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의 향방이 내년 초 윤곽을 드러낸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우리 정부에 약 1300억원 규모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중재판정이 뒤집힐지, 그대로 유지될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영국상사법원은 이달 초 엘리엇 ISDS 취소소송 파기환송심 구술변론을 마무리했고 다음달 중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부당하게 개입해 7억7000만달러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ISDS를 제기했다. PCA는 2023년 6월 엘리엇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약 4800만달러와 법률비용·이자비용 등 총 13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에 정부는 같은해 7월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중재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는 영국 중재법상 중재판정 취소사유인 '실체적 관할'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며 PCA가 엘리엇 사건을 재판할 관할권이 없는데도 이를 판정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한국 정부가 낸 취소소송의 전제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항 해석 문제가 실체적 관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소송을 각하했다.
반면 영국 항소심법원은 FTA 조항은 중재판정부의 관할을 규정한 것으로 이에 근거해 정부가 주장한 취소사유가 영국 중재법상 실체적 관할에 관한 문제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지난 7월 1심 법원의 각하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영국 상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된 사건은 5개월 만에 변론이 마무리돼 선고가 이뤄지게 됐다.
상사법원은 실체적 관할 문제 등 한국 정부가 중재판정 취소사유로 제시한 사유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만약 정부 주장을 인용하면 PCA 중재판정은 취소되고 반대로 기각할 경우 엘리엇이 승소한 내용대로 PCA 판정이 유지된다.
다만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곧바로 최종 확정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패소한 당사자는 항소를 제기할 수 있고 다시 항소법원이 사건을 심리하게 된다. 영국 중재법에 따라 항소는 법원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 허용되는데, 법률문제에 관한 항소만 인정되고 단순한 사실인정 오류를 항소사유로 들 수는 없다고 한다. 항소법원 판단에도 불복할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할 수도 있다. 다만 상고는 법률적 중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허용되는 등 요건이 상당히 엄격하다.
법조계에서는 중재판정 취소 자체가 드문 일이라는 점에서 이번 엘리엇 사건 역시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영국 법원은 중재판정에 대한 취소를 보다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앞선 론스타 취소 때처럼 정부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외환은행 매각 관련 ISDS 취소소송에서 승소해 당초 배상해야 했던 원금과 이자 등 약 4000억원의 배상책임이 모두 소멸됐다. 13년간 이어진 소송에서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면서 김민석 국무총리와 정성호 법무부장관이 긴급 브리핑을 열어 승소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정부에 따르면 취소신청 승소율은 전부 취소한 경우 전체 신청사건의 1.6%, 부분취소는 5.6%에 불과하다. 론스타 사건처럼 취소소송을 통해 판정이 전부 뒤집힌 것은 국제중재업계에서도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