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막아달라" 안락사 스위스행 제지…존엄사 논쟁 다시 불붙었다

김서현 기자
2026.02.11 17:19
조력 존엄사 관련 그래픽./사진=김현정 디자이너.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출국하려던 60대 남성이 경찰에 의해 제지된 사실이 알려지며 조력존엄사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외에서 조력존엄사 도입 움직임이 이어지고 국내에서도 찬성 여론이 적지 않은 상황이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법제화는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았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60대 남성 A씨는 전날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출국하려다 자녀의 112 신고로 공항에서 제지됐다. 경찰은 항공기 출발을 지연시키며 A씨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력존엄사는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조력사망'으로도 불린다. 자기결정권 존중과 생명경시 우려가 맞서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도입 논의가 확대되는 흐름이다.

보험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리포트에 따르면 전통적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은 대통령의 거듭된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2023년 의회 재의결을 통해 조력존엄사을 합법화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관련 법안이 하원을 통과해 현재 상원에서 심의 중이다. 캐나다에서는 전체 사망자의 약 4.1%가 조력존엄사을 선택할 정도로 제도가 보편화됐다.

국내에서도 조력존엄사 합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지는 추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2월 발표한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4~5월 기준 19세 이상 1021명 중 82%가 조력존엄사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헌법재판소도 지난해 1월 조력존엄사 관련 헌법소원 사건을 본안 심리 대상으로 회부하기도 했다. 2017년과 2018년 유사한 청구를 각하했던 전례에 비춰보면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다. 국회에서도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되며 입법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는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력존엄사법 시행은 한국사회에서 아직까지 시기상조라고 봤다. 호스피스와 생애 말기 돌봄 확대 등 연명의료 관점에서의 인프라 개선이 우선돼야 한단 의견이 나온다. 종교계와 의료계에서 조력존엄사 도입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사회적 합의 형성도 과제로 거론된다.

조진석 의료전문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조력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일부 있지만 동북아 유교사상이 뚜렷한 한국 사회 정서에서 아직은 도입되기 이른 것이 현실"이라며 "아직 사회적 합의가 크게 진전되지 않았고 생명 문제가 얽혀있단 점에서 헌재의 판단도 위헌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말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조력존엄사 시행 단계에 들어서면 진료비나 가족에 대한 부담 등으로 인해 의사결정권이 분명히 작용하지 못하게 될 위험도 있다"며 "이런 부작용은 법제화를 통해 해결하기는 몹시 어려운 영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보장 수준이 해외만큼 잘 구축돼 있지 않은 상황을 고려했을 때도 조력존엄사는 시기상조"라며 "현재로선 빈약한 호스피스 의료와 완화의료가 확대되는 것이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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