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5월은 성수기라 손님으로 가득했는데 올해는 텅텅 비었네요."
지난 12일 찾아간 서울 서초구 양재꽃시장 분위기는 예상보다 차분했다. 진열대에는 어버이날 판매를 기대하며 준비했지만 끝내 팔리지 못한 카네이션 화분들이 남아 있었다. 일부 상인들은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가격을 낮춰 판매에 나섰다.
한 꽃집은 1만5000원에 팔던 카네이션 분화를 1만원까지 할인해 내놨다. 가게 주인 A씨는 "어버이날 특수를 기대하고 물량을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남았다"며 "꽃은 오래 보관하기도 어려워 팔리지 않으면 처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예년 같으면 스승의날을 앞두고 카네이션 주문 문의가 이어졌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반응도 나왔다. 꽃집을 운영하는 B씨는 "요즘은 스승의날을 앞두고도 카네이션을 찾는 손님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화훼업계에서 5월은 대표적인 성수기로 꼽힌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카네이션뿐 아니라 장미·카라·베고니아 같은 꽃 수요도 함께 늘어나는 시기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고물가 여파에 꽃 소비도 눈에 띄게 줄었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양재꽃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해 온 조범준씨(47)는 "예전에는 5월이면 시장에 차를 댈 자리도 없을 만큼 손님이 많았다"며 "요즘은 그나마 어버이날 정도만 손님이 늘고 나머지 기념일엔 평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소비가 줄어드는 사이 원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조씨는 "중동전쟁 여파로 기름값이 오르면서 운송비와 농가 난방용 등유 가격 부담이 커졌다"며 "환율까지 올라 수입 종자 가격도 예전보다 비싸졌다"고 설명했다.
농가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 외국인 근로자 임금이 오르면서 재배 비용이 상승했고 꽃 포장에 사용하는 비닐 가격 역시 크게 뛰었다는 설명이다. 조씨는 "포장 비닐 가격도 예전엔 2500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4000원 가까이 한다"며 "판매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더 끊길까봐 쉽게 올리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실제 꽃 가격 상승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양재꽃시장 절화 기준 평균 경매가격을 보면 카네이션 테시노는 지난해 4298원에서 올해 5월 기준 1만849원으로 약 152% 급등했다. 카네이션 '뉴콜라로(대륜)' 역시 같은 기간 7285원에서 1만3362원으로 약 83% 올랐다.
농가 부담을 키우는 에너지 비용도 상승세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꽃 재배에 사용되는 등유 가격은 지난해 5월 리터당 1306원 수준이었지만 최근 1600원대로 올라섰다. 화물 운송에 사용되는 경유 가격도 리터당 2000원 안팎까지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고물가 상황 속에서 꽃 소비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꽃은 필수 소비재로 인식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며 "가정의 달인 5월에도 소비자들이 예전처럼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직접 만나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줄고 모바일 선물이나 간편한 대체 상품 소비가 늘어난 점도 꽃 소비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