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 소액 법정,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가죽 가방을 든 변호사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교적 가벼운 복장에 운동화를 신고 홀로 인쇄물 한 부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변호사 없이 재판장을 찾은 이들은 재판 도중 판사의 질문에 종이에 준비한 말을 천천히 읽었다. 하지만 무슨 질문인지 몰라 판사에게 되묻기도 했다. 그럴수록 재판장 말은 빨라졌다. 1시간 내 처리해야 할 사건이 70건이 넘기 때문이다.
이날 법정에서 만난 50대 여성 조모씨는 변호사 없이 10대 딸 이모양의 대리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조씨는 "AI(인공지능)가 없었다면 어려워서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6개월 넘게 이어진 재판은 이제 선고만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조씨 딸 이양은 용돈을 투자해 무인가게를 운영했다. 대학교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90대 건물주와 다툼이 생겨 소송에까지 이르게 됐다. 소송가액은 700만원대. 조씨는 서초동의 법무사와 변호사들의 사무실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결국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었다. 조씨는 "누군가는 이길 것 같다며 비싼 비용을 요구했고, 누군가는 질 것 같으니 사건을 맡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몰라 AI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딸이 결과값이 좋은 AI를 추천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에서 내라고 하는 서류들이 많았는데 AI가 없었다면 재판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매수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 중개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윤모씨(35)도 AI를 사용했다. 윤씨는 "AI가 요건이 성립되는 소송이라고 답해줘서 이를 믿고 소송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리에 관한 지식이 전무한 일반인으로서 소송의 정당성 및 승소 가능성에 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AI의 답변은 의문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숨진 형 대신 늙은 어머니에게 돈을 갚으라는 대부업체의 요구에 법정을 찾은 50대 김모씨도 있었다. 김씨는 양수금 사건 피고(채무자)의 대리인으로 출석했다. 김씨의 형은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렸고 병치레를 하며 병원비로 빌린 돈을 썼다. 김씨 형이 남긴 돈은 100만원뿐. 이들 가족은 재산은 받되 재산 한도까지만 책임지는 한정승인을 했고, 장례비용으로 약 400만원을 썼다. 이에 대부업체는 어머니가 돈을 더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변호인을 찾아볼 생각도 없었다"며 "워낙 소액 사건이고 변호사 비용을 낼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AI가 앞서 한정승인을 한 것이 있기 때문에 더 싸울 필요도 없다고 하더라"며 "망자가 돈을 남기더라도 장례비용이 우선이라는 것도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면 AI를 써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