느 순간 경쟁사가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 올라오고, 어쩌면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최초의 국산 자동차 엔진인 '알파엔진'을 비롯해 현대차의 40여종 엔진 개발을 이끈 이 이사장은 누구보다도 우리 기술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는 인물이다.

최근 몇 년간 기술유출 사건이 잇따르며, 기술 보호를 위한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23년 중앙대학교 이사장으로 부임한 그가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전문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중앙대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과 방위사업청과 각각 산업기술 수사, 방산기술보호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경제안보 인력 양성의 산실로 거듭나겠다는 이 이사장의 의지가 담긴 행보다.

다음은 이 이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현순 중앙대학교 이사장./사진=김창현 기자.

-기술 유출이 국내 산업에 어떤 피해를 초래하는가. 실제 사례와 함께 설명해달라.

▶기술이 유출되면 경쟁국이 우리 제품보다 월등한 제품을 개발해 시장을 다 빼앗기게 된다. 불 보듯 뻔한 결과다. 예로 2004년 쌍용자동차가 중국 상하이 자동차에 인수된 일이 있었다. 당시 쌍용은 중국 기업들보다 훨씬 월등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특히 상하이 자동차는 사륜구동 기술을 갖고 있지 못했다. 산업부에 가서 '쌍용을 넘겨주면 기술만 뺏길 거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라고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상하이 자동차는 쌍용을 인수했고, 기술을 가져간 다음 4년 만에 되팔았다. 이후 인도 마힌드라 그룹도 쌍용을 인수해 우리 기술을 가져갔다. 지금은 상하이 자동차도, 마힌드라 그룹도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성장했다.

-국내 기술이 해외에 유출되는 방식에는 어떤 유형이 있나.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사진을 찍어 기술을 빼내는 물리적 방식도 있지만, 인력을 빼가는 경우도 있다. 일부 해외 기업은 한국에 자회사를 세운 뒤 한국인 엔지니어를 채용해 자국으로 데려간다. 3년 정도 기술을 털어먹고 회사를 폐업하는 식이다. 중국 자동차 회사들에 가보면 한국 등 다른 나라 출신 엔지니어가 많다. 그간 중국 자동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한국 등 해외 기술자들이 있는 거다.

-현대차 재직 시절 기술유출에 관심을 가지신 계기가 여럿 있다고 들었다.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신다면.

▶현대자동차 연구소장 시절, 남양연구소 주행시험장에서 신차 개발시험을 하고 있는데 연구소 밖에서 망원렌즈로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확인해 보니 도요타가 용역을 맡긴 이들이었다. 급하게 시험장 주변에 키가 큰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을 심어 시야를 차단했다. 그러자 경비행기를 띄워 상공에서 촬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경쟁사들은 아주 작은 정보라도 얻기 위해 필사적이다.

-중앙대학교 예산을 써가며 경찰청과 산업기술 보호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배경을 설명해달라.

▶몇 년 전부터 경찰 쪽에서 자문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국내 기업의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경찰은 공학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도움을 구해왔다. 그러다가 경찰이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충남경찰청의 한 수사관을 중앙대 보안대학원에 입학시킨 걸 시작으로, 학교에서 경찰들을 대상으로 기술유출 패턴과 이를 탐지하는 수사 기법을 교육했다. 이런 인연이 이어져 올해는 업무협약까지 체결하게 됐다. 내년에는 프로그램을 더 확장해 활발하게 협업할 계획이다.

-방위사업청과도 방산기술보호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협력에 나섰는데.

▶방산기술도 산업기술만큼이나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분야다. 법적으로는 방산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망 분리를 해야 하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이를 지키지 않는 기업도 많다. 이런 부분부터 개선이 필요하다. 앞으로 방사청과 협력해 전문 인력 양성은 물론 제도 보완을 위한 협력도 강화할 계획이다. 또 경찰과 방사청을 넘어 산업스파이 대응을 위해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면 도움이 될 것라고 본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정부는 기술 유출의 심각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경찰 등 전문 인력을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또 기업들이 대규모 데이터가 유출돼도 이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 기업들이 데이터 유출을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팔고 있지만, 특히 중소기업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비싸다. 국가 차원에서 기술 탈취를 즉시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도입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기업의 C레벨과 현장에서 기술 유출을 바라보는 인식은 어떻다고 보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IT 업계에서는 기술을 누구나 편하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C레벨에서 기술 유출 방지를 비용 부담으로만 인식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에서는 무엇보다 일선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기술이 유출될 경우 어떤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하는지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 사례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일본은 인력 관리 체계가 잘 잡혀 있다. 엔지니어들이 퇴직 후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회사에 계속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연봉이 반으로 줄더라도 재고용 형태로 신입사원 교육이나 정비 매뉴얼 제작 같은 역할을 맡긴다. 특히 경험이 많은 엔지니어들은 현장에서 정비사들이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처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인력을 관리하면 기술 유출을 막을 수 있고 비용 절감 효과까지 있어 일석이조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제도를 마련하려는 노력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기술 유출을 막는 것을 넘어 신기술을 개발하고, 미래 산업에 대비하기 위한 대응책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할까.

▶우선 우리나라가 잘하고 있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자동차, 반도체, 원자력 에너지, 철강 등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미래 핵심 기술도 정부가 앞장서서 끌어줘야 한다. 첨단 바이오나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뒤처지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지원책이 필요하다. 결국 핵심은 사람이다. 최근 정부가 매년 국가과학자를 선정해 지원하기로 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 규모를 훨씬 키워야 한다고 본다. 경험과 역량을 갖춘 인재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할지에 대한 설계도 필요하다. 공청회를 열든, 위원회를 구성하든, 지금은 국가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사람이 중요한데 국내 인력이 점점 줄고 있다. 의대 쏠림, 해외 인력유출 등도 심각한 상황인데 어떤 대책이 있을까.

▶중국은 한 해에 배출하는 엔지니어 수가 우리나라의 약 50배에 달한다. 한국에서는 인재들이 모두 의대로 진학하지만, 중국은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공대로 가는 구조라고 한다. 중국에선 엔지니어 처우도 좋아서 급여가 의사보다 3배 정도 많다고 알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회사마다 엔지니어를 구하지 못해 어려운 상황인데, 우리나라 인력만으로는 해결하긴 어렵다. 결국 동남아시아 등 해외에서 인재를 데려와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이민 정책은 여전히 경직된 부분이 많다. 정부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과감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 이공계는 결국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외국인을 고용하다보면 기술 유출을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입국하는 사례도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나서서 이런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대응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이현순 중앙대학교 이사장./사진=김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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